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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가 회장님이 됐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회장님감'이 전혀 아닌 녀석이 회장님이 됐으니, 녀석을 골려 먹는 재미로 사는 우리 부부가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사실 골려 먹어도 별 반응이 없는 녀석 때문에 당하는 쪽은 늘 우리 부부지만 말입니다.

▲ 나뭇잎으로 모자를 만든 엉뚱한 인상이
ⓒ 송성영
"너 회장 됐다며?"
"응?"
"회장님 됐으니 되게 좋겠다 잉. 얼마나 좋냐?"
"별로. 하기 싫은데 애들이 뽑아줬어."

결국 이번에도 우리 부부가 녀석에게 당한 셈이었지요.

3학년 전체 열여섯 명. 스스로 나서거나 추천 받은 사람에게 투표를 해서 회장을 뽑았다고 합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 하는 인상이 녀석, 학급 아이들이 회장이 되길 원치 않았던 녀석을 뽑아준 이유가 뭘까?

분명 녀석이 똑똑하거나 공부를 잘해서는 아닐 것이었습니다. 인상이는 일반 사람들의 기준인 '똑똑하거나 공부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좀 있으니까요. 녀석이 그냥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1학년 때는 지 놈 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놈들한테 얻어맞기 일쑤였던 인상이 녀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상대가 울까봐 때리지 못하겠다고 했던 녀석이었습니다. 언제인가 얼굴에 손바닥 자욱이 선명하도록 얻어맞고 집에 들어 왔길래 다그쳐 물었습니다.

"누구 그랬어?"
"친구가."

가깝게 지내던 친구 녀석이 다른 친구 녀석에게 심하게 얻어맞고 엉엉 울고 있길래 얼마나 아프게 맞았는지 자신을 한번 때려 보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가깝게 지내던 친구 녀석이 갑자기 자신의 뺨을 후려치더랍니다.

"안 아펐어?"
"아니, 안 아펐는데."

학급 아이들은 이런 엉뚱한 인상이 녀석을 회장으로 뽑았던 것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들 앞에 나서 재미있게 해줄 재간도 없는 녀석을 뽑은 것은 녀석이 잘나서가 아니라 한 대 쥐어박아도 별 반응이 없을 것 같이, 그저 만만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말수도 별로 없는 놈이 회장이 된 소감을 뭐라 했을까? 우리 부부는 그게 엄청 궁금했습니다. 그래 물었죠. 물었더니 남 일처럼 대답하더군요.

"다음번에는 내가 회장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랬을 껄. 아마."

첫 인사 말을 마지막 인사말처럼 했던 것입니다. 사실 녀석에게는 첫인사니 마지막 인사니 하는 개념조차 없습니다.

녀석은 좋건 싫건 간에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일을 구태여 꺼내 놓고 고민하거나 부러 꾸미려 들질 않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별로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등에 멘 채로 한참을 놉니다. 가방 벗어 놓는 것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놀이에 정신을 팔립니다. 그만큼 재미있게 놉니다.

"숙제 해야지."
"숙제?"
"그래 숙제는 해야지, 오늘 숙제 없냐?"
"몰라, 없을 껄."
"그걸 인마 니가 알지 아빠가 알어?"
"있던가?"

그때서야 등에 멘 가방을 벗어 놓고 수첩을 뒤적뒤적 거립니다. 이런 녀석이 회장이라니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학구열 높은 학부모님들이 알면 혀를 찰 노릇이죠. 복창 터져 환장할 것입니다.

엊그제 녀석이 처음으로 학급 회의를 했다는데 궁금하지 않습니까? 녀석이 회장이 되고 첫 학급 회의가 있던 날, 아내는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질문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안 떨리디?"
"뭐가?"
"학급 회의하는데 안 떨렸어? 엄마는 니 생각을 하기만 해도 떨리던데."
"왜 떨려? 하나도 안 떨렸는데."
"어떻게 했는데."
"그냥 했지."

"자, 지금부터 학급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했지?"
"응."
"그리고, 김영신 학우 발표해 주세요, 그래놓고 영신이가 다 말 하고 나면, 좋은 의견입니다. 다른 사람 의견은 없습니까? 그랬지?"
"응."

결국 학급회의에 관한 얘기를 정작 녀석이 말하지 않고 엄마가 다 알아서 말했습니다. 엄마에게 단순명료하게 대답하고 있는 것처럼 녀석은 학급회의 역시 별 생각 없이 담담하게 진행했던 모양입니다.

인상이 녀석이 정말로 별 생각이 없는 놈이라는 것을 오늘 저녁 먹을 때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밥상머리 앞에서 까다로운 편인 큰 아이 인효 녀석은 뜨거운 밥보다는 찬밥이 더 맛있다며 인상이 녀석에게 물었습니다.

"인상아, 너는?"
"뭘?"
"찬밥하고 뜨거운 밥 중에 어느 게 더 맛있냐구."
"찬밥하고 뜨거운 밥 둘 다."

역시 세상에서 밥이 제일 좋다는 밥돌이 인상이 다운 명답이었습니다. 녀석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는 것에도 별 생각이 없습니다. 한 학기가 넘도록 학교에서 구멍 난 실내화를 신고 다녔는데도 별 반응이 없습니다.

"너 떨어진 실내화 신고 다니는 거 안 창피해?"
"아니?"

떨어진 실내화를 신고 다니는 게 뭐가 이상하냐는 대답입니다. 하지만 생각이 별로 없는 녀석에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세상사는 일, 입고 먹는 일에는 별 생각 없이 그냥 먹고 입는 편이지만 남들이 생각지 않는 전혀 엉뚱한 생각들을 합니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그러하듯이요.

▲ 결가부좌 틀고 누가 오래 앉아 있나 시합을 벌이던 인상이와 인효
ⓒ 송성영
저녁을 먹고 나서 녀석들과 마당 한가운데서 결가부좌를 틀고 누가 가장 오래 동안 버틸 수 있는지 시합을 벌이고 있는데 인상이 녀석이 별 생각 없이 그럽니다.

"아빠, 부처님은 이렇게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어?"
"7년인가? 몇 년도 더 넘게, 엄청 아주 오래 동안."

"이렇게 하구 오래 오래 앉아 있으면 부처님은 발 안 저려?"
"아주 아주 오래 하고 있으면 발이 안 저리겠지."
"근데 모기가 부처님도 물어?"
"글쎄…."

나는 인상이가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을 붙잡고 오만가지 생각에 빠져듭니다.

'부처님 발은 저리지 않았을까? 모기가 부처님을 물었을까? 뱀은 부처님을 보호해 줬는디 설마 모기가 피를 빨아 먹었을라구, 아니지 그래도 뱀은 영물이잖어, 모기하구는 천성이 다르지. 부처님이 완성체가 되기 이전에는 아마 모기한티 엄청 뜯겼을겨.'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를 궁리하고 있는데 인상이는 전혀 다른 데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빠 저거 빨랫줄에 걸어 놓은 엄마 옷이 귀신 같다."

선문답 앞에서 뒤통수 얻어맞는 얼치기 선승처럼 이번에도 녀석에게 된통 당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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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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