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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0일 구치소에서 검찰을 오가며 조사받던 중 건강악화로 연세의료원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김우중씨가 퇴원, 구치소에 재수감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기자가 서울 세브란스 병원을 찾은 것은 지난 9일 저녁 6시를 조금 넘겨서였다. 김우중(69) 전 대우그룹 회장의 병실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병원 관계자들은 김 전 회장의 병실을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기자'에게는 더욱 강경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7월에는 이 병원에 입원해 하루에 83만원의 이용료를 내는 본관 20층 특실에 머물렀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김 전 회장이 심장혈관 수술을 받았다는 점에 착안해 한 병동을 뒤지기 시작한 지 30여분만에 김 전 회장의 병실을 찾아냈다.

인터뷰가 불가할 것이 뻔히 예상되는 김 전 회장의 병실을 악착같이 찾은 데는 이유가 있다. '김우중 자살설'에 대한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김 전 회장이 지난 2일 검찰 수사결과를 지켜본 뒤 커튼으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는 풍문이 일각에서 나돌았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발표에 자살시도? "그럴 기력 없어요"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입원해 있는 병실. 문에 '절대안정'이라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 오마이뉴스 최경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간호사실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열 걸음을 채 못가면 왼편으로 김 전 회장의 병실이 있다. 그의 병실은 다른 병실과는 달리 담당 간호사의 이름만 적혀있을 뿐 환자의 이름이 기록돼 있지 않았다. 병실문에 붙어있는 '절대 안정'이라는 안내문만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김 전 회장과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여있는 부인 정희자(65)씨의 병실도 같은 층이다. 그의 병실을 지나 다시 20여미터를 가면 복도 끝 오른쪽 방이 정씨의 병실이다. 정씨의 병실문에도 이름 대신 '면회, 절대 사절'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김 전 회장은 지난달 30일 심장 혈관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우회수술을 받았다. 5시간30분이 걸린 쉽지 않은 수술이었다.

우선 김 전 회장의 병실에 상주하고 있는 김모 차장에게 김 전 회장의 건강상태를 물었다. 대우그룹 비서실에 근무했던 그는 "(김 전 회장이) 수술을 한 뒤 5일째 온몸에 열이 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전 회장이 지난 2일 자살을 시도했다는 말이 사실이냐'는 질문을 건넸다. 그러나 그는 "수술 이후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는 분이 무슨 힘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정색을 했다. 김 전 회장의 최측근인 백기승 유진그룹 전무도 "중환자실에서 나온 지 사흘밖에 안된 분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겠느냐"며 '자살설'을 일축했다.

이번에는 간호사를 찾았다. 간호사도 자살설에 대한 기자의 설명을 듣더니 "말도 안된다"며 웃어버렸다. "스스로 그런 일을 할 만한 기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 날(2일) 특이한 점도 없었느냐'는 질문에 이 간호사는 "밤에 잠을 못 주무시기는 했다"고 귀띔했다.

마지막으로 김 전 회장의 병실과 같은 구조로 된 다른 병실의 내부를 확인했다. 창문에는 일반 커튼은 없고, 천으로 된 블라인드만 있었다. 목을 매기에는 부적합해 보였다.

"지나치게 개인 비리로 몰아가고 있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입원해 있는 병실과 같은 구조의 다른 병실 창문.
ⓒ 오마이뉴스 최경준
검찰은 지난 2일 김 전 회장의 1100억원 횡령 혐의를 추가로 발표했다. 그날 밤 김 전 회장의 병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당시 김 전 회장은 침대에 누운 채 부인 정희자씨와 함께 TV 뉴스를 시청했다고 한다. 검찰 발표에 김 전 회장은 별다른 말 없이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정씨가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졸도를 했다는 것.

정씨는 5일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뇌 한쪽에 피가 고인 '뇌경막하 혈종'인 것으로 밝혀졌고, 다음날 수술을 받았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정씨는 이미 한 달 전쯤 머리에 외상을 입었는데 뉴스를 보던 중 핏줄이 터졌다는 것이다.

결국 김 전 회장의 '자살설'은 그야말로 '설'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김 전 회장의 자살설이 나돈 배경에는 '김 전 회장이 검찰 수사 발표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즉 김 전 회장이 정권과의 교감에 따라 귀국을 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은 채 '개인 비리'로 내몰리고 있다는 '배신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이 해외 도피생활 끝에 귀국한 것은 일단 대우 임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건강악화 등이 주요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5년8개월 간 해외에 체류하면서 각 나라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도 단 한번도 인터폴 홈페이지에 적색수배자로 게시된 적이 없었다.

김종률 열린우리당 의원은 김 전 회장이 귀국하기 직전 베트남에서 그를 만나고 왔다. "여의도에 잠 못드는 국회의원이 많을 것", "내년 지자체 선거에 큰 타격을 입는 정치인이 많을 것"이라는 식의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김 전회장의 귀국 시점에 짙은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유전게이트와 행담도 개발의혹 등 잇단 권력형 게이트와 경제난, 부동산가격 폭등, 여권 지지도 하락 등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현 정권이 사전에 조율한 '기획 귀국'이라는 것이 요지다.

결국 이러한 '기획입국설'이 검찰의 '횡령 혐의' 등 수사 발표 이후 근거가 희박한 '김우중 자살설'로까지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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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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