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걸기'도 나름이다. 씨름판의 '안다리 걸기'가 있는가 하면 난장판의 '딴죽 걸기'도 있다. 그 차이는 게임 법칙의 준수 여부다. 축구공을 걷어차면 '파인 플레이'지만 상대 선수 다리를 걸면 '더티 플레이'가 되는 축구장의 룰과 같다.
그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오늘자 보도는 어떤 것에 해당할까?
<조선>의 질문과 <동아>의 답변
두 신문이 '태클'을 건 대상은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다. 어제 국회 대표연설서 행한 "조선노동당과의 당 대 당 교류" 제안을 문제 삼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남북 정당 간 교류가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든다"는 역대 정부의 판단과, 조선노동당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을 환기시킨 다음 "그런데 왜" 열린우리당은 조선노동당과 교류를 하겠다고 나서느냐고 물었다.
묻기는 했지만 답은 내놓지 않았다. 다만 통일연구원 조한범 연구위원의 입을 빌려 "아직 '적화통일' 당 규약을 바꾸지 않고 있는 조선노동당과 규약 변경 없이 교류협력을 추진한다는 건 성급하다"고 제동을 걸었을 뿐이다.
열린우리당이 조선노동당과 교류를 하겠다고 나선 이유, 그리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그 점에 주목한 이유는 <동아일보> 지면에서 제시됐다.
<동아일보>는 열린우리당의 제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초치기' 논평부터 소개했다. "정부 여당의 정체성에 의심이 갈 만한 사안", "정권 유지와 연장을 위한 북한 카드의 일환"이라는 한나라당의 논평을 소개한 뒤에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현 정권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한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 지휘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동아일보>가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의 입을 빌려 진단한 결과이다.
구도는 짜여졌다, 전선 확대!
이로써 구도는 짜여졌다. 천정배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청와대와의 사전조율 결과물로 몰아 정치적 공세의 여지를 확보한 두 신문이 이제는 전선 확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대남적화통일노선 규약을 떠받들고 있는 조선노동당과 교류를 하겠다는 열린우리당에다가, 국가보안법 사범의 구속을 막으라고 '사전 조율'한 청와대…. 이렇게 되면 정부 여당은 한나라당 논평처럼 "정체성에 의심이 가는" 세력이 된다.
이 거악(巨惡)의 구조에서 삐져나온 게 바로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이다. 따라서 헌법 질서와 국가정체성, 그리고 그것을 담보해주는 국가보안법을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든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무력화해야 한다. 그것이 국기를 세우는 일이요, 나라를 살리는 일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조선노동당과의 교류 제안을 고리로 걺으로써 두 신문은 계단 위에 서게 됐다. 한 발로는 아래 계단, 즉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밟고, 다른 발로는 더 높은 계단, 즉 국가보안법 '사수전'의 진지를 디딘 것이다.
이제, 붉은 채색
이제 그림을 그렸으니 채색만 하면 된다. "국가보안법상 조선노동당은 대남적화통일을 목표로 삼고 있는 '반국가단체'에 해당"(동아)되며, "북한 노동당은 남북회담의 주체도 아니"(조선)란 점을 되풀이 강조하면 그와 비례해서 정부 여당의 사상성은 붉게 채색된다.
방향을 세우고 고리를 건 마당에 반론을 경청하는 건 소모적이다. "남북교류협력법에 의해 조선노동당도 교류 협력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지위'가 보장돼 있기 때문에 교류 추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열린우리당의 반론은 구색맞추기용으로서만 유용성을 갖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마저 대남적화통일노선 규약을 신봉하는 반국가단체 조선노동당의 수괴, 김정일 총비서와 만나 악수를 나누고 교류를 논의했다는 사실은 굳이 누가 환기시키지 않는 한 먼저 재론할 필요가 없다.
<조선일보> 스스로 '조선노동당의 위성정당'이라고 했으니 대남적화통일노선에서 별 차이가 없을 법한 조선사회민주당의 초청으로 민주노동당 대표단이 방북을 했을 때, 이 두 신문이 방북 그 자체에는 별로 토를 달지 않았던 사실도 스스로 나서서 밝힐 필요가 없다.
조선노동당이 내각을 지도하는 북한의 특수한 정치구조를 고려할 때 조선노동당과의 교류는 남북긴장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선결조건이란 주장은 그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망상' 쯤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전쟁의 성격과, 공격목표, 진지까지 확보했으니 이제 싸움의 형세만 조절하면 된다. 천 장관의 일격으로 기선을 뺏긴 상태에서 전세를 뒤집을 카드가 필요하다. 역시 그것은 검찰의 몫이다. 행여, 김종빈 검찰총장이 지휘권을 수용해버리면 본싸움을 벌이기도 전에 짐을 싸야 한다.
'사즉생'(동아) 용어까지 동원하며 김 총장의 결전을 '전망'(?)하는 이유가 뭔지는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