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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누워있는 내가 만든 책을 볼 때마다 난 가끔 얼굴이 화끈거린다. 책을 만드는 것을 '출산'이라고 흔히 말을 하는데 이 기쁨과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세상에 나온 '자식'을 보는 것은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 제대로 설 수 있을까하고 걱정도 된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세상에 내놓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숨죽이고 있는데 편집 후기를 써야 한다니 이건 정말 기쁜 형벌이다.

<헬리코박터…>를 처음 만난 것은 올해 초이다. 아는 작가인 '서민'의 글을 자연스럽게 섭외해서 초고를 받아 보았다. 처음 원고를 받아든 순간 일단 의자에서 뒤로 넘어질 정도로 많이 웃었다. 그 유머러스한 글은 유연한 물고기처럼 거침이 없었고, 초고원고는 지금 종이책으로 만들어진 <헬리코박터…>보다 훨씬 날카로운 의료 비평이 많아 읽는 내내 통쾌함이란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병원과 의학의 유쾌한 내부 고발자' <헬리코박터…>가 내게 준 느낌은 딱 그것이었고 의료 비수기에 발맞추어 문턱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그들만의 영역인 '의학'의 아니꼬움에 정면 도전해 시시비비를 가려준 글은 환자라는 약자의 편을 들기에 충분했다.

또한 음지의 질환(변비, 치칠, 냄새 등)을 다루며 바른 치료법과 옳은 의식을 심어주고 헬리코박터균과 비타민 등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최신 논문을 근거로 중무장하여 꼬집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쉽고 유쾌한 글로 말이다.

좋은 글과 좋은 책은 어떤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바로 이렇다.

첫째로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 중학교 2학년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쉬워야 함은 물론 재미가 있어서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로 정확한 정보를 담고 그 정보는 유익해야 한다.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 했던 종이책은 종이에 찍힌 활자만으로도 사람에게 신뢰를 준다. 좋은 책은 독자가 갖고 있는 기본 신뢰를 배신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 지식의 층을 두텁게 할 의무가 있다.

<헬리코박터…>는 이러한 좋은 책의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 의학이란 다소 딱딱한 소재를 다루었지만, 중등 교육 이상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누가 읽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쉽고 <딴지일보>기자라는 명성에 어긋나지 않게 재미있었다. 또한 사촌 오빠처럼 친절하게 올바른 건강 상식을 전해주며 "마음 편하게 소신껏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는 좋은 정보를 건넸다.

초고를 받고 3시간 만에 열린 출간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출간을 결정했고 우리의 <헬리코박터…>는 천천히 출산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교정을 보면서 나는 저자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동업자 의식에 충분히 배신에 가까운 비판성 글은 어쩌면 의학계에서 따돌림 당할 소지가 충분했고, 아직은 현역에서 의대 교수를 하고 있는 저자나 우리 출판사에 어쩌면 항의가 빗발칠 수도 있다는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출판의 자유가 있지 않은가? 항의가 빗발치면 조용히 미소로 응수할 자유가 우리에게 있다. 또 문제가 커진다면 판매에는 가속도가 붙을 터이니 전혀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몇 차례에 걸쳐 문제의 소지가 될 부분을 수정 보완 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첫 초고의 신념(부패를 고발하고 올바른 의학 상식을 전한다)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우리 모두 최선을 다했다.

많은 걱정과 자신감을 가지고 힘든 교정 단계를 거치면서 감사를 드리고 싶은 부분은 어떠한 요구에도 절대 NO라고 말하지 않고 모두 따라주셨던 저자의 작가 정신이다.

수십 권의 책을 만들면서 난 이렇게 태도가 좋은 저자를 만난 적이 없다. 회사 스케줄 때문에 편집자인 내가 약속을 못 지킨 적은 있지만 원고 수정 중 저자가 내게 약속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작가의 그 투철한 프로 정신은 책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고 <헬리코박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준 기폭제가 되었다.

결코 쉽지 않았던 교정과 제작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온 <헬리코박터…>는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언론과 독자들에게 조금씩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디자인의 문제와 편집상의 크고 작은 실수들로 질책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은 편집자와 출판사가 감수하고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서 명쾌한 의학 정보를 얻었습니다", "의사의 권위를 버리고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병원에서 불쾌한 일을 겪었는데 그 문제를 의사 선생님이 써주셔서 내 편 같아요" 하는 많은 서평과 이메일을 받았다.

독자들의 이런 격려는 '왕따'의 위협을 감수하고 기꺼이 '내부 고발자'가 된 작가에게 힘이 되어줌은 물론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낸 편집자들에게도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

앞으로 <헬리코박터…>가 좀 더 많은 의학계 종사자와 독자들에게 읽혀 '그들만의 영역'인 의료계를 직시하고 '환자의 편에 서서 올바른 의학을 펼치는 변화'에 작은 주춧돌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윤희 기자는 다밋 출판사에서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진행한 편집자입니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다밋(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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