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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문학촌 앞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김유정 문학촌 앞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 지영수
길가 가로수들이 나날이 옷을 갈아입는 가을이 왔다. 가을의 문턱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책을 한 권 읽는 재미도 좋지만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면 어딘가로 떠나보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하루의 여유를 두고 맘 잡고 찾을 수 있을 만한 곳이 흔하진 않다. 이럴 땐 춘천에 사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얼마 전 김유정의 <봄봄>을 읽고 꼭 한번 그 너른 들판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잘 찾지 못했는데 가을 하늘 덕분에 변덕스레 찾은 곳이 '김유정 문학촌'이다.

가을 들판에서 만나는 해학

문학촌의 초입에서부터 가을의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익을대로 익어 고개숙인 벼하며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은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해준다. 생가와 헛간 그리고 기념관 등으로 구성된 문학촌은 김유정 생가의 터를 춘천시가 매입해서 새로이 단장한 곳이다.

김유정 문학촌 입구
김유정 문학촌 입구 ⓒ 지영수
문학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생가 모양이 'ㅁ'자형의 폐쇄적인 독특한 구조라는 것이다. 보통 강원도에서 볼 수있는 구조와는 다른 것. 이것은 김유정이 태어났을 시기 우리네의 엄혹한 상황을 잘 나타내 준다.

조선왕조의 대표적 외척 가문이던 김유정 집안은 춘천 등지에서 세도 있는 가문이었다. 일제시대, 헐벗고 못 먹는 사람들이 많던 그 시절에는 화적떼도 많아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 재산 있는 것을 위장하기 위해 기와집 목조구조에 초가지붕을 올리고 굴뚝이 땅에 붙어 있는 구조를 취한 것이라고 문학촌 사무국장 원태경씨는 설명한다.

김유정 생가. 정자에 앉아 책 한권 읽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김유정 생가. 정자에 앉아 책 한권 읽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 지영수
하지만, 그저 그런 가문의 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김유정의 섬세한 작품 세계는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방탕한 형 탓에 집안 재산이 모두 거덜나자 김유정은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휘문고보와 연희전문학교로 진학한 그는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친구인 안회남과 찰리 채플린, 버스트 키튼 등의 영화에 빠져들게 된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해학은 이때부터 싹튼 듯하다.

다시 춘천으로 돌아온 그는 소작농들과 뒹굴면서 그들과의 얘기를 소설로 써 내려갔다. 그것이 <동백꽃> <봄봄> 이다. 김유정의 생가 주변으로는 <봄봄>에 나오는 봉필 영감의 집터도 있고 점순과 만났던 숲 속도 있다. 그래서 김유정은 그 당시 이광수로 대표되는 관념적, 피상적 농촌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직접적이고 실감나는 농촌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문학 천재도 피할 수 없었던 짝사랑 열병

김유정 동상. 가을 하늘 배경으로 사랑에 상처받은 그의 슬픈 눈이 가슴을 적신다.
김유정 동상. 가을 하늘 배경으로 사랑에 상처받은 그의 슬픈 눈이 가슴을 적신다. ⓒ 지영수
김유정의 문학세계를 형성한 요소 중에 그저 마름, 소작인들과 뒹굴었던 경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유정은 서울 상경 당시 기생인 명창 박록주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것은 열병같은 짝사랑이었다. 김유정의 수 십 편의 연애편지에도 박록주의 마음은 녹을 줄 몰랐고 녹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어디 사람이 동이 낫다구 한번 흘낏 스쳐본
그나마 잘 낫으면 이어니와, 쭈그렁 밤송이 같은 기생에게
팔린 나도 나렷다. 그것도 서로 눈이 맞아 달떳다면이야
누가 뭐래랴 마는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녀겨주지 않으려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받는 엽서를 석달동안이나 썻다…"

- 김유정의 소설 '두꺼비' 중에서-


기념관 안. 봄봄을 귀여운 인형극으로 형상화 했다.
기념관 안. 봄봄을 귀여운 인형극으로 형상화 했다. ⓒ 지영수
이후 각종 잔병치레와 폐병, 고질적인 치질로 몸이 안 좋아질 대로 안 좋아진 김유정은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들병이들과 어울리며 살다 다시 춘천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당시 천재 신인 작가로 칭송받던 김유정은 같은 잡지에 글을 실었던 박봉자에게 반해 그녀에게도 열렬히 구애했지만 박봉자는 단 한 통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때 이미 김유정의 몸은 언제 죽을지 모를 상태였기 때문이다.

세도 있는 가문의 아들로 모두의 축복 속에 왔지만 결국엔 쓸쓸하고 불행하게 돌아간 김유정. 그 때 당시 같이 폐병을 앓고 있던 시인 '이상'이 찾아와 동반 자살 제의를 하지만 "나는 내년 봄에도 소설을 쓰겠다"고 거절한 김유정은 결국 돈 100원이 없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봄의 하늘로 돌아갔다.

전국 636개의 기차역 중 유일하게 인물의 이름이 역명으로 쓰인 김유정역.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가 우리 문학세계에서 보여주는 위치를 알 수 있다. 김유정 문학촌을 나서면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역과 길에 더욱 많은 문학인들의 이름이 붙어 제2, 제3의 김유정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김유정 문학촌 가는법


*시내버스 노선안내

- 남춘천역에서: 두미리 종점 1번 버스, 신남 종점 67번 버스
- 춘천역에서: 한림정보산업대 종점 6-1번 버스->시외버스터미널->정족리 종점 39번버 스->남춘천역->1번,67번 버스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정족리 종점 39번 버스->남춘천역->1번,67번 버스
- 문의: 대동운수 254-2345 춘천시청 교통행정과 250-3366

*기차로 오시는 길

청량리에서 경춘선 열차를 타시면 김유정역에서 내려(걸어서 5분) 문학촌을 찾아오실 수 있습니다. 김유정역에는 하루에 일곱번 기차가 정차합니다.

[김유정역 정차 청량리발 기차 시간]
06:15 07:05 09:50 13:50 15:50 18:55 20:40 / 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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