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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오전에 조금 흐리더니 오후에도 저녁에는 소나기 잠깐. 비몽사몽, 정확히 90도를 이루는 중국철도의자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잠 못 이루기로 유명한 의자다.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아침 6시쯤 되어가자 승무원들이 식사. 서서 기다렸다. 흠! 7시 정도 되니 만두 한 개, 어제 먹다남은 또는 팔다남은 무우 말랭이와 배추졸임, 계란 하나 주고 10위안 받는다. 줬다. 먹어야지 할 수 없다. 서서 가기에는 내 몸이 의자에 익숙해진 탓이다.

중국내 빈부차이를 알고 싶으면 우쭤(無座, 우리나라 입석에 해당)에서 부드러운 침대(軟臥)까지 있는 중국철도를 이용해 보는 것이 좋다.

졸다 깨다 보계(寶鷄)에서부터 평야가 끊난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오장원(五丈原)이다. 소설 속에서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쫓아낸 무대로 유명하다. 몇 번 읽어본 삼국지를 되새김하는 중 누런 평야는 끝이 나고 산이 나온다.

내가 태어나서 지나간 터널보다 많은 터널을 지나고, 열 몇 까지 세고는 깜빡 잠이 들았다. 흔들어 깨우기에 보니 또 점심 먹으라고 한다. 이런 이런. 양돈장 꿀꿀이라도 된 기분이다. 11:00 '란주'까지는 앞으로도 세 시간 반 남았다. 그냥 서서 갈까 하다 먹기로 결정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우리 말에도 있지 않던가! '말타면 경마잡히고 싶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라는 말.

앉아서 졸던 사람에게 서서 가야 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쓸데없는 자기변명 좀 하고, 게으른 천성탓도 있지만, 역시 끔찍할 점심을 기다렸다.

휴우, 21위안 나왔다. 열차 아닌 일반 식당에서 먹으면 맥주 곁들여 한끼 제대로 먹는 돈인데 맛없는 거와 반비례해서 불만도 많아진다. 투덜투덜!

도착시간보다 15분 늦게 도착, 다음 도착지인 '주천(酒泉)'가는 표 예매, 오홋! 내일 열차인데도 침대표가 있다. 이건 행운에 가깝다.

보통은 현지 도착해서 숙소를 구하는 데, 이번에는 연운항에서 만난 한국 총각들이 들고 있던 한국에서 나온 중국여행안내책자에서 내가 갈 몇 군데 싼 숙소를 적었다. 책자에는 다인실이 30위안이라는데 메모지에 있는 두 군데를 들렸더니 한곳은 60위안, 또 한곳은 46위안 달라해서 도로 나왔다.

< 8월5일 사용경비 내역 >

ㅇ 이동비 : 113위안
- 란주 > 주천 딱딱한침대(硬臥) 윗칸(上鋪)

ㅇ 교통비 : 2위안
- 버스 : 호텔 > 란주라면집 1위안, 황하강변 > 호텔 1위안

ㅇ 숙박비 : 40위안
- 란주따샤, 2인실, 공동화장실, 공동샤워실, TV고장, 슬리퍼제공

ㅇ 식 비 : 36위안
- 아침 : 10위안, 열차식당
- 점심 : 21위안, 열차식당
- 저녁 : 5위안, 란주라면전문점

ㅇ 관람비 : 없음

ㅇ 잡 비 : 22위안
- 지도 3위안, 적선 10위안, 밤참(양꼬치구이 개당 0.3 위안 15개, 맥주2.5위안 2병) 9원만 받음

ㅇ 총 계 : 213위안
에고 한국여행책자! 문제점이 어디 한 두 군데인가? 중국여행정도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알차게 만들 수 있는데 못 만드는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배낭여행' 정보를 제공할 '여행기자'가 없다는 점이다.

지도구입 조금 늦게 했더니 쓸데없이 많이 걸어다니고 있다. 하여간 가서 물어보니 3인용 다인실을 60위안 달라고 해서 철수! 그 다음 간 데는 10위안짜리 방은 다 나갔다는 별로 믿어지지 않는 말을 하기에 역시 철수! 어디로 갈꺼나 하고 있는데 누가 나를 잡고 뭐라고 물어본다.

"대학생 @#@ 집에 가는 중 #!$#! 돈이 없어 @#$! 밥 사먹게!" 이런다. 내 귀에는 필요한 중국어만 들린다. 하여간 40대 중반쯤 보이는 아줌마가 십대후반쯤 되는 소녀와 처녀 중간쯤 되어보이는 딸(?)과 같이 '밥 좀 먹게 돈 좀 줘!' 이런다.

흠! 찰나지간 수많은 생각이 난다. 흔하디 흔한 내외국인 대상 사기일까? 아니면 정말 돈이 없어서 중국인들이 끔찍하게 아끼는 '멘쯔(面子,체면)' 망가지는 것 무릅쓰고 도와달라는 걸까?

좋다! 내가 살테니 같이가자! 이러니까 우리 둘만 가도 된다 이런다. 10위안 줬다. 유명한 란주라면 곱배기 2그릇값이다. 흠! 나는 10위안 아끼려고 벌써 두시간째 이러고 있는데. 궁시렁 궁시렁

역근처에서 대여섯곳을 돌아다니며 싼 방 또는 침대 하나 달라니 외국인은 안된다고 한다. 중국정부가 분명 몇 년 전에 내외국인 차별을 없애겠다고 한 걸 들었는데.

하긴 그 발표가 있었던 그 다음해 절강성을 여행했을 때도 역시 외국인은 비싼데 가서 자세요 해서 중국 PC방에서 10위안 주고 날 센 적도 있었다. 물론 핑계는 다양하다. 외국인숙박허가가 없어서, 허가가 있는 곳도 역시 15위안~30위안짜리 다인실은 안전하지 못하기에 100~200위안짜리에서 자라고 한다. 안 자!

25위안짜리 1인실이 있는 곳에서 '나 한국인 잘 수 있어?'하니까 25위안 짜리는 없어 단, 35위안짜리 1인실 30위안에 줄께 이런다. 흘. 니들 가격안내판에도 없는 35위안짜리 1인실이 갑자기 어디서 생겼니? 5위안이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도 안되지만그렇게 자연스럽게 바가지 씌우는데 짜증나서 역시 안 자!

▲ 외국인 특히 배낭여행객과는 상관없는 가격표. 상(床)은 침대하나를 빌린다는 뜻입니다.
ⓒ 최광식
또 고민. 싸고 좋은 방 구하기 위해 2시간 낭비하는 것이 정말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여행인가 하는! 도시 전체가 외국인에게 바가지 씌우려고 하는 곳에서 굳이 모른척 여행하는 것이 옳은 건가! 등등등. 우정빈관에서 25위안짜리 달라고 하니 역시 외국인은 안된다고 한다. 흘~

다시 갈등! 기차표 환불하고 오늘 주천으로 갈까? 참자!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하지 않던가!

처음 갔던 데를 가서 일반방(標準間, 화장실 달린) 58 위안짜리 달라고 하니 없단다. 아까는 있더니. '란주'라는 도시가 정 떨어진다. 짐들고 나오려니 TV없고 - 고장났고 - 샤워실 없고, 화장실 없는 40위안 짜리가 있단다. 휴~ 결정했다. 내가 성질내봐야 내 속만 쓰리지. 보증금인 '야찐(押金)' 200위안

짐 내려놓고 카운터에 가서 물어봤다. 란주 라면 먹고 싶은데 유명한데 말고 맛있는데 알려줘! 하니 원조로 유명한 집을 알려준다. 옆의 여직원이 그 집 별로야 그런다. 그래! 유명한 집이 꼭 맛있는 집은 아니야! 유명하면 손님만 많고 서비스 개차반인데도 무지 많아! 맛도 별로고.

아! 그 집 말고 맛있는 데가 어디? 하니까 알려준다. 몇 백 미터쯤 되느냐고 하니까 300~400ㅡ쯤 된다고 한다. 옆 남직원이 훈수하는데 버스로 3정거장이란다. 잉? 아무리 짧아도 버스정류장이 100M씩 떨어져 있잖아? 결국 버스 타고 가니 한 1km쯤 된다.

고기추가(加肉) 라면! 5위안! 정말 맛있다! 국물이 시원하니 우리나라 사람입에 딱이다. 뭐! 먹어 본 우리나라 (배낭)여행객들에게도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란주라면'은 설렁탕 국물같이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다. 비밀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중국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 '무'를 넣은 탓도 있기에 시원함과 개운함을 주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맛이기도 하고.

▲ 한국사람입에 딱 맞기로 소문난 란주라면. 쇠고기 추가 5위안
ⓒ 최광식
한 참 걸어서 황하(黃河)로. 호호탕탕(浩浩蕩蕩) 누런 강물이 호탕하게 내려간다. 가슴속의 뭉침마저 씻어내리는 듯하다.

▲ 호호탕탕 흐르는 황하. 날씨가 흐려서 느낌이 제대로 안 나오는군요.
ⓒ 최광식
수고(水庫)라는 물레바퀴 구경.

▲ 황하수고. 현재 공사중이라 조금 어수선합니다.
ⓒ 최광식
버스타고 역으로. 역근처쯤 오다보니 시장이 보이기에 얼른 내렷다. 구경좀 하려니 소나기! 처마 밑에서 궁상 좀 떨다가 비가 그치기에 시장구경. 200~300m쯤 되는 골목인데 이슬람요리인 '청진(淸眞)'요리집이 많이 보인다. 가끔 그 옆에는 한(漢)족이 하는 집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돼지고기도 판다. 문화충돌이 아닌 문화공존일까? 조금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한다.

▲ 역등지고 정면으로 300~400m 가다 왼쪽에 있는 화정로(和政路)시장
ⓒ 최광식
싸돌아 다닌 끝에 제일 잘 하는, 잘 굽는 '뚱보형수'라는 간판이 있는 집으로 갔다. 생각보다는 날씬(?)한, 우리 시집 못 간 누이같이 푸짐한 아주머니가 양꼬치를 센 불에 짧게 후딱 굽기에 들어간 거다. 핏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다! 서양사람들이 '레어(Rare)'라고 부르는 수준이다. 그래 이 집이야! 양고기는 쇠고기같아서 오래 구우면 딱딱해서 씹는 맛이 별로인데 이 집처럼 곁만 얼른 구우면 바깥부분만 바싹 구워져서 갓난아이 볼따구마냥 보드랍기 짝이 없다.

(필자주: 위생에 관한 부분을 조금 감내하시면 다양한 중국요리와 풍부한 먹거리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선택사항이기는 하지만요! )

▲ 이렇게 싼 불로 잽싸게 굽는 양꼬치는 정말... 군침이..
ⓒ 최광식

▲ 금황하맥주와 양로우츄알(양꼬치구이). 맥주이름 정말 잘 지었습니다. ^^
ⓒ 최광식
오홋! 맛있다. 눈물이 날 정도다. 한꼬치에 0.3위안이라는 양심적인 가격도 감루(感淚)를 흘리는 데 도움을 줬다. 10개 먹고 추가로 5개 더. 금황하맥주, 크으! 맥주이름도 예쁘기 그지없다. 2병 먹고는 적당히 나온 배를 만족의 손길로 어루만지며 호텔로.

양꼬치구이때문에 '란주'를 용서해주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ㅇ 이 글은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자티의 중국여행(http://ichina21.hani.co.kr/)', 중국배낭여행동호회인 '뚜벅이 배낭여행(http://www.jalingobi.co.kr)'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ㅇ 중국여행에 필요한 자료는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여행자료실(http://bbs.hani.co.kr/Board/tong_tourdata/list.asp?Stable=tong_tourdata)'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ㅇ '여행일기'라 평어체를 사용했습니다. 독자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제가 올리고 있는 '중국배낭길라잡이'의 내용을 실전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봐주시길.. 

ㅇ 중국어는 경어가 거의 없기에, 사실에 가깝게 번역했읍니다. 현장감있는 번역이라고 주장하고 싶군요. 

ㅇ '여행지정보'보다는 '여행정보'에 치중했습니다. 괜한 그리고 많은 '여행지'사진은 스포일러(영화결말을 말하는) 같아서. 

ㅇ 중국돈 1위안은 2005년 8월 한국돈 136원(팔때 기준)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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