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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13일 최근 입수한 '세풍 사건' 검찰 수사 및 공판기록과 'X-파일' 내용을 면밀히 비교분석하면서 두 기록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이회창 후보측에 건네진 삼성 비자금의 전달자가 홍석현 사장임을 밝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에는 같은 수사기록에 근거해 검찰이 불법자금 50억원을 알고있으면서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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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현대아파트 주차장'의 비밀

삼성과 중앙일보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건물 뒷편에 중앙일보사 건물이 보인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전 사장은 매형과 처남 사이로, 이번 X파일 사건의 주요 핵심 인물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근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97년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이른바 세풍 사건) 검찰 수사 및 공판기록에 의하면, 당시 세풍 사건 수사를 담당한 대검 중수부는 삼성이 한나라당에 공식후원금으로 제공한 합법자금 30억원 이외에도 이회성씨가 삼성으로부터 60억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나, 계좌추적을 통해 밝혀낸 불법자금 1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불법자금 50억원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제기한 '삼성 봐주기 수사' 의혹에 상당한 무게를 실어주는 것이다.

세풍 수사기록에는 10억원에 대한 진술조서만 있을 뿐 나머지 50억원에 대해서는 검찰이 삼성의 어느 누구한테도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98년 11월 27일 김인주의 진술] 이건희와 그의 처남을 보호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

김인주의 진술 김인주 삼성그룹 재무팀장(상무이사)의 진술조서. 김 상무는 '꼬리 자르기'를 통해 그룹 오너인 이건희 회장과 그의 처남이자 언론사주인 홍석현 사장을 보호한 것으로 드러났다.
ⓒ 오마이뉴스
▲ 김인주 삼성그룹 상무이사
98년 11월 27일 검찰은 김인주 상무이사(구조본 재무팀장)를 불러 진술을 받는다. 당시 진술조서에 따르면, 김 상무는 97년 4월경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의 소개로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서 이회성씨를 소개받아 알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이씨로부터 '형님의 경선자금을 도와줄 수 없느냐'는 자금지원 요청을 받았다.

이후 김 상무는 97년 5월경에 평소 잘 알고 지낸 김○수 신세계백화점 자금담당 이사에게 전화해 백화점 각 점포 등에서 입금된 10만원권 자기앞수표 가운데 배서가 되지 않은 것을 구해 10억원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고, 교환자금은 삼성의 5~6개 계열사 기밀비 등으로 처리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김 상무는 자기앞수표 10억원을 전달한 경위를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97년 9월 초순, 누가 먼저 전화를 하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차장에서 이회성을 만나 제가 007 가방(두께 15㎝ 정도로 상당히 두꺼움)에 담아간 자기앞수표 1만매(10억원)를 직접 전달하였습니다."

김 상무는 이에 앞서는 돈을 건넨 시점을 '97년 9월 초순경 밤 9시30분경'이라고 적시했다. 이 시점은 X-파일 녹취록(9월 9일자)의 홍석현 사장-이학수 비서실장 대화에서 나오는 "이회성이를 '우리집'(홍석현 사장집)으로 토요일(9월 6일) 밤에 오라고, 10시하고 10시5분, 5분 상관으로 돈 내주겠다"는 대목과 일치한다. 홍 사장은 당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았다.

김 상무는 또한 10억원에 대한 상부 보고 여부를 묻자 이렇게 진술하면서 "영수증 처리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체 보고를 하지 않았고, 금번 문제가 발생되어 비서실장에게만 보고하였을 뿐입니다."

김 상무는 "그외 삼성그룹에서 대선자금을 별도로 지원한 사실이 있는가요"라는 검찰 신문에 "97년 11월 하순경 본인이 한나라당 재정국장, 사무총장을 찾아가 자기앞수표로 30억원을 직접 전달하였던 사실이 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김 상무는 이어 "삼성 계열사 15개 회사별로 각 2억원씩 공식처리해 후원금으로 30억원을 전달했다"면서 "영수증은 추후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로써 불법자금 10억원(9월 초순)과 합법자금 30억원(11월 하순) 등 40억원을 삼성이 이회창 후보측에 지원한 사실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술은 나머지 불법자금 50억원을 감춰 그룹 오너와 오너의 처남을 보호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에서 나온 '꼬리 자르기'였다.

왜냐하면 '경기고 동문 세풍 3인방'인 서상목 한나라당 기획본부장과 이회성씨, 그리고 이석희 국세청 차장이 국세청을 동원해 대선자금을 모금할 것을 '기획'한 시점이 9월이고 실행은 그 이후이기 때문에, 9월 초에 건넨 삼성의 불법자금은 세풍과 무관하게 준 것으로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98년 12월 24일 이회성의 진술] 왜 '누구'에 대해서만 진술을 거부했을까

이회성의 진술 이회성씨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삼성 대선자금과 관련 "첫째, 97년 9월 초순경 압구정동 모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10억원, 둘째, 10월 초순경 같은 장소에서 10억원, 셋째, 10월 하순경 같은 장소에서 30억원, 넷째, 11월 초순경 같은 장소에서 10억원 등 총 60억원을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았습니다"라고 진술했다.
ⓒ 오마이뉴스
▲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동생 이회성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런데 검찰은 국세청의 압력으로 현대, 대우 등이 각각 30억원, 20억원씩 대선자금을 건넨 사실을 확인했는데도 '10억만 냈다'는 삼성의 김인주 상무를 딱 한번밖에 부르지 않았다. 검찰이 구속중인 이회성씨를 불러 삼성그룹으로부터 받은 대선자금에 대해 조사한 것은 그로부터 한달만인 9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때였다.

홍만표 검사는 대검 중수부 1110호 조사실에서 이회성씨에게서 제12회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았다. 다음은 피의자신문조서 상의 문답 내용이다.

- 피의자는 삼성그룹으로부터 대선자금을 지원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예,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 피의자는 삼성그룹의 어느 인사로부터 대선자금 지원을 받았던가요.
"삼성그룹으로부터 대선자금으로 총 60억원을 받은 사실이 있는데 어느 인사로부터 받았는지는 그분의 프라이버시를 위하여 진술을 거부하겠습니다.

- 구체적으로 피의자가 삼성그룹 모 인사로부터 대선자금 지원을 받게 된 경위에 대해 상세히 진술하시오.
"정확한 기억은 없으나 97년 9월 초순경부터 97년 11월 초순경까지 4회에 걸쳐 총 60억원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 삼성그룹 내의 같은 사람으로부터 받았던가요.
"예, 그렇습니다."

- 누구로부터 받았는지 밝힐 수 없는가요.
"아무런 법적인 의미가 없기 때문에 밝히지 않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위 금원을 받은 일시, 장소에 대해 진술하시오.
"첫째, 97년 9월 초순경 압구정동 모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10억원, 둘째, 10월 초순경 같은 장소에서 10억원, 셋째, 10월 하순경 같은 장소에서 30억원, 넷째, 11월 초순경 같은 장소에서 10억원 등 총 60억원을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았습니다.

- 모두 현금으로 받았던가요.
"수표, 현금으로 섞어서 받았습니다."


X파일, 잘라낸 꼬리를 붙이다

▲ 지난 7월 22일 MBC 보도국에서 7개월간 보도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던 이상호 기자의 이른바 'X파일'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MBC는 22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97년 안기부 내부보고용으로 만들어진 삼성 불법대선자금 도청테이프의 핵심내용을 전면 공개했다.
ⓒ MBC 화면 촬영
검찰은 제12회 피의자신문에서 이회성씨로부터 ▲97년 9월 초순 10억원 ▲10월 초순경 10억원 ▲10월 하순경 30억원 ▲11월 초순경 10억원 등 총 60억원을 '압구정동 모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았다는 '엄청난' 진술을 확보하는 개가를 올렸다. 다만 이회성씨는 삼성 돈 60억원을 받은 장소와 시점까지 밝히면서도 돈을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는 한사코 진술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회성씨는 검찰 진술에서 중요한 '힌트'를 제시했다. 즉, 60억원을 네번 다 '압구정동 모 아파트 앞 주차장'이라는 같은 장소에서 '삼성그룹 내의 같은 사람'으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한 것이다.

그런데 김인주 상무는 한달 전 검찰 조사에서 "97년 9월 초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차장'에서 이회성을 만나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회성씨의 진술에 따르면, 결국 네번 다 '삼성그룹 내의 같은 사람'으로부터 받았으니 결국 네번 다 김 상무가 건넨 것이어야 맞다.

물론 이것은 앞에서 밝혔듯이, 그룹 오너와 오너의 처남을 보호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에서 나온 '꼬리 자르기'이자 거짓진술이었다. X-파일 녹취록(9월 9일, 10월 7일자)에 따르면, 홍 사장은 이학수 실장에게 "이회성이를 '우리집'으로 토요일(9월 6일) 밤에 오라고, 10시하고 10시5분, 5분 상관으로 돈 내주겠다고 해서 그저께(6일) 줬지요"라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97년 9월 6일 토요일 밤 9시30분(김 상무 진술)부터 10시(홍 사장 발언) 사이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차장에서 자기앞수표 1만장을 건넨 사람은 김인주 상무가 아니라 홍석현 사장이었던 것이다.

97년 당시 김인주 상무는 강남구 수서동 삼성아파트에 살았고, 이회성 에너지경제연구원 고문은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3지구아파트에 살았다. 그리고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은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았다.

검찰의 '봐주기' 의혹

▲ 지난 9일 저녁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앞에서 열린 X파일 진상규명 촉구 촛불집회에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이건희 회장을 법정에 세울 때까지 피땀 흘려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혀 큰 박수를 받았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물론 삼성 오너의 금고지기 김인주 상무가 이 '불법자금 배달극'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안기부 X-파일 녹취록(10월 7일자)에 따르면, 홍 사장은 김 상무(구조본 재무팀장)의 상관인 이학수 실장(구조본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명(나와 이회성)이서 15개(15억원)를 운반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30개는 무겁더라구. 이번에는 비서실 김인주가 믿을 만하니까 그 친구, 나, 이회성 셋이서 백화점(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든지 만나가지고…. 그전에 귀찮더라도 이회성씨를 일단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하여 정보교환도 좀 하고…."(괄호 안은 필자 주)

'이번에는'이라는 말은 처음임을 전제한 것이다. 즉, 김 상무가 97년 9월 6일 10억원 전달 때는 현장에 없었고 10월에 30개(30억원)를 전달할 때는 있었다는 얘기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회성씨는 9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검찰에서 "97년 10월 하순경 '삼성그룹 모 인사'로부터 30억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김 상무를 한번 불러 자기앞수표로 건넨 10억원에 대해서만 조사했을 뿐, 이회성씨의 진술로 새롭게 드러난 나머지 '불법자금 50억원'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지 않았다. 김 상무가 이미 '합법자금 30억원' 제공 사실을 진술했으므로 법정한도 초과분인 50억원은 당연히 불법자금일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에 대한 '봐주기 수사' 의혹은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노회찬 의원은 "99년 9월 중간수사발표 당시 검찰은 삼성 관련 혐의를 충분히 입증하고서도 기소하지 않아 의혹을 낳고 있다"며 "98년 세풍사건 당시 검찰이 확보한 자료에다 최근 공개된 X-파일 내용을 합치면 이건희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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