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A: 연극티켓을 만원에 샀다. 그런데 극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티켓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다시 티켓을 살 것인가.

B: 연극 관람을 위해 극장에 왔다. 도착해보니 오는 길에 만원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았다. 수중에 돈은 있다. 티켓을 살 것인가.


두 경우 모두 티켓을 다시 살 경우 지갑에서 사라지는 돈은 2만원으로 같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A의 경우 '아니오'라고 답한 반면, B의 경우에는 티켓을 다시 사겠다고 했다. 이렇게 잃어버린 돈과 표를 사는 돈은 전혀 다른 지출이라고 여기는 데는 인간의 '마음'이 개입되어 있다.

이 실험을 수행한 교수는 "소비자가 각기 다른 심리 주머니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듯 행동하며, 상황에 따라 다른 지갑을 사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 마음의 '특별회계'가 발동하면 평소 구두쇠도 여행지에서 돈을 펑펑 쓰곤 한다.

▲ <마음을 유혹하는 경제의 심리학>
ⓒ 밀리언하우스
<마음을 유혹하는 경제의 심리학>에는 이런 실험결과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 실험은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으로 주목받은 '행동경제학' 이론을 토대로 경제활동 이면에 자리 잡은 인간 심리의 불확실성을 파헤친다. 이 이론은 경제주체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경제학의 전통적 가정을 뒤집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인데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심리'이므로 인간 심리를 분석해야한다는 명제를 전제로 경제현상을 설명한다. 변화무쌍한 궤적을 그리는 소비자의 심리곡선을 추적하면서 소비자 자신도 모른다는 소비자 마음을 분석한다. 또한 그 대칭점에는 이런 심리를 역이용하려는 치밀한 판매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있지만 실은 심리학과 사회학을 다루는 책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듯 싶다. 그래서 재미있다. 복잡한 도표와 수식을 떠올리며 경제학 책에 거리감을 느끼는 독자라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수학 공식과 그래프는 없다. 오히려 통계의 허구와 숫자의 속임수를 폭로한다. 일본에서 유명한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연재한 것을 묶어 펴냈는데, 저널에 실린 칼럼이라는 점도 대중성과 가독성을 높여주는 요소다. 반면 이런 점은 깊이와 밀도가 부족하다는 단점이기도 하다.

대부분 사례가 일본에 국한되어 있지만 그것이 이질감을 주지는 않는다. 소비심리와 판매 전략이 크게 다르지 않다. "주름 방지 성분이 있어 나이든 분에게 좋다"는 설명으로도 홈쇼핑 화장품 판매가 부진하던 차에, 쇼핑 호스트가 "며칠 전 고생하신 어머니에게 선물해드렸더니 정말 주름이 몇 가닥으로 줄어들었고 어제는 양로원에 가셔서 한참 자랑을 늘어놓고 오셨다며 모처럼 효도한 것처럼 기뻤다"고 하자 매출이 급등했다는 사례 등이 그렇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례를 직접 다루기도 한다. 붉은 악마 티셔츠 구입에는 군중심리의 '동조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하고, 김치냉장고 광고에서 최고의 여배우들이 우아한 차림으로 해당제품을 감싸 안는 모습이 어떻게 한국주부 심리를 자극하는지 보여준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와 가족 간의 애정, 사랑을 강조하는 삼성의 광고 전략을 분석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 아닌 자는 없다. 기업의 판매 전략에 말려들지 않고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요구된다. 마케팅에 종사한다면 매출을 증진시킬 실마리를 줄 것이다.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경제는 심리다'라는 선언이 나온다. 심리게임에 이기는 법은 수학공식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는 공익광고가 경기 회복에 자양분이 되길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지은이:니혼게이자이신문사
옮긴이:송수영
펴낸곳:밀리언하우스
223쪽/1만1천원


마음을 유혹하는 경제의 심리학

니혼게이자이신문 엮음, 송수영 옮김, 밀리언하우스(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