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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양에서 알 건 다 알고 내려온 몸이야. 그냥 불면 몸도 편하고 맘도 편하고 그러지 않겠나? 자 어서 말을 하게."

조필두의 달래는 음성이 더 뱀처럼 갖바치의 몸을 감았다.

"일껏 이르지 않았소. 만들어 놓으면...... 매달 보름에 가져가는 이가 있다고......"

갖바치가 기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심한 매질이 아니었어도 흰머리가 태반인 초로의 중늙이 기력으로서는 이제껏 버틴 것도 용했다.

"그러니까 그자가 누구며 어디에 이걸 가져가느냐 말이닷!"

조필두가 쌓아 놓은 가죽 제품들을 확 걷어찼다. 기둥에 대어 가득 쌓여 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한 눈에 보기에도 총포류에 필요한 도구를 수납하는 띠나 등짐을 질 수 있는 가죽 바랑류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100벌이 넘는 양이며 필경 군물(軍物) 분명할진데, 이걸 군영이 아니면 어디에 대느냔 말이다. 가져가는 놈이 누구며 어디로 가는 물건이냐."
"성도 이름도 모른다니까. 그저 100벌이든 200벌이든 나야 돈만 그때그때 잘 쳐주면 굳이 캐물을 게 뭐겠소."

여전히 갖바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안 되겠다. 덮어라."

조필두가 인상을 잔뜩 우그리며 갖바치를 누르고 있는 수하에게 말했다. 평복 차림의 포졸이 품속에서 한지를 꺼내 갖바치의 얼굴에 덮었다. 그리고 물 담은 바가지를 한지 위에 천천히 부었다.

"우에에~우헙."

한참을 참는 듯 하던 갖바치가 요동을 치며 고개를 움직였으나 꽉 잡힌 상투 탓에 별 효험이 없었다. 평복 포졸이 주르르 한 바가지를 천천히, 아주 느리게 흘려 부었다. 젖은 한지는 천장을 향한 갖바치의 얼굴에 달라붙어 호흡기를 막았다.

"압핫하.... 아푸부......"

갖바치가 두려움에 버둥거리며 절규하였으나 그저 몇 종류 소음으로만 미어져 나왔다.

"어때? 이제 그자의 이름과 물목이 흘러간 장소가 생각이 나나?"

조필두가 쟁그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갖바치의 귓가에 다가와 속살거렸다.

"아.....푸.....푸......"

갖바치가 마지막 숨을 넘기는 듯 뒷결박진 배를 한껏 들어올렸다.

"말하겠소! 아는 건 달 말할테니 그만 좀 하오. 제발!"

꺼져가는 갖바치를 보고 소리 친 건 그의 과년한 딸이었다.

"그래 진작 그럴 것이지. 끌글끌끌."

조필두가 음흉하게 웃으며 갖바치의 얼굴에서 젖은 한지를 떼어냈다. 갖바치가 가래톳같은 걸죽한 숨을 뿜어냈다.

"소녀의 아비가 말한 바는 맞소. 매달 보름과 그믐에 한 번 송도 상인 임 아무개라는 이가 들릅니다. 그 때 대금을 지불하고 만들어 놓은 물목을 다 실어가기에 우린 어디에 소용이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뭐야! 정녕 나와 해보자는 게냐?"
"끝까지 들어 보시오. 내 언뜻 들은 바는 이것이 배에 실려 어딘가로도 가고 우마에 얹혀 운산 일대의 어느 광산으로도 간다 했소. 무슨 짓을 해도 그 이상은 말해 줄 게 없다오."

조필두는 처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횃불로도 다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는 터여서 홍채까지는 볼 수가 없었으나 되바라진 처자의 태도와 똑바로 응시한 눈을 볼 때 허튼 수작으로 내뱉는 말은 아닌 듯했다.

"그게 다냐? 고작 한다는 말이 평안도 광산은 다 몰린 운산 어디라는 말이냐?"
"대암산이라는 말과 구룡강에 관한 이야기가 있긴 하였으나 그게 운산 어디인지는 알지 못하는 바요."

조필두의 말에 갖바치의 딸이 말했다.

"대암산이라..... 대암산......"

조필두가 혼잣말을 뇌어 보았다.

"동개야."
"예. 부장 나리."

혼잣말을 하던 조필두가 평복 차림의 포졸을 조용히 불렀다.

"아무래도 동개 네가 고생을 해 주어야겠다. 언놈이와 네가 운산으로 가 내막을 캐거라. 대암산과 구룡강이라면 대암천 상류의 광산 중 하나일 게야. 대놓고 기찰하지 말고 은밀히 광군으로 꾸며 잠입토록 하고."

동개라 불리는 포졸의 귀에 속삭였다.

"예. 알겠습니다요."
"기일은 여유 있게 잡고 면밀히 살필 것이야. 난 이놈들을 박천 현감에게 넘기고 일대를 탐문할 것이니 알아낸 바가 있다면 지체 없이 기별을 띄우거라. 역참을 통해 날리면 어느 곳에 있든 내게 닿을 수 있을 것인즉."
"염려 놓으십시오."

동개 역시 속삭이듯 간결히 말했다.

"그래, 너희만 믿는다. 떠나기 전에 저 계집은 너희가 품거라. 내막만 밝혀지면 어차피 참수를 면치 못할 것들이니."

조필두가 선심 쓰듯 동개에게 말했다. 수하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네 이놈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그러고도 네놈들이 나라의 녹을 먹는......악!"

묶인 채 누워서 악을 쓰던 갖바치가 목을 떨구었다. 그 위에서 조필두의 도리깨가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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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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