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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들이 이렇게 무례할 수 있나......"
차예량과 계화가 찾아오기 전에 이미 황일호와 사람들이 살해 당한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임경업은 손바닥에 손톱 자국이 시뻘겋게 남도록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차예량은 눈물을 흘리며 임경업에게 하소연했다.
"배를 내어 주시면 명으로 가서 최효일과 함께 중원의 군사를 일으켜 이 원통함을 만회하겠나이다."
임경업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한동안 어금니를 앙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행여 자신의 말에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고 여긴 차예량은 은근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나으리......"
"중원의 군사를 일으키겠다고? 아직은 아니 된다. 무능한 장수 하에 있는 까마귀 떼와 같은 명의 군대는 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차예량은 순간 당장은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면 이대로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입니까!"
"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임경업의 말은 마치 분노의 기운을 한 번에 끌어 모아 내뱉은 것만 같아 차예량은 저도 모르게 사죄부터 하고 말았다.
"아닐세. 내 너무 감정이 격해졌을 뿐이네. 자네가 여기나 다른 곳에서 얼굴을 내보이며 활동하면 청의 간자들이 이를 좌시하지 않을 뿐더러 여러모로 좋지 않은 일이 많을 걸세. 얼마 동안은 이곳에 몸을 숨기며 기회를 엿보세. 최효일이 명의 등주로 간 후 어찌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보낼 테니 이를 보고 신중히 움직여야 하네."
차예량은 임경업이 마련해 준 곳으로 처소로 가며 계화에게 일렀다.
"이제 날 따라다니면 네 안위도 장담할 수 없다."
"...... 어차피 갈 곳 없는 몸입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정녕 그리하겠느냐? 허허......"
차예량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계화를 바라보았다. 계화는 빼어난 미모는 타고 난 여인은 아니었지만 작은 코에 가느다란 눈썹, 얇은 입술은 가까이 있는 사내의 마음을 흔들만한 이목구비였다.
"계화야."
"예."
계화에게 마음이 흔들린 차예량은 그 순간 속으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형은 심양으로 잡혀갔고 최효일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명의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장판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의주로 돌아와 자신의 몫을 다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몸을 숨기며 한 여인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가!'
부끄러운 마음이 든 차예량은 계화에게 손짓을 하며 어색한 투로 말했다.
"그만 가 보아라. 혼자서 생각을 해 볼 것이 있다."
계화는 군소리 없이 다소곳한 몸가짐으로 차예량의 앞에서 물러갔다. 멀리서 뒷짐을 진 채 이를 바라보던 임경업은 눈치 빠르고 약기로 소문난 군졸 하나를 불러 조용히 일렀다.
"내 너의 재주를 한번 이용해 볼 것이니라. 조용히 해결할 수 있겠느냐?"
군졸은 임경업이 자신을 따로 부른 것에 감읍해 고개를 조아렸다.
"분부만 내려 주소서."
"저 계화라는 여인이 어찌 살아 왔는지 알아 보거라. 내 들은 바로는 저 계집이 궁궐의 교서관에 있으면서 여진어를 할 줄 안다고 했지만 뭔가 석연치가 않구나. 한양으로 가서 상세히 알아 보거라. 통행에 필요는 증서는 내 직접 써주겠다."
"알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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