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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장판수는 얘기를 마치고 방에서 나온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사내는 적잖이 놀란 투였지만 차충량이 장판수를 부르자 안도하며 가벼이 목례를 하고서는 재빠른 걸음으로 가 버렸다.

“아니 거사를 위해 사람을 사겠다는 것입네까? 아까 저 자의 낯짝을 보니 생긴 것도 쥐새끼 같고 눈빛이 불안한 게 영 맘에 들지 않습네다.”

차충량은 난감한 투로 대꾸했다.

“청의 사신이 오는 날이 바로 이틀 뒤일세. 그 사이 어찌 의기투합하는 자를 찾겠나. 내 저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흩트려 일을 수월하게 할 작정으로 부른 것이네.”

“그게 무슨 소립네까?”

차충량의 계획이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의구심까지 든 장판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도 보았다시피 남별궁 근처에는 매복할 만한 곳이 없거니와 활로 쏘는 것은 자칫하면 빗 맞출 수 있네. 그렇기에 청나라사신 일행이 남별궁으로 들어서는 순간을 노려 역적 정명수와 박가놈들을 칼로 칠 것일세.”

“예?”

장판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렇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는 차충량을 말릴 틈조차 없어지는 셈이었다. 방법이 있다면 내일이라도 차충량을 꽁꽁 묶어두고서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판수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 졌지만 이런 장판수의 속내는 신경 쓰지 않는지 차충량은 심드렁한 얼굴로 태연히 말했다.

“오늘은 푹 쉬어 두게나. 기방에다가 저녁상을 거나하게 마련해 오도록 일렀으니 말일세.”

그날, 차충량은 기생을 옆에 끼고서는 죽어라고 부어대고 마셔대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탐탁지 않아 마다하던 장판수였지만 독한 술이 한두 번 오고가자 들뜬 분위기에 저절로 어울리게 되었고, 곧 술로 인해 정신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 되어 마당으로 뛰어가 토악질을 해댄 다음에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목숨을 건 거사를 앞두고 있다지만 전란 후에 초근목피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비참한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놀고먹어서야 말이 되는가.’

깊은 잠 속에서 스스로에게 이런 외침이 울려 퍼진 후 장판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끗하게 치워진 방안을 보며 장판수는 간밤의 일이 꿈같이만 느껴졌다. 장판수가 머리맡의 자리끼를 주욱 들이키고 밖을 보니 슬슬 동이 트고 있었다. 그때서야 장판수는 방안에 혼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거...... 아무리 그래도 기생을 끼고 잠들 이가 아닌데. 차선달은 새벽부터 어딜 갔을꼬?’

장판수가 어슴푸레한 방안을 보니 자신이 누워있던 머리맡에 깨끗하게 겐 옷과 함께 쌈지가 놓여있었다. 장판수는 별 생각 없이 쌈지를 열어 보았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안에는 은전이 들어 있었는데 비록 다른 편지글은 없었지만 장판수에게 그만 돌아가도 좋다는 무언의 말이나 다름없었다.

“간밤에 있던 양반을 못 봤나?”

아직 잠이 덜 깬 기생을 찾아내어 다그치며 장판수가 소리치자 그들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제 오라비께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잠이 들자 선달께서는 저희들을 물러가게 한 후 짐을 챙겨 바삐 나갔소이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오.”

‘이런 낭패가 있나.’

장판수는 서둘러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막연한 가운데 차충량을 찾아내는 일은 힘들었다.

‘이거 미리 눈치를 채고 나를 떼어 놓은 것 아닌가! 이러다가 충량이 무리한 거사를 벌여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어찌 심양으로 가 예량을 만날 면목이 있겠는가!’

이른 아침을 맞아 여기저기서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는 거리를 장판수는 정신없이 내달리며, 밤새 묵을 만한 곳을 찾아 차충량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충량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했고 청나라 사신 일행은 점점 한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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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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