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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가 쓴 논문으로 기억한다. 우연히 접한 그 평론은 윤동주 시인을 '나르시시스트'라고 불렀다. 당시 고등학생으로 학교에서 배운 대로 객관식 문제를 풀어야 하는 나에게 그것은 생소함을 넘어 당혹스런 분석이었다. '저항' 시인을 '나르시시스트'라고 칭하다니.

▲ <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
ⓒ 민연
<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가 그 정도로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허나 이 책 역시 프랑스에 대해 기존에 품고 있던 이미지를 종종 허물었다. 가령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으며 프랑스의 똘레랑스에 품었던 경탄은 어느 정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똘레랑스라는 언어 역시 일종의 유기체라서 그것이 사용되는 환경이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그것이 저항하는 소수 입장에서 나오는 이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똘레랑스는 때론 '평등'이 아닌 '동정'의 성격을 띠고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발현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래서 똘레랑스보다는 '존중'을 높이 사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19세기에 생긴 창녀 집을 '똘레랑스의 집'이라 불렀는데, 이렇게 지극히 남성 위주의 똘레랑스도 있었다. 가정 밖에서 성을 사고 파는 것을 허용하면서 법이 정하는 위생과 규율에 따르면 윤락행위를 할 수 있도록 매춘에 대해 똘레랑스를 베풀었는데, 이후 이 제도는 다시 금지되는 과정을 겪는다. 똘레랑스의 범위와 한계도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결과물일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구체적인 소재를 들어 프랑스 사회 전반을 스케치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산소를 찾아' 프랑스로 건너가 14년째 살며 얻은 경험과 지식을 풀어 놓고 있다. 동성끼리 동거를 허용하는 '팍스법'을 매개로 해서 '게이 프라이드'를 소개하고 프랑스인의 결혼과 가족 문화를 접근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또한 '게소법'을 통해 프랑스의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저자가 공들인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는 이런 시도가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 책의 표현을 빌자면 '똘레랑스'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하는 의심이다. "미국인은 이렇다. 일본사람이라서 그렇다"는 분석, "경상도 사람이라서, 전라도 출신이라 그런 것 같다"는 해석은 편견과 오해의 산물인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이선주의 프랑스 내면 읽기'라는 부제를 본 순간 보고 내심 그런 걱정을 하며 책장을 열었다. 3년여의 일본 생활을 토대로 쓴 책처럼 <일본은 없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닐까. 10년 넘게 살았으니 그 정도가 더 심할지도 몰라.

그러나 과감한 부제와 달리 저자는 본문에선 자의적인 해석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프랑스의 법과 제도, 역사는 세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그 문화를 뭉뚱그려 비판하거나 찬양하지는 않는다.

이런 태도는 저자의 프롤로그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책은 DVD 식으로 구성되었다. 필자는 단지 내용들을 잇는 다양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가이드일 뿐이므로, 독자들이 주체적으로 많은 자문을 던지며 읽어주기를 당부 드린다. 되도록 콤플렉스나 편견없이."

지은이의 이런 태도는 본문 내내 이어진다. 이브 생로랑의 은퇴를 다루며 "파리엔 패션이 있을까, 없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방식도 그렇다.

"사람 따라 다르고 취향 따라 다르니 있다/없다 식의 이분법이 아니라 있는 듯하면서도 없고, 없는 듯하면서도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파리엔 서양 패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오랜 해외생활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우리말 실력은 훌륭하다. 아마도 말지나 한겨레 등에 글을 쓰며 자유기고가로 활동한 덕분인 듯하다. 거기엔 고국 사랑도 한 몫 했겠지만 그렇다고 한국과 프랑스를 억지로 비교하진 않는다. 모두 6개 묶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장은 파리 '산책'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가을로 들어서 선선해진 이 때 저자와 함께 산책을 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듯 싶다.

덧붙이는 글 | 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 | 이선주 저 | 민연 | 2005년 08월


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

이선주 지음, 민연(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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