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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액자 뒤에서 통장 3개를 꺼내시면서 비밀번호와 함께 통장의 쓰임새를 알려주셨습니다. 예전에 고향집 풍경 기사를 쓰려고 찍은 사진인데, 아픈 내용의 사진으로 쓰네요
아버지는 액자 뒤에서 통장 3개를 꺼내시면서 비밀번호와 함께 통장의 쓰임새를 알려주셨습니다. 예전에 고향집 풍경 기사를 쓰려고 찍은 사진인데, 아픈 내용의 사진으로 쓰네요 ⓒ 장희용
"아버지 말 잘 기억해 두었다가 그대로 하거라"

어제는 큰 어머니 제사라 회사 일이 끝나고 밤에 시골에 갔다 왔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마당에서 기다리시다가 곧바로 큰 집으로 가실 아버지였는데, 차 시동을 끄고 방으로 들어오라 하십니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 가시자마자 큰 누나 결혼사진 액자를 벽에서 떼어내십니다. 액자 뒤에서 통장 3개를 꺼내 방에 펼쳐 놓고서는 "네 형이 있으니 마땅히 장남인 네 형한테 할 말이겠지만 이런 말을 하면 네 형 성격에 아버지 말을 찬찬히 들을 것 같지 않아 대신 너한테 말하니, 지금부터 아버지가 하는 말 하나도 흘리지 말고 잘 기억해 두었다가 아버지 말 그대로 하거라" 하십니다.

"늙으면 다 그렇지만 이제 자전거 타다가도 자꾸만 기력이 딸려 넘어지고, 네가 들으면 자식으로서 마음이 아프겠지만 어제도 저 건너 00이가 늙은 호박 가져가라고 해서 네 형수하고 네 댁하고 약 해주려고 그거 따러 가다가 또 넘어졌다. 이제 아버지 몸이 다 되지 않았나 싶구나. 그리고 아버지가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기억이 자꾸만 가물가물 하니 네가 아버지 대신 잘 기억하고 있다가 그대로 하거라.

아버지가 잘못되면 이 돈을 가지고 네 사촌 형을 찾아가거라. 네 형은 알아서 하겠다고 하겠지만 아직은 너희들이 큰일을 겪어보지 못했고, 형이나 너나 객지 생활을 오래 했으니 일을 치르기가 수월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형이 뭐라고 해도 아버지 마지막 말이었다며 네가 형을 설득해서 네 사촌한테 일을 맡기거라. 내가 네 큰 사촌한테는 미리 언질을 해 놓았다.

다른 하나는 네 엄마 이름으로 돼 있다. 아버지 말을 곡해해서 듣지는 말거라. 너희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자식이 효자라 해도 늙어서 부모가 돈 한 푼 없으면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이다. 전에 수술할 때는 아버지가 네 걱정이 제일 앞서더니 이젠 네 엄마가 걱정이구나. 너도 알다시피 네 엄마가 배우지를 못해 은행가서 돈도 찾을 줄 모르니 네가 엄마 눈치 봐서 필요한 것 같으면 다만 얼마씩이라도 이 통장에서 빼서 드려라."

"죽을 때까지도 부모는 부모 도리 다 하고 죽어야 되는겨"

옆에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손으로 통장을 집더니 자식 앞에 두고 그게 할 소리냐고,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통장 어서 집어넣으라고 소리치십니다.

"어허, 가만히 있어봐. 누군가는 알아야 할 일이여. 내가 오늘 한 일도 자꾸 잊어버리는데, 이러다 덜컥 잘못되면 다음 일은 어떻게 할 거여. 부모는 죽을 때까지도 부모 도리를 다 하고 죽어야 되는겨. 그게 부모인겨."

어머니는 죽기는 왜 죽느냐 면서 속상한 마음에 화를 내시면서 방을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도 아버지 말씀대로 아버지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머리로 기억했습니다.

아버지는 남은 통장 하나는 형수님과 제 아내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라면서 형이나 저는 그 통장에서 단돈 일원도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이 며느리들 고생을 시켰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해서 주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엄마를 모시다보면 아무래도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신경을 쓸 터이니, 빠듯한 생활비에서 시장 보지 말고 이 돈을 따로 보관하다가 시장 갈 때마다 빼 쓰라 하십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잘못되실 경우 어머니 혼자서 시골 빈 집에 계실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시면서 장례가 끝나는 그 날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라 하십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잘못되실 경우 어머니 혼자서 시골 빈 집에 계실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시면서 장례가 끝나는 그 날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라 하십니다. ⓒ 장희용
아버지는 당신 잘못되면 그날로 어머니 모셔가라 하지만

아버지는 당신 말이 끝나시고는 통장 비밀번호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하셨습니다.

"이건 아버지가 예전에 수술 받을 때나 지금이나 신신당부하는 것이니 꼭 아버지 말을 따라야 한다"면서 아버지가 죽으면 장례 치른 그 다음날 곧바로 어머니 모셔가라 하십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잘못되실 경우 어머니 혼자서 시골 빈 집에 계실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셨습니다. 입는 것, 먹는 것, 뭐 하나 제대로 챙기실 것 같지 않을 어머니 생각을 아버지는 하고 계신 겁니다. 당신 없는 이 곳에서 당신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울고 계실 어머니를 아버지는 생각하고 계신 겁니다. 아버지는 자식들과, 손주들과 있으면 그런 어머니가 조금은 덜할 거라 생각하고 계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 하는지, 그냥 시골에 계시게 해야 하는지. 지금 생각으로는 다른 것은 다 따르겠지만, 어머니를 당신이 잘못되는 그 날로 모시고 가라는 말, 어쩌면 따르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아직 기억합니다. 세린이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태민이가 태어났을 때 아파트에 사는 우리에게 오신 어머니는 "손주들 보는 것도 좋지만, 이러 다 엄마가 먼저 죽을 것 같다. 어이구, 갑갑해라 원. 이게 감옥이지 어디 사람 사는 데냐?"하시면서 일찍 시골로 내려가신 분입니다.

시골은 어머니가 한 평생 정을 붙이며 산 곳입니다. 아무리 자식이 있다한들 정든 곳을 떠나 도시에서 아파트 생활하기가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시골은 어머니가 한 평생 정을 붙이며 산 곳입니다. 아무리 자식이 있다한들 정든 곳을 떠나 도시에서 아파트 생활하기가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 장희용
한 평생 정든 곳 떠나 어머니가 과연 행복하실까?

한 평생 흙과 함께 사신 분입니다. 들녘의 바람을 느끼며 사신 분입니다. 수십 년 정든 이웃이 있고,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돌보아야 할 소와 텃밭의 채소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체취가 있는 곳입니다. 이렇듯 고향 시골집은 비록 아버지가 계시지 않다 해도 어머니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모든 것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이 도심의 아파트에서 하루하루 째깍 째깍 소리를 내는 시계소리만을 들으면서, 하루 종일 벽만 바라보고 있어야 함을 생각하면, 아무리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라 하더라고 저는 아버지 말씀을 선뜻 따를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공간 속에 어머니가 홀로 계시는 것을 어느 자식이 그대로 보고만 있겠습니까만, 아무리 자식이 있다 한들 그 자식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 있을 터입니다. 한 평생 정든 곳을 훌쩍 떠나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지금 생각으로는 아버지 말씀대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시골에 계시면서 저와 형이 자주 찾아뵙는 것과 아버지 말씀대로 곧바로 자식들이 모시는 것 중,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고, 또한 말씀을 저리 하셨지만 진정 아버지의 참 뜻을 헤아리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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