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소록도는 이날따라 더욱 조용하기만 했다. 언제나 푸른 소록도 전경.
소록도는 이날따라 더욱 조용하기만 했다. 언제나 푸른 소록도 전경. ⓒ 최경필
소록도는 울지 않는다. 다만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또 분을 삼키며 다시 가는 것이다.

지난 25일 일본 도쿄지방법원 재판부는 고흥 소록도 한센인 117명의 보상신청 소송을 기각했다. 기각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고흥민예총은 이미 몇달 전부터 계획된 '신나는 예술여행' 사업의 국악공연을 위해 소록도를 찾았다.

이 공연은 문화예술 혜택을 받기 어려운 곳을 직접 찾아가 벌이는 사업으로 국무총리 복권위원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고 있다. 이날 공연은 고흥민예총이 전남동부지역 낙도, 사회복지시설, 교정시설을 대상으로 하여 신청하여 선정된 사업으로 올해 마지막 회였다.

전날 오후 국립소록도병원 자원봉사계 담당자의 통화는 비록 작은 공연이지만 불안하게 만들었다. 일본에서 소송기각 소식이 들리자 소록도의 모든 행사들이 취소되었고 우리 공연도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다행히 이 공연만큼은 추진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고 안심할 수 있었다.

26일 오후 1시 고흥 녹동항에서 지척인 소록도를 건너는 차도선은 이런 분위기와 아랑곳없이 소록도를 찾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휴일에는 1천여 명이 찾을 정도로 소록도는 이제 유명한(?) 관광지로 변하고 있다.

녹동항 상인들은 관광객들이 소록도 한센병 유적지와 한을 삼키며 살아온 한센인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절제하기 때문에 돈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소록도는 즐기는 관광이 아닌 자녀들과 함께 손을 잡고 오솔길을 걸어 중앙공원과 한센병 전시관 및 유적지를 둘러보고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소송기각 소식에 실망한 주민들이 많아 평소보다 적은 1백여명이 참석했다.
소송기각 소식에 실망한 주민들이 많아 평소보다 적은 1백여명이 참석했다. ⓒ 최경필
이날 녹생리 마을광장에서 행사를 준비했다. 아마 그토록 원했던 보상소송이 승소했더라면 이 넓은 광장을 가득 채웠을 것이지만, 실망한 한센인 가족들은 겨우 80여명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우리는 공연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약간의 간식거리도 준비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이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소송기각 소식으로 힘든 한센인들이 이 공연을 통해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자치회 김정현 반장(총무담당)이 나와 주민들을 위로하며 건강을 염려했다. 이날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김정현 반장을 비롯한 한센인대표단은 일본대사관 앞 항의집회를 위해 상경했다.

소록도에서의 공연은 언제나 조용하기만 하다. 한센인들은 대부분 손가락이 뭉그러져 박수를 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으로 "잘한다", "좋다"로 대신한다. 이날 행사장에는 KBS 'VJ특공대' 취재팀이 찾아와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이날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기서 실망하지 않고 계속 일본정부 및 일본 사법부와 싸워서 이들의 한이 해소되기를 기원한다.

이날 소록도 녹생리에는 VJ특공대 취재팀이 찾아와 현장을 취재했다.
이날 소록도 녹생리에는 VJ특공대 취재팀이 찾아와 현장을 취재했다. ⓒ 최경필
일본 정부는 지난 2001년 일본인 환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하자, 항소하지 않고 특별법을 제정해 1907년 나병예방법에 따라 강제 수용된 일본인 환자에게 1인당 1000만엔(약 1억원) 안팎의 보상을 해준 바 있다. 그러나 26일 민사38부는 대만 한센인들에 대해서는 보상신청을 받아들였지만, 민사3부는 소록도한센인의 소송은 기각시키는 고무줄 판결을 했다.

이 공연으로 낙담한 한센인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되기를 바랐다.
이 공연으로 낙담한 한센인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되기를 바랐다. ⓒ 최경필
소송을 신청한 117명은 대부분 고령자이고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른다. 대만 한센인 소송승소가 희망으로 남지만, 소록도 한센인들은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한숨짓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최경필 기자는 전남 고흥민예총 사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