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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겉표지 ⓒ 창비
이 책은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이다. 하지만 이 동화가 그저 있을 수 있는 일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있어 왔고, 지금도 우리사회 곳곳에서 매일 반복적이고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차별과 편견을 적고 있다는 점에서 동화의 틀을 빌린 다큐멘터리라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 슬픔 속에서 우리는 '인권'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권! 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외세로부터 늘 억압당하고 피해만 받고 살아왔던 우리민족에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이 인권이라는 단어를 잘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광복 후 친일세력과 군부의 경제성장 논리에 의해 유보되고 감춰졌던 단어, 그러나 질기게 일어서고 일어섰던 단어, 인권!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는 그 인권이 이 땅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러나 기지개를 편다고 해서 이 땅의 인권현실이 박수를 칠 만큼 좋아졌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이 책은 여전히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관이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인권현실에 관심을 갖고 책을 만들만큼 인권에 대한 의식 전환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약간의 위안을 삼게 된다.

이 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 땅에서 일하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요즘 흔히 코시안이라 불리는 방글라데시 출신 부모를 둔 디이나와 열 살 몽골 아이 빌궁, 어린아이답지 않게 남을 잘 배려할 줄 아는 민영, 한국 물정에 어두운 외국인이라고 몽골인들의 돈을 떼먹고도 큰소리치는 악덕기업주 정 사장과 아빠의 이중적인 모습을 빼다 박은 수진의 이야기, 불법체류자 아빠를 둔 불법체류자 티안과 못된 그의 한국인 친구들, 베트남인 엄마를 둔 수연이네 집 지붕 아래에서 편견으로 인해 일어나는 이야기, 파독 간호사로 일했던 고모와 이웃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인 블루시아의 산재이야기는 어린이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말해 준다. 편견은 습득된다는 것이다.

몽골인 아저씨 바왜의 돈을 떼먹고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오히려 으름장을 놓는 정 사장과 선생님 앞에서의 친절한 모습과는 달리 온갖 못된 짓은 다하는 수진의 모습은 편견은 습득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친구의 모국어를 배우려 하는 민영이나, 세 손가락이 잘린 인도네시아 오빠를 위해 '가위, 바위, 보'가 아니라, '바위, 보'로 하겠다는 준호의 다짐은 편견과 차별을 배제할 수 있는 길은 상호존중이라는 간단한 이치를 보여준다.

우리사회는 인종적 편견을 어른들로부터, 혹은 교육을 통해서 습득하여 왔다. 이제 인종적 편견을 버리고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가 말하는 것처럼 "무엇을 잘라 내고 베어 내는 가위를 빼고, 그의 상처투성이의 주먹을 포근하게 감싸줄 보자기가 돼 줄 수 있는"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그려보면 어떨까?

우리사회는 아직까지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인권현실에 대한 논의에 대해 충분히 열려 있지 않다. 가령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편견을 책으로 엮어 우리사회의 인권감수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만든 이 책에서마저, 출판 주최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발간사에서 '외국인노동자'와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를 번갈아 사용하여 우리사회에 충분히 합의된 논의가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

김중미 외 지음, 윤정주 그림,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창비(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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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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