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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의 은사가 맑은 정신으로 시를 쓰시고 옛 제자에게 편지를 보낸 정성과 건강에 감동할 뿐이다. 원래 선생님은 편지를 보내실 때 한지 두루마리에다 붓으로 써 보내셨다.
그런데 이번 편지는 편지지에 볼펜으로 써 보내셨다. 아마도 지금은 붓글씨를 쓰실 여력이 없으시나 보다. 몇 해 전, 다가올 죽음을 앞두고 친구와 제자들에게 남기는 말씀을 시집으로 엮어 보내온 바, 그 가운데 <고별>을 들어본다.
고별(告別)
"까마귀 죽을 때 그 소리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 그 말이 선하다"고 했던가
나 이제
참회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고별인사를 해야겠습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멀지 않아 찬바람과 함께 눈이 내릴 것입니다.
마음이 자꾸만 바빠집니다.
필연코 떠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길을 잃고 어두운 광야에서 방황할 때
끌어주던 친구여
내가 먼 여로에 지쳐 길가에 쓰러졌을 때
물을 먹여준 친구여
내게 첫 사람을 준 그 이여
나를 모멸하고 음해하던 친구여
나를 잘 따라주던 제자들이여
이제는 모두가 내 친구들입니다.
애증(愛憎)의 잔재는 추호도 없습니다.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으로
고별인사를 드립니다.
내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마음이 바빠집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