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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말 잘 기억해 두었다가 그대로 하거라"
어제는 큰 어머니 제사라 회사 일이 끝나고 밤에 시골에 갔다 왔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마당에서 기다리시다가 곧바로 큰 집으로 가실 아버지였는데, 차 시동을 끄고 방으로 들어오라 하십니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 가시자마자 큰 누나 결혼사진 액자를 벽에서 떼어내십니다. 액자 뒤에서 통장 3개를 꺼내 방에 펼쳐 놓고서는 "네 형이 있으니 마땅히 장남인 네 형한테 할 말이겠지만 이런 말을 하면 네 형 성격에 아버지 말을 찬찬히 들을 것 같지 않아 대신 너한테 말하니, 지금부터 아버지가 하는 말 하나도 흘리지 말고 잘 기억해 두었다가 아버지 말 그대로 하거라" 하십니다.
"늙으면 다 그렇지만 이제 자전거 타다가도 자꾸만 기력이 딸려 넘어지고, 네가 들으면 자식으로서 마음이 아프겠지만 어제도 저 건너 00이가 늙은 호박 가져가라고 해서 네 형수하고 네 댁하고 약 해주려고 그거 따러 가다가 또 넘어졌다. 이제 아버지 몸이 다 되지 않았나 싶구나. 그리고 아버지가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기억이 자꾸만 가물가물 하니 네가 아버지 대신 잘 기억하고 있다가 그대로 하거라.
아버지가 잘못되면 이 돈을 가지고 네 사촌 형을 찾아가거라. 네 형은 알아서 하겠다고 하겠지만 아직은 너희들이 큰일을 겪어보지 못했고, 형이나 너나 객지 생활을 오래 했으니 일을 치르기가 수월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형이 뭐라고 해도 아버지 마지막 말이었다며 네가 형을 설득해서 네 사촌한테 일을 맡기거라. 내가 네 큰 사촌한테는 미리 언질을 해 놓았다.
다른 하나는 네 엄마 이름으로 돼 있다. 아버지 말을 곡해해서 듣지는 말거라. 너희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자식이 효자라 해도 늙어서 부모가 돈 한 푼 없으면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이다. 전에 수술할 때는 아버지가 네 걱정이 제일 앞서더니 이젠 네 엄마가 걱정이구나. 너도 알다시피 네 엄마가 배우지를 못해 은행가서 돈도 찾을 줄 모르니 네가 엄마 눈치 봐서 필요한 것 같으면 다만 얼마씩이라도 이 통장에서 빼서 드려라."
"죽을 때까지도 부모는 부모 도리 다 하고 죽어야 되는겨"
옆에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손으로 통장을 집더니 자식 앞에 두고 그게 할 소리냐고,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통장 어서 집어넣으라고 소리치십니다.
"어허, 가만히 있어봐. 누군가는 알아야 할 일이여. 내가 오늘 한 일도 자꾸 잊어버리는데, 이러다 덜컥 잘못되면 다음 일은 어떻게 할 거여. 부모는 죽을 때까지도 부모 도리를 다 하고 죽어야 되는겨. 그게 부모인겨."
어머니는 죽기는 왜 죽느냐 면서 속상한 마음에 화를 내시면서 방을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도 아버지 말씀대로 아버지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머리로 기억했습니다.
아버지는 남은 통장 하나는 형수님과 제 아내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라면서 형이나 저는 그 통장에서 단돈 일원도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이 며느리들 고생을 시켰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해서 주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엄마를 모시다보면 아무래도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신경을 쓸 터이니, 빠듯한 생활비에서 시장 보지 말고 이 돈을 따로 보관하다가 시장 갈 때마다 빼 쓰라 하십니다.
아버지는 당신 잘못되면 그날로 어머니 모셔가라 하지만
아버지는 당신 말이 끝나시고는 통장 비밀번호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하셨습니다.
"이건 아버지가 예전에 수술 받을 때나 지금이나 신신당부하는 것이니 꼭 아버지 말을 따라야 한다"면서 아버지가 죽으면 장례 치른 그 다음날 곧바로 어머니 모셔가라 하십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잘못되실 경우 어머니 혼자서 시골 빈 집에 계실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셨습니다. 입는 것, 먹는 것, 뭐 하나 제대로 챙기실 것 같지 않을 어머니 생각을 아버지는 하고 계신 겁니다. 당신 없는 이 곳에서 당신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울고 계실 어머니를 아버지는 생각하고 계신 겁니다. 아버지는 자식들과, 손주들과 있으면 그런 어머니가 조금은 덜할 거라 생각하고 계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 하는지, 그냥 시골에 계시게 해야 하는지. 지금 생각으로는 다른 것은 다 따르겠지만, 어머니를 당신이 잘못되는 그 날로 모시고 가라는 말, 어쩌면 따르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아직 기억합니다. 세린이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태민이가 태어났을 때 아파트에 사는 우리에게 오신 어머니는 "손주들 보는 것도 좋지만, 이러 다 엄마가 먼저 죽을 것 같다. 어이구, 갑갑해라 원. 이게 감옥이지 어디 사람 사는 데냐?"하시면서 일찍 시골로 내려가신 분입니다.
한 평생 정든 곳 떠나 어머니가 과연 행복하실까?
한 평생 흙과 함께 사신 분입니다. 들녘의 바람을 느끼며 사신 분입니다. 수십 년 정든 이웃이 있고,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돌보아야 할 소와 텃밭의 채소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체취가 있는 곳입니다. 이렇듯 고향 시골집은 비록 아버지가 계시지 않다 해도 어머니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모든 것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이 도심의 아파트에서 하루하루 째깍 째깍 소리를 내는 시계소리만을 들으면서, 하루 종일 벽만 바라보고 있어야 함을 생각하면, 아무리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라 하더라고 저는 아버지 말씀을 선뜻 따를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공간 속에 어머니가 홀로 계시는 것을 어느 자식이 그대로 보고만 있겠습니까만, 아무리 자식이 있다 한들 그 자식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 있을 터입니다. 한 평생 정든 곳을 훌쩍 떠나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지금 생각으로는 아버지 말씀대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시골에 계시면서 저와 형이 자주 찾아뵙는 것과 아버지 말씀대로 곧바로 자식들이 모시는 것 중,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고, 또한 말씀을 저리 하셨지만 진정 아버지의 참 뜻을 헤아리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