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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수는 먼저 암문을 통해 다시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시루떡과 남한산성을 지키던 병사들이 남아 있었다.
“에구 에구 이게 웬일이오. 사헌부 감찰관이 장초관 잡겠다고 왔다가 시체 되어 누워있다는 말만 듣고 그냥 갔소. 괜히 여기 있다가 누가 일러바치면 어쩌려고 또 왔소?”
아직 몸이 불편한 시루떡이 장판수에게 장황하게 그 간의 일을 읊어대었지만 장판수는 별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내래 좀 물어볼 것이 있어 되돌아왔어. 그 중놈과 포수 놈 있지 않네? 이놈들이 어디로 갔을까 해서 말이야.”
“글쎄......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모두들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지만 장판수는 잘 생각해 보라며 또박또박 말에 주의를 기울여 병사들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 중놈은 잘 모르겠지만 포수 놈은 여기 있은 지 오래되지 않았나? 뭐 지나가는 얘기로라도 들은 사람이 없네?
“그러고 보니 아닝교...... 서포수 고향이 용인이라고 했다 아닝교?”
한 병사가 서흔남의 고향을 기억해 내었지만 장판수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 놈이 자기 고향으로 갔을 리는 없다. 중놈을 따라 갔을 거다.’
짧은 적막이 흐른 후 다른 병사가 무릎을 탁 치며 소리쳤다.
“아! 그 포수는 모르겠지만 중놈 일행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함경도로 가야 되나?’라고 말입니다!”
“함경도?”
장판수는 그 병사를 잡고 세세한 점을 물어 보았지만 더 이상은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막막한 마음을 안고 장판수는 시루떡과 병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아니 이곳을 떠나면 어디로 가시려고 그럽니까?”
시루떡은 인사치레가 아닌 정말로 아쉬운 마음에 장판수를 바라보며 그를 걱정했다.
“그 놈들을 잡아 자초지종을 알아보려 했는데 결국 여의치가 않네. 내래 의주로 가볼 양이네.”
“아니 의주에는 왜 가십니까? 거긴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곳입니다. 전쟁도 끝났으니 장초관도 이젠 평안하게 사시오소서.”
시루떡의 말에 장판수는 쓴 웃음을 지었다.
“내래 역마살이 낀 놈이라 그렇게 살 팔자가 못 되...... 의주에서 오랑캐들과 한바탕 싸울 준비를 할 요량이네.”
시루떡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장판수의 옷섶을 잡았다.
“이보시오 장초관요! 내 고향으로 내려가면 작긴 하지만 부모님께 물려받은 논이 있소! 형제도 없고 마누라도 없어 같이 농사지을 사람도 없는데 이 기회에 함께 내려가 농사를 짓고 삽시다! 이제 전쟁이고 칼질이고 지긋지긋 하지도 않소?”
장판수는 옷섶을 잡은 시루떡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건 자네가 할 일이고...... 난 그렇지 않아. 이번 전쟁은 단순히 오랑캐들이 쳐들어 와서 일어난 일이 아니야. 안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한 역적놈들이 있고 그 놈들이래 나까지 해하려 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런 놈들이 살아남으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네? 내래 이왕 내친김에 끝장을 보려고 그런 기야.”
시루떡은 장판수의 손을 힘없이 놓아주었다. 장판수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 시루떡이 조용히 말했다.
“장초관요! 말하지 않은 것이 있소이다! 그 중놈이 말하기를 행여 몽고병을 이겨 장초관이 성에 오거든 온조왕의 사당으로 가보라 그럽디다! 그 놈이 장초관을 상대로 얕은 수를 쓴 거 같아 나와 다른 이들이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준 것이오.”
장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루떡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남긴 채 온조왕의 사당으로 뛰어갔다.
“저 양반도 참 피곤하게 사는구만.”
한 병사가 혀를 끌끌 차며 말하자 시루떡이 단박에 대꾸했다.
“어차피 지금은 누구나 살아있는 것이 피곤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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