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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7일 오후 청와대 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7일 오후 청와대 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김동진

언론의 관심사는 딱 하나다. 노무현 대통령의 '다음 수'가 뭐냐는 것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사설을 통해 "이제 연정 논의는 접으라"고 '충고'했지만, 언론 스스로도 이 '충고'가 먹혀들 것이라고 믿지 않는 모양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노 대통령의 '다음 수'를 분석하는 기사를 앞다퉈 실은 걸 보면….

노 대통령도 언론의 '충고'를 접수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 다른 대화정치의 방안이 있는지 연구해 보겠다"면서 "여러 결단이 필요하다 싶으면 말하겠다"고 했다.

주목을 끄는 것은 노 대통령이 선택한 단어다. 노 대통령은 '결단'이라고 했다. 이 두음절의 단어가 뭘 뜻하는 걸까?

[소연정 카드] '꿩 대신 닭' 된 민주·민노가 받아들일까

언론의 전망은 다양하다. 어제의 청와대 회담으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한 여권이 민주·민주노동당과의 소연정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에서부터,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초당적 거국내각'을 구성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조기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개헌 조기공론화에 불을 지필 것이란 전망까지 다양하다.

여러 전망들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고 있는 전망은 소연정이다. 한나라당과는 달리 민주·민주노동당은 선거구제 개편에 전향적이기 때문에 이를 고리로 걸 경우 연정을 끌어낼 수도 있다는 '현실적' 판단에 기초해 이런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 전망은 청와대 스스로 부인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대화합 정치를 명분으로 대연정을 제안해 놨는데 영호남 지역대결 구도를 되레 부추길 수 있는 소연정을 선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연정의 최대 명분에 반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소연정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민주·민주노동당은 연정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일찌감치 '연정 거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입장을 180도 돌리면 "태도를 돌변한 명분이 뭐냐" "야합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소연정 대상들도 심정적으로도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민주·민주노동당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은 '닭'일 뿐이다. 한나라당 바짓가랑이 붙잡다가 여의치 않으니까 자신들에게 눈길을 돌리는 청와대를 곱게 볼 리 만무하다. "꿩 대신 닭이냐"란 반문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소연정 카드를 제외하고 나면 노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다음 수'는 적어진다. 일단 연정 제안을 거둬들여야 한다. 그 다음에 '조용히' 국정에 전념하든지, 다른 반전 카드를 꺼내야 한다.

이 중 '침묵 카드'가 선택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침묵 카드'는 노 대통령의 '완패'를 뜻하는 것이며, "성과도 없이 평지풍파만 일으킨 장본인"으로 낙인찍히는 것이며, "필생의 과업"이 헛말이었음을 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침묵카드] 노 대통령의 완패, 선택 가능성 극히 희박

따라서 시선이 집중되는 곳은 '반전 카드'다. 이와 관련해 어제의 청와대 대화록을 잠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표가 물었다. "원하는 게 연정인가, 선거구제 변경인가?" 그러자 노대통령이 답했다. "내가 원하는 건 두 가지 다다." 하지만 이 중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할 상황에 와 있다.

그래서 우선 전망할 수 있는 '반전 카드'는 올인 전략이다. 연정 얘기는 접어두고 선거구제 개편에 몰두하는 전략이다. 열린우리당이 청와대 회담 하루 전에 당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 선거구제 개편안 마련에 착수한 것도 이같은 전략의 일환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이 올인 전략은 노 대통령이 연정과 선거구제 개편을 함께 걸면서 연말을 논의 시한으로 정한 것과도 연결된다. 열린우리당이 개혁특위를 통해 마련한 선거구제 개편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본 다음에 연말연초에 제2의 카드를 꺼내들 공산이 있다.

문제는 이 올인 전략은 이미 그 운명이 예정돼 있다고도 볼 수 있는 '힘 없는' 카드라는 점이다.

민주·민주노동당이 선거구제 개편에 전향적이라고는 하지만, 연정 논의 때문에 선거구제 개편 논의의 진정성이 희석됐다고 판단한다면 열린우리당과 어깨동무를 하고 강행처리를 할 가능성은 없다. 더구나 이는 선거구제를 여야간 합의 하에 개편해온 그간의 관행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결단'과는 격이 맞지 않는 카드다.

물론 유용성이 없는 건 아니다. 청와대 회담을 제의해 성사시킨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할 만큼 다 했다"는 명분축적용으로 내세우기에는 손색이 없는 카드다.

그러나 선택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노 대통령이 공언한 '연말 시한'도 지키고, "성의를 다 했다"는 명분도 살리기 위해 내줘야 하는 대가는 10.26 국회의원 재보선이다.

고민 지점은 바로 이 곳이다. 애초 연정 얘기를 꺼낼 때 여소야대 국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노 대통령이고 보면 10.26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에 완패해 의석수가 더 줄고, 나아가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는 걸 용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까지 감수하며 세월을 허송할까?

[반전카드] 선거구제 개편에 올인... 10.26 재보선 포기할 수 있나

따라서 노 대통령이 '결단'을 한다면 그것은 두 개의 가닥으로 펼쳐질 공산이 크다.

우선 시점과 방식.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오늘 17일 이후 다른 야당 대표와의 회담을 가진 뒤 자신의 입장을 국민에게 직접 표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원에게 보내는 편지'나 '언론사와의 대화' 방식을 빌어 '대국민 간접대화'를 했고, 이어서 '정치권과 직접 대화'를 했는데도 진전이 없는 만큼 이제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대국민 직접대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내용. 연정 제안이 물 건너가고,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면 지금까지 군불 지피기 차원에서 펼쳐놓았던 임기 단축, 대선과 총선 동시 실시, 양원제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개헌 조기 공론화를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전망에 대해 정치권, 특히 열린우리당은 고개를 젓고 있다. 노 대통령이 연정과 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한 이유는 지역구도 해소라는 '신념'과 '숙원'에 따른 것인데 이것이 개헌 얘기와 뒤섞일 경우 자신의 '신념'과 '숙원'이 음모론으로 훼절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지적 같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노 대통령의 '진정성'이 뭐든지 간에 연정·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은 결국 어느 시점에 가서는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고 보면, 노 대통령에게 남은 문제는 형식논리를 고수하며 자신의 '진정성'을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단] '진정성'과 '현실 인정' 사이에 선 노 대통령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은 청와대 대화록 한 구절에 방점을 찍었다. "내각제로 가려 하는가"라는 박근혜 대표의 질문에 노 대통령이 "그럴 생각 전혀 없다"고 말한 구절이다. 이 구절만 놓고 보면 노 대통령이 조기에 개헌 공론화를 요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 회담에 배석했던 맹형규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오늘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박근혜 대표의 갑작스런 질문에 노 대통령이 얼버무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화록의 활자와 현장의 느낌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셈인데, 이런 간극이 해석하는 사람에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발언한 사람에 기인하는 것인지는 좀 더 두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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