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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장판수를 찾느라 어슴푸레한 숲 속을 조심스럽게 뒤졌다. 상대가 만만치 않은 만큼 사냥꾼들은 발걸음 하나에도 신중을 다했고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상세히 살펴보았다. 사냥꾼은 서로 눈짓으로 대화를 주고받더니 끝내 나무 밑동에서 작은 핏자국을 발견했다. 그들의 등 뒤로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이상하군. 핏자국이 끊겼어."

침묵을 깨고 사냥꾼 하나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냥꾼도 고개를 저었다.

"이 주위에 숨을 만한 곳은 없는데 희한한 일이군."

주위 지리를 잘 알고 있기에 장판수가 사라진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았던 이들은 비탈에서 작은 돌에 묻은 피를 간신히 발견하고서야 손뼉을 쳤다.

"옳지! 이 비탈로 몸을 굴려 내려간 것이로군! 그거 독한 놈이로세."

뒤에서 두청과 서흔남이 헐레벌떡 쫓아와 사냥꾼들에게 달려왔다.

"찾았나?"
"이 비탈로 굴러 내려간 것이 틀림없소이다."

두청은 손에 든 도끼를 꽉 움켜잡았다.

"다친 상구가 말하기를 창이 얕게 먹었다고 하니 방심할 수 없다. 비탈을 내려가 보자."

"이럴 바에야 술에 약이라도 타서 죽여 버렸으면 간단한 일을 왜 이리 사서 고생인지 모르겠소."

사냥꾼 하나가 투덜거리자 두청은 그를 노려보며 꾸짖었다.

"다 내가 생각이 있어 구슬려 보려 한 일이다. 네 놈들도 그 놈의 실력을 보지 않았느냐? 잔말 말고 어서 가보자."

비탈이 매우 가파른지라 두청일행은 좋은 길을 가려가느라고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저 위에서 부터 굴렀다면 어디가 찢기거나 부러져도 단단히 부러졌겠는데."
"그럼 잘 된 셈이지 뭐."

골짜기로 내려온 두청일행은 다시 핏자국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이것 참! 어찌된 노릇인가?"

그 순간 위에서 껄껄 웃는 소리와 함께 장판수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두청일행은 혼비백산하여 위를 올려다보았다.

"미련한 놈들! 내래 여기 있으니 어디 올라와 보라우!"

두청은 순간적으로 난감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비탈로 올라가 봐야 기다리고 있는 장판수가 손을 쓰면 맥없이 나가떨어지리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래 네 놈들의 역적질을 조정에 고변할 작정이야. 할 말이 있거들랑 언제든지 찾아 오라우. 이 장판수, 비록 가진 거 없이 살아 왔지만 그런 껄렁한 수작에 동조하진 않아!"

장판수가 모습을 감춘 후 두청은 사냥꾼들에게 미친 듯이 화를 내었다.

"그런 얄팍한 수에 속아서 이리로 내려오다니! 네놈들은 개먹이로 줘도 아까운 놈들이다!"

장판수는 정신없이 산길을 빠져나갔다. 두청의 패거리가 얼마나 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고관대작과도 연계되어 있다는 두청의 말이 사실이라면 결코 만만히 볼 자들이 아니었다.

'계남이도 그들과 함께 행동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장판수는 속으로 곰곰이 그간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비록 윤계남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금세 저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나와 홍명구를 만남으로서 다른 길을 걸어오게 된 것임을 장판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남한산성 인근에서 자신의 검술 선생이었던 이진걸과 맞닥트린 일도 이들이 시킨 일임에 틀림없었다.

'이 놈들이래 뿌리까지 자근자근 밟아 주갔어!'

장판수는 속으로 굳은 다짐을 하며 산비탈을 뛰어 내려갔다. 그의 허벅지에는 창에 찔린 상처를 꽁꽁 묶은 천이 피를 머금은 채 흩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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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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