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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딸아, 반딧불이를 꼭 보고 오렴/ 딸아이가 반딧불이 생태체험 환경캠프에 갔습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건만 고등학생이 되도록 아직 한 번도 반딧불을 보지 못하고 자란 딸아이가 반딧불을 보기 위해서 전라북도 무주의 한 산촌에서 열리는 1박 2일 일정의 '생태체험 환경캠프' 행사에 참가하게 된 것과 관련하여 반딧불과 우리의 옛 환경을 추억한 글이었지요.
제목이 말하듯이 내 딸아이가 그 행사에 참가해서 반딧불이들을 꼭 보고(가급적이면 무주군의 행사 이름인 '반딧불 축제'라는 말과 걸맞을 정도의 풍성한 반딧불들을 보고), 환경에 대한 여러 가지 깨달음과 지식들을 얻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요.
그런데 그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로부터 반딧불을 많이 보지는 못하고 몇 마리 보았다는 말을 들으며 다행스러운 마음과 섭섭한 마음을 동시에 가진 후로는 반딧불에 대한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반딧불의 존재를 잊고 산 거지요.
그리고 그때로부터 일년도 더 지난 9월 5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날 오후 낮에 백화산 등산을 했습니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거의 매일 같이 아내와 함께 등산이나 걷기 운동을 했는데, 방학이 끝난 후로는 아내와 함께 하는 낮 운동은 주말에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시금 혼자 등산을 하자니 금세 지나가 버린 여름방학이며 지난 8월의 일들이 먼 전설처럼 느껴지고 묘한 그리움을 가지게 하더군요.
그러나 저녁에는 다시 아내와 함께 걷기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낮에 등산을 했더라도 저녁에 다시 아내와 함께 걷기 운동을 하는 것은 요즘 들어 내가 새롭게 즐기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내의 건강을 도와 주려는 뜻이기도 하고, 묵주 기도를 좀 더 많이 하려는 '욕심'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지난 8월 24일 여름방학이 끝나면서 함께 운동을 하는 것과 관련하여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토요일과 주일에는 오후 낮에 등산을 하고, 저녁 미사가 없는 월요일 목요일 금요일에는 저녁 식사 후에 느긋한 마음으로 걷기 운동을 하고, 저녁 미사가 있는 화요일 수요일에는 아내의 퇴근과 동시에 걷기 운동을 하기로….
그것은 어머니가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팔십이 넘으신 연세에도 거의 주도적으로 살림을 챙겨 주시는 데다가 아들과 며느리의 건강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써 주시니…. 때로는 운동에 싫증을 내고 게으름을 피우려 하다가도 어머니의 채근에 못 이겨 집을 나서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날 저녁에는 늦은 식사 후에 걷기 운동을 하면서 우리 부부 사이에 약간의 의견 충돌이 빚어졌습니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이라 나는 가로등이 있는 길을 이용하자고 했습니다. 태안고등학교까지 갔다가 돌아오면서 태안문예회관을 몇 바퀴 돌고 오자는 의견이었지요.
내 의견에 아내는 반대를 하더군요. 전기 불빛이 전혀 없는 냉천골 산책로를 고집하더군요. 그 길은 우리 부부가 아끼고 사랑하는 길이지만, 어두운 밤에는 으스스한 기분도 갖게 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나는 사실 으스스한 기분도 들 것 같고 해서 뜨악한 마음이었지만, "당신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래요"하는 아내의 말에 냉큼 내 의견을 접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사위의 어두움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손잡고 냉천골 산책로를 씩씩하게 걸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밤에 냉천골 산책로를 걷기는 정말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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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불이 꺼져 있는 '산장가든' 앞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어 조금 걸었을 때였습니다. 아내가 별안간 "어머!"라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지난 8월 29일 새벽 방에서 곤히 자던 중 지네에 겨드랑이를 물린 아내가 불을 켜고 옷 속을 들여다보며 내지른 비명과는 절대로 같은 음색이 아닌데도, 나는 그 순간 그때 일이 냉큼 떠오르더군요.
"왜 그려? 무슨 일여?"
"저것 봐요, 저 거! 저 거 안 보여요?"
"뭘 보라는 겨? 뭔디 그려?"
"반딧불이잖아요, 반딧불!"
"뭐, 반딧불? 워디…."
과연 반딧불이었습니다. 10미터쯤 떨어진 길가 풀숲에 반딧불이 한 마리가 앉아서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히야, 증말 반딧불이네. 너무 뜻밖이네. 이 냉천골 산길에서 반딧불을 보게 되다니!"
"당신 오늘 나헌테 감사해야 해요. 내 덕분에 반딧불을 보게 되었으니!"
"그려. 고마워요!"
우리는 가만가만 반딧불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반딧불은 이내 날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좀더 있어 주었습니다.
"히야, 우리가 얼마만에 반딧불을 보는 거지? 증말 반갑네."
"아이구, 예뻐라. 세상에 이보다 더 예쁜 빛이 있을까."
"옛날에는 반딧불이 흔해서 신기허지도 않었구, 세상에서 가장 예쁜 빛인지두 물렀는디…."
우리 부부는 감탄사를 주고받으며 함께 몸을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며시 반딧불이에게로 손을 뻗었습니다. 잡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왠지 잠시 살짝이라도 만져 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러자 반딧불이는 가볍게 날아올랐습니다.
"우리가 오늘 저녁에 반딧불을 보다니, 생각할수록 흥분되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에요. 호호."
"그런디 반딧불이 왜 당신 눈에 먼저 띄었디야. 눈 나뻐졌다고 맨날 안경 타령허는 사람헌티…."
"왜, 그게 불만이에요?"
"당신이 먼저 본 바람에 당신이 이상헌 외마디 소리를 질렀잖어. 사람 놀라게."
"놀랐어요?"
"난 당신 팔뚝에 지네가 붙은 줄 알었단 말여."
"에그, 그 놈의 징그러운 지네 얘기는 왜 헌대요. 소름 끼치게."
"그러게 왜 반가운 반딧불을 보고두 외마디 소리를 지르구 그려?"
"어머나! 저기 반딧불 또 있네!"
아내의 탄성은 거짓도 장난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또 한 마리의 반딧불이 길가 풀숲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허공을 나르는 반딧불도….
"에그, 오늘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게 한스럽네."
"카메라는 다음에 가져와도 돼요. 우리가 여길 오늘만 올 것도 아니고, 반딧불이 오늘 모두 사라져 버릴 것도 아니니께요."
아내의 기쁜 음성 속에는 앞으로도 반딧불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와 확신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냉천골 산길의 중간 지점, 첫 번째 공터까지 걸었고, 거기에서도 반딧불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을 돌려 산길을 내려오면서도 다시 두 마리의 반딧불이를 보았습니다. 모레 저녁에 다시 냉천골을 올 때는 꼭 카메라를 휴대하기로 재차 다짐하면서 흥분과 환희로 무놀졌던 가슴을 안고 기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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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6일(화요일)은 신부님이 계시지 않아 저녁 미사가 없음에도, 아내는 여교사들의 친목 모임에 참석하고 나는 성당의 레지오 주회에 출석하는 관계로 저녁 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7일도 성당에 미사가 없는 덕에 우리 부부는 저녁 식사 후 느긋하게 걷기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냉천골 산책로를 걸었고, 디지털 카메라를 휴대했지요.
25분쯤 걸은 다음 우리는 잔뜩 기대를 머금고 냉천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아내는 카메라를 케이스 속에서 꺼내 들고 사진 찍을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반딧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길 중간 지점, 첫 번째 공터에 이르도록 한 마리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거기에서 드라마 '장길산'의 산채 촬영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고르지 않은 노면에 발을 조심하며 촬영장까지 갔지만 반딧불은 보이지 않더군요. 우리는 실망을 했고, 다음날을 기대해 보기로 하고 다시 산길 쪽으로 발길을 돌렸지요. 그런데 거의 공터까지 왔을 때 갑자기 반딧불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두 마리가 함께….
나는 재촉을 했고, 아내는 케이스 속에 넣었던 카메라를 꺼내어 서둘러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지를 않는 거였습니다. 카메라를 급히 꺼내다가 어디를 잘못 건드렸는지 말을 듣지 않는데, 어둠 속에서 확인을 해볼 수도 없고, 최근에 구입한 카메라를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 환장하겠더군요.
내가 안타까움을 머금고 아내와 카메라를 싸잡아 타박하는 사이 반딧불들은 사라져 버리고 다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잔뜩 실망을 안고 투덜거리며 산길을 내려오는데, 아내가 "너무 그러지 말아요. 내일이 있잖아요"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더군요.
다음날 8일은 목요일로 저녁 미사가 없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두워질 무렵 다시 집을 나섰습니다. 전날 아내의 손끝에 채여 동영상이 찍히도록 되어 있던 카메라를 바로잡아 놓았으니 어제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는 않을 터였습니다. 우리는 더욱 긴장한 가운데 이리저리 숲 속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역시 첫 번째 공터에 이를 때까지 반딧불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드라마 <장길산> 산채 촬영장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산채 관망대 앞까지 갔을 때였습니다. 넓은 풀밭 위에서 반딧불이들이 날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똑같이 환성을 질렀습니다. 반딧불이들은 여러 마리였습니다. 제각기 이리저리 나는데, 아내는 반딧불들이 가까이 올 때마다 연거푸 사진을 찍었습니다.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더군요.
실컷 반딧불을 구경하며 즐기다가 이윽고 우리는 다시 산길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산길을 내려오는데, 그 산길에서도 반딧불이를 여러 마리나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산길을 다 빠져나왔을 때 아내의 손을 잡았고, 사진 찍느라 수고한 아내의 볼에 입맞춤을 해주었지요. 그러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렇게 반딧불을 본 것 때문에 흥분을 하지? 반갑고 기분 좋은 것은 확실한데,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는 걸."
"그러게 말예요. 나도 확실한 이유를 모르겠네요. 우리가 왜 이러는지…."
"우리가 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닐까? 반딧불을 본 것 때문에 크게 감격을 하고, 반딧불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애를 썼으니…."
"하여간 너무 좋아요. 오늘 저녁은 참 행복한 시간이에요."
우리 부부는 정말 행복한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고장의 명산인 백화산 뒤편 냉천골에서 반딧불을 보았다는 사실이, 가까운 생활 주변에 아직 반딧불이의 서식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매주 월요일, 목요일, 금요일 저녁마다 반딧불을 보기 위해 어두워진 시간에 냉천골을 가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월요일입니다. 나는 오후 낮에 또 혼자 백화산을 오르겠지만 저녁에는 다시 아내와 함께 냉천골을 갈 겁니다. 냉천골에서 사는 반딧불이들을 보고, 반딧불과 함께 잠시나마 깨끗한 자연 속 저 동심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부부는 오늘도 반딧불을 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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