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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할아버지는 면허가 있는 한의사가 아니고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에게 침을 놓아주는 분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내 몰골을 훑어보더니 ‘와사증’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영양 실조에다가 찬 방에서 자면 오는 증세라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허리에 찬 안경집 같은 침구통에서 대침을 꺼내더니 입이 돌아간 반대편 볼에다가 대침을 꽂았다. 그때 나는 그 대침에 진땀을 흘리면서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무지막지하게 아프리라는 내 선입감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10센티미터쯤 되는 대침을 내 오른쪽 볼에 거의 다 꽂고는 손가락으로 몇 번 친 뒤 천천히 뽑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침을 뽑고는 찬 방에서 자지 말고 세 끼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일렀다.
돌아오면서 어머니가 저고리 소매에 넣어둔 돈을 수고료로 드렸지만 할아버지는 그 돈으로 아이 고기국이라도 끓여주라고 끝내 받지를 않았다. 나는 그 침 한 방으로 입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때를 회상하고 있다. 나는 그 뒤 그 할아버지에게 감사 인사도 드리지 못하였고, 함자도 모른 채 오늘까지 지내왔다. 그때가 1961년으로 44년 전이니 아마 그 할아버지는 벌써 저 세상 분이 되셨을 거다. 내 저승에 가서 그 어른을 만나 뵐 수 있을는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10여 년 전, 고3 졸업반 담임을 맡으면서 그 해 장편소설을 썼다. 그때는 워드를 칠 줄 몰라서 만년필로 원고지에다가 썼다. 나는 원고에 대하여 결벽증이 심한 성미라 완성한 원고는 3000매 정도였지만 파지까지 1만매는 더 썼다. 혹 학생들 지도에 소홀하였다는 후문을 들을까봐, 결근 지각 조퇴 한 번 하지 않고 주말과 밤을 이용하여 썼더니 탈고 후 얼마 지나자 마침내 어깨 통증이 왔다.
오른 팔을 들 수도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하였다. 고통을 참아가며 수업을 하는데 판서에 이만저만 고통이 심하지 않았다. 누군가 학교에서 가까운 연희 입체교차로 곁에 있는 한 한방병원(동서한방병원)을 소개해 줘서 열심히 다니면서 침을 맞았다.
한 달 남짓 다니자 씻은 듯이 나았다. 침을 맞으러 다닐 때는 다시는 팔을 무리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지만 어찌 작가가 어깨를 쓰지 않으랴. 안흥에 내려오고도 벌써 두 번째 앓는 어깨 통증이다.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절망감이 심하였는데도 다행히 이번에도 침술 덕분에 통증이 멎었다.
나를 치료하였던 이현주 한의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더니, 서로 인연이 맞아서 제 침이 들었던 모양이라고 겸손해 했다. 다행히 나는 기(氣)와 혈(血)이 살아 있어 효험이 있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내 몸 돌보는데도 힘쓰라고 충고하였다.
하늘은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앞으로는 무리하지 말고 조심하면서 허튼 글 쓰지 말고, 내 마음 속 깊이 담겨져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라'고.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