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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언제 화산섬의 이름으로 태어났나.
제주도는 언제 화산섬의 이름으로 태어났나. ⓒ 김동식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바다 밑 세계에서 화산활동이 개시된 것은 120만 년 전이다. 이 때부터 용암을 내뿜기 시작하여 2만5천년 전까지 약 117만년간 용암이 분출되었다. 제주도가 바다 위로 그 형체를 드러낸 것은 까마득한 옛날인 30만 년에서 70만 년 전 사이에 이루어졌다.

제주를 상징하는 360여개의 오름은 언제 생성되었는지도 궁금하다. 대체적으로 한라산체가 형성된 이후인 2만5천 년~10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2만5천년 전에는 마지막으로 화산이 대폭발하면서 한라산 백록담과 현재의 아름다운 해안선이 탄생한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산굼부리, 국내 최대의 마르(maar)형 분화구
산굼부리, 국내 최대의 마르(maar)형 분화구 ⓒ 김동식
세계가 주목하는 마르형 분화구

산굼부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마르(maar)형 분화구이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용암이나 화산재의 분출 없이 화산폭발이 일어난 곳이다. 10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할 때 그곳에 있던 암석이 빠져나가 커다란 구멍이 나면서 기생화산인 산굼부리가 지구상에 태어났다.

그래서 다른 기생화산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몸뚱이는 없고 아가리만 벌린 것 같은 희한한 화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드넓은 들판 한 군데가 커다란 웅덩이처럼 생겼다. 실제 그 바닥이 주변의 평지보다 100m 가량이나 낮게 내려앉아 있다. 우리나라에는 하나밖에 없고, 세계적으로도 흔치않은 귀중한 화산자원이다.

화산섬의 비밀을 캘 수 있는 흔적이 산굼부리에는 많이 남아있다. 사람의 수명은 길어야 100년인데 이곳에는 수만 년 전의 지구역사가 생생히 살아있다. 얼마나 우리 인간은 자연 앞에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10만년전의 화산의 신비를 안고 있는 용암수형석
10만년전의 화산의 신비를 안고 있는 용암수형석 ⓒ 김동식
화산폭발이 빚어낸 용암수형석과 화산탄

산굼부리의 입구에는 구멍이 뻥 뚫린 바위덩어리 하나가 놓여 있다. 10만 년 전 산굼부리가 형성될 때 나타난 이 낯선 주인공에게는 '용암수형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화산이 폭발하여 솟아 오른 용암이 나무를 덮고 흘렀을 때 이 암석이 만들어졌다. 용암의 바깥쪽이 공기에 의해 굳어지고 안쪽은 나무에 의해서 굳어진다. 용암에 갇혔던 나무는 높은 온도를 견디지 못해 숯덩이가 되었다가 차츰 없어지면서 그 뒤에 신의 조각품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화산폭발이 빚어낸 화산탄
화산폭발이 빚어낸 화산탄 ⓒ 김동식
산굼부리에는 곳곳에 화산쇄설물이 많다.
산굼부리에는 곳곳에 화산쇄설물이 많다. ⓒ 김동식
용암수형석 옆으로는 화산탄이 곳곳에 전시되어 그 날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회전하면서 떨어지는 도중 굳어져 만들어진 폭탄바위이다. 몸체의 크기가 1m에서 2m인 이 화산탄들은 화산폭발 당시 화산가스 압력 때문에 화구로부터 최대 4km나 날아다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야말로 폭탄이 퍼부어진 것이다. 공중회전 덕분에 고구마와 닮은 것들이 많다. 겉에는 균열이 심한 빵 껍질처럼 생겼고, 널빤지나 절구처럼 생긴 것들도 있다.

산굼부리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산굼부리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 김동식
억새군락과 제주오름, 그리고 가을들판

해발 438m 지점인 산굼부리 정상을 올라가는 길은 잘 정비된 돌계단이다. 자연의 속살을 헤집은 인간의 손길이 느껴져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억새군락과 먼발치 떨어져서 우리 인간을 노려보는 제주 오름, 그리고 여유로움이 묻어있는 정취어린 가을들판이 아니었다면 울적한 기분은 좀더 오래 갔을 것이다.

억새 너머로 오름들이 자리잡고 있다.
억새 너머로 오름들이 자리잡고 있다. ⓒ 김동식
명소답게 끝없이 펼쳐진 억새가 춤바람이 났다. 억새는 가을의 깊이를 잴 수 있게 한다. 내 마음 속에 그리움의 물결이 인다. 저 멀리에도 화산의 씨앗인 오름들이 저마다의 몸짓으로 서있다. 어쩌면 이곳으로 수만 년 전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제주섬에서 가장 깊은 분화구

정상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을의 중턱에 걸린 바람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분화구 바닥이 보인다. 자료에는 해발 305m로 나와 있다. 정상과 분화구 바닥까지의 깊이를 확인해보니 표고차가 133m나 됐다. 한라산 정상에서 백록담까지의 높이가 115m이므로 산굼부리가 18m 더 깊은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섬 안에서 가장 깊은 화구를 오늘 만난 셈이다. 분화구의 바깥 둘레가 약 2067m, 안쪽 밑둘레가 756m, 그 바닥넓이만 해도 30만㎡에 이른다. 이 정도면 초대형급이다.

분화구의 지름과 깊이가 백록담보다도 더 큰데 물은 고여 있지 않다. 화구에 내린 빗물은 화구벽의 현무암 자갈층을 통하여 바다로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다. 마을주민들은 이 분화구 어딘가에 구멍이 있어 그 구멍이 바다로 연결된 것이라 믿고 있다.

분화구에는 다양한 식생들이 공존하고 있다.
분화구에는 다양한 식생들이 공존하고 있다. ⓒ 김동식
화산이 선물한 천혜의 자연식물원

이 굼부리는 보기 드문 천혜의 자연식물원이다. 산굼부리 분화구의 식생은 독립적이다. 한라산 식생과의 오랜 단절을 거치면서 420여종이 모여 사는 '격리군락'이 형성된 곳이다. 특이한 것은 위치에 따라 일사량과 일조시간, 기온과 깊이 차이 때문에 '한지붕 다가족'으로 끼리끼리 살고 있다는 것.

산굼부리 정상에는 대체로 화본과(禾本科) 식물들이 많다. 그 틈새로 털진달래, 용가시나무, 청미래덩굴, 해송, 졸참나무, 산초나무가 자라고 있다. 또 물매화, 오이풀, 쑥부쟁이, 엉겅퀴, 미나리아재비, 쥐손이풀도 있다. 특히 꽃이 고운 물매화가 많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분화구의 남쪽벼랑에는 상수리나무를 비롯해서 졸창나무, 산딸나무, 단풍나무, 곰솔 등이 무성하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왕쥐똥나무와 상산, 제주조릿대, 복수초, 변산바람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와는 달리 햇볕이 잘 드는 분화구의 북쪽벼랑에는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희귀식물인 금새우란과 자금우, 겨울딸기가 자라고 있다.

산굼부리는 야생동물의 서식처로도 유명하다. 노루와 오소리 등의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가 많은 곳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등산로에 나온 도마뱀을 밟을 수도 있다.

아쉽긴 하지만 분화구안으로는 직접 들어갈 수 없다. 대신 산마루에 설치해 놓은 전망경을 통해 산굼부리 지하세계를 관찰하면 그런대로 욕심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방사탑에도 화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방사탑에도 화산의 흔적이 남아 있다. ⓒ 김동식
방사탑에도 화산의 흔적이 묻어있네

산굼부리를 빠져나오는 길에 여러 개의 방사탑이 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방사탑도 화산섬의 흔적인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다. 반갑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옛날에 방사탑은 말그대로 마을의 재앙이 닥치거나 액운이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동네 어귀에 쌓아두었다. 어찌됐든 방사탑에는 민초들의 소박한 소망이 깃들어 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집단적 신념이 돌멩이마다 배어 있다.

10만 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돌담에 붙어사는 담쟁이덩굴에도 가을은 머물고 있었다. 오름에서 내려온 가을그림자가 들녘을 덮기 시작했다.

현무암 돌담에 자라는 담쟁이덩굴, 벌써 낙엽이 지고있네.
현무암 돌담에 자라는 담쟁이덩굴, 벌써 낙엽이 지고있네. ⓒ 김동식


 

덧붙이는 글 | 산굼부리는 천연기념물 제26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산굼부리는 한라산 동쪽 산자락에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11번 국도(516도로)에서 1112번 지방도로로 진입하거나 97번 지방도(동부관광도로)를 타고 가다가 대천동사거리에서 1112번 지방도로로 들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교래마을과 가까이 있습니다.

[주변 가볼만한 곳] 미니미니랜드, 비자림, 만장굴, 김녕미로공원, 일출랜드, 제주민속촌박물관, 성읍민속마을, 신영영화박물관, 서귀포감귤박물관, 쇠소깍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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