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문화 예술계의 트렌드는 뮤지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배우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조승우씨가 출연했던 <헤드윅>과 <지킬 앤 하이드>에 이어 <명성황후> <노트르담 드 파리> <사운드 오브 뮤직>이 연달아 폭발적 흥행을 기록했다.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이 연일 매진을 기록하는 대성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뮤지컬에 대한 폭발적 반응은 우려를 넘어 불안감마저 일으키고 있다. 속빈 강정이란 말이 딱 맞을 정도로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무대 뒤 실상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턱없이 부족한 뮤지컬 전용극장, 일부 초대형 외국 뮤지컬의 장기공연으로 대관조차 어려운 국내 창작 뮤지컬의 고군분투, 춤·노래·연기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하는 뮤지컬 배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의 폐해 등 80년대말 UIP 직배로 위축됐던 한국영화 시장을 보는 것 같다.
물론 세계적으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작금의 한국 영화시장을 볼 때 한낱 기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뮤지컬이라는 외국문화를 수입해 모방단계에 있지만 머지않아 파괴적 혁신을 통한 창조적 '대한민국 뮤지컬'이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견이 가능하기 때문.
이미 1997년 브로드웨이 공연을 시작으로 이태원씨의 강렬한 연기와 가슴을 에는 목소리로 세계의 극찬을 받았던 뮤지컬 <명성황후>,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인 <미스 사이공>에서 여주인공 킴 역을 맡아 열연했던 이소정씨의 인기 등이 그 예견을 뒷받침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뮤지컬의 기원과 변천, 뮤지컬의 본고장들이 겪은 시행착오까지 탐구함으로써 모방에서 창조적 혁신의 단계로 발돋움할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더 앞당길 수 있을까이다. 바로 <뮤지컬-열정과 매혹의 역사>가 그 초석을 마련하고 있다.
저자 박준영씨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한 만큼이나 르네상스시대 오페라에서 비롯된 뮤지컬의 기원부터 오늘날 뮤지컬의 본고장이 된 뉴욕과 런던을 중심으로 한 뮤지컬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풀어놓았다.
아직까지 뮤지컬 장르가 낯선 분들은 쉽게 이 책에 손대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왕과나> <마이 페어 레이디> <싱잉 인 더 레인> <그리스> <시카고> <오페라의 유령> 등 영화로 친근하게 다가왔던 뮤지컬 원작이나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한장 한장 책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는 27일 디즈니가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에 이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작품 <아이다>와 다음달 19일에는 만화가 김혜린씨의 <불의 검>을 원작으로 한 동명창작 뮤지컬도 무대에 오른다. 영국 팝스타 엘튼 존과 전설적 작사가 팀 라이스가 만드는 <아이다>에는 특히 가수 옥주현씨가 주인공으로 열연, 흥미로운 볼거리가 될 듯 싶다.
<불의 검>에는 <미스 사이공>의 주인공 킴역을 맡았던 이소정씨가 나설 예정이라고 하니 올 하반기에도 뮤지컬의 인기는 변함없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 가을 공연장에서 한 손에는 티켓을, 나머지 한 손에는 이 책을 든 관람객들의 모습을 조심스레 상상해 본다. (마고북스 / 1만 8천원)
[인문]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 오사와 마사치
가장 근원적인 인간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 책은 '인간은 근원적으로 타자성(他者性)의 존재'라는 점, 즉 나는 타자와 있고 나 또한 상대방에게 타자일 수밖에 없다는 타자성의 논리를 내세우면서 이를 사랑과 언어 심지어는 화폐·전자미디어·수학과 음악이라는 학문 등을 통해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사랑을 하면서 속된 말로 상대방에게 맞춰간다고 한다. 본연의 나보다 사랑하는 상대의 말과 행동에 맞춰 사고와 행동을 구성하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새로운 나, 자신의 내부에 또 다른 나를 형성해 내는 일종의 '타자성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는 이처럼 이성과의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언어를 통한 소통, 화폐를 통한 거래, 그리고 멀티미디어와 같은 매체를 통해 정보공유를 하고 있는 인간의 이같은 관계적 성격인 '타자성의 존재론'을 밝혀 윤리학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신과 동일시되는 타자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린비 / 1만 4천 9백원)
[역사]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 장 마생
이 책은 프랑스혁명의 중심 인물이자 프랑스혁명 그 자체와 동일시되는 인물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로베스피에르의 일대기를 다룬 혁명 전기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로베스피에르의 평전인 만큼이나 낯설기만 한 이름이지만 그는 근대혁명의 모델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실행자였다. 그가 실천을 통해 제시한 혁명적 삶은 이후 마르크스와 레닌 등 수많은 혁명가들이 모범으로 삼아 혁명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혁명가들의 혁명가'로 불리는 입지적인 인물.
따라서 바스티유 함락에서 국왕 루이 16세 처형, 공포정치 시행과 혁명의 몰락 끝에 자신이 세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기까지 로베스피에르의 일대기를 통해 숨가쁘게 전개되었던 5년간의 프랑스 혁명을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다.
이 책을 위해 특별 집필한 서울대 최갑수 교수의 한국어판 서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프랑스 혁명에 관한 논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프랑스 혁명의 성격과 의미, 근대사 형성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교양인 / 2만 9천원)
[사회과학]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 박철언
YS에게 불법 정치자금 40억을 건넨 내용 등 5·6공화국 시절 비화를 담은 '황태자' 박철언의 회고록이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해 출간 즉시 일시품절되는 등 그간 출간된 수많은 정치인들의 회고록 중 최고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정계를 떠난 지 5년, 드라마 <제5공화국>을 통해 그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씩 일기 시작했을 즈음 덥석 두 권의 책을 들고 나타난 만큼 출간배경에 곱지 않은 시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 바른 역사를 증언하기 위해 편견을 배제하고자 애썼다고 밝히고 있듯 일단 선입견을 버리고 읽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사초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후세 사람들의 몫인 만큼 5·6공화국의 비화를 담은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다름 아닌 우리 독자들의 몫이다. 송사에 휘말릴 각오까지 했을지 모를 비장함이 묻어난다는 점에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랜덤하우스중앙 [전2권] / 각 권 1만 5천원)
[문학]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페터 회
10여 년 전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첫 출간되었으나 작품의 진가가 채 알려지기도 전에 절판되어 많은 추리소설 마니아들로 하여금 헌 책방을 전전하게 만들었던 작품이 드디어 재출간 되었다.
최근 유행하는 <다빈치 코드>, <히스토리언>과 같은 픽션 형태의 추리 스릴러물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에게 그같은 재미는 물론 문명과 자연에 대한 통찰,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 도덕적 문제의 고찰 등 묵직한 주제의식까지 던져주는 독특한 매력에 푹 빠져들 수 있다.
이전 번역작이 존 그리샴의 전문 번역가인 정영목씨 작품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에 재출간된 작품은 <필립 말로 시리즈>로 유명한 레이먼드 첸들러의 작품들을 완역한 박현주씨 작품이란 것도 흥밋거리다. 제목에 살짝 변화를 준 만큼 두 번역가의 작품을 견주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면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게 나름의 행복이 될 것이다. (마음산책 / 1만 3천 5백원)
[에세이]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김경
시사주간지〈한겨레21>에 연재하던 칼럼을 모아 엮은 <뷰티플 몬스터>를 통해 도시생활과 문화, 패션과 스타일, 남자와 여자에 대한 솔직 대담하면서도 세련된 필체로 우리를 사로잡았던 '바자'의 피처 에디터(인터뷰 위주로 취재하는 기자) 김경 씨가 인터뷰집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를 펴냈다.
통상 인터뷰 하면 떠오르는 게 '재미없다''구태의연하다'라는 생각을 씻을 수 있는 그만이 갖고 있는 세련된 글맛을 통해 김훈, 노무현, 한대수, DJ DOC, 싸이, 강혜정, 신동엽, 주성치 등 각계각층 유명인사 22인과의 신선하고 맛깔스런 인터뷰로 채웠다.
인터뷰 대상들이 대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들임에도 전혀 식상하지 않은, 심지어 신선하고 유쾌하기까지 할 만큼 김경씨의 인터뷰는 매혹적이다.
이번 인터뷰집 출간에 맞춰 전작 에세이집 <뷰티플 몬스터>가 새로운 칼럼 12편을 추가해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고 하니 함께 접해보는 것도 그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생각의나무 / 9,800원)
[만화] 바보 – 강풀
<순정만화>, <아파트> 등 인터넷 만화로 한국 만화계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강풀이 2004년 11월부터 2005년 4월까지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해 수백만의 네티즌을 감동에 빠지게 했던 작품 <바보>가 드디어 출간됐다.
왠지 어설픈 그림체와 어디선가 본 듯한 감상적인 내용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딴에는 바로 그러한 측면 때문에 수백만의 네티즌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만능주의 경향과 이기주의 만연 등 각박해진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강풀의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작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슴 따뜻한 감동은 이젠 더 이상 흔히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 스토리와 연재횟수까지 미리 정해놓고 작품을 시작하기 때문에 마감에 쫓긴다거나 독자, 편집자의 입김이 작용할 수 없다는 점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나오게 하지 않을까 싶다. 조만간 스크린을 통해서도 강풀의 작품이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니 큰 기대를 빌어 마지않는다.(문학세계사[전2권] / 각 권 1만 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