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서 동쪽으로 12번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검은 모래로 유명한 삼양해수욕장이 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불야성을 이루는 삼양해수욕장은 '모살뜸'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람 부는 날의 삼양해수욕장은 바다 색깔이 너무나 아름다워 기절할 정도였다. 수심의 깊이마다 그 색깔이 다른 가을 바다 색은 쪽빛이라고 해야 어울릴까? 아니면 비취빛이라고 해야 할까? 삼양해수욕장의 가을 바다는 초록과 쪽빛, 비취빛이 함께 나타난 환상의 바다다.
지난 여름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바다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구름을 이불 삼아 곤히 잠이 들었다. 심술 궂은 파도가 하얀 포말을 그리며 검은 모래밭을 휘감더니 백사장엔 모래섬이 하나 생겼다. 모래섬은 쪽빛 바다 한가운데 떠 있고, 변덕스런 파도는 금방 모래섬을 떠나 버린다.
아빠와 백사장을 걷던 아이는 아빠에게 모래섬에 가자고 졸라댄다. 성난 모래섬은 아이가 다가오자 지난 여름 이야기를 들려 준다. 아마 검은 모래섬은 여름 햇빛에 달궈진 까칠까칠한 모래를 온몸에 덮어 몸을 달구었다가 해수욕장에서 솟아나는 차가운 용천수로 몸을 식혔던 '모살뜸' 이야기를 전해 주었을 게다.
검은 모래섬은 아마 자신의 모래 속에 철분이 함유되어 신경통과 관절염, 비만, 피부염, 무좀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게다. 그러나 아이는 검은 모래의 모살뜸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아마 아이에게는 맑고 투명한 가을 동화 한 편이 그리웠을 게다.
심심한 가을 바다를 보니 지난 여름 '검은 모래 축제'가 생각났다. 검은 모래 위에 불을 지피며 축제를 즐겼던 여름 바다는 흥분되어 있었다. 파도 소리에 감탄하고 소리를 지르고 여름 하늘을 불야성을 이루었던 여름 바다. 그 여름 바다에 비하면 가을 바다는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다. 파도처럼 간사한 사람들의 마음을 모래섬은 알까?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눴던 파고라에도 가을 바람이 불어댄다. 딴 나라에 온 것처럼 휘청거렸던 야간 경조 조명도 외롭게 밤바다를 지키고 있다.
얼굴만 드러내고 검은 모래 속에 푹 파묻혔던 사람들은 어디 갔을까? 모살뜸 현장에는 적막이 흐른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쪽빛 가을 바다는 파도가 모래섬을 지키고 있다. 온갖 꽃단장을 하고 가을 동화를 기다리는 가을바다 그 철분 위를 걸어 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찾아 가는 길: 제주공항-12번도로(동쪽)-삼양파출소(좌회전)-삼양해수욕장으로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주변 볼거리로는 원당사지오층석탑, 원당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