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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뚜라미가 '투명 경기장'에서 싸움을 하고 있다.
ⓒ 유창하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보다 개, 고양이, 새, 물고기, 곤충 등 애완용 동물 기르기를 좋아한다. 상하이의 중산층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가다 보면 송아지만한 큼지막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성들을 만나 가끔 놀라기도 하고, 집 근처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노라면 가끔 갑자기 나타난 큰 개로 공포감을 느낄 때도 간혹 있다. 그때 개 주인은 '뭘 그런 걸 가지고 다 놀라나'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개, 고양이 같은 애완용 동물뿐만 아니라 특이하게도 작은 곤충인 귀뚜라미를 유별나게 좋아한다. 귀뚜라미를 즐겨 키우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닭싸움, 소싸움 시키듯 '귀뚜라미 싸움'도 시키며 심지어 '귀뚜라미 도박'이 벌어지기도 한다.

▲ 시장에서 귀뚜라미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신기한 듯 한 외국인이 촬영에 열중이다.
ⓒ 유창하
물론 중국 정부에서도 귀뚜라미 싸움을 시키며 구경하는 건 개인 자유로 맡기지만 귀뚜라미 도박은 단속을 강력하게 실시하기 때문에 사람들 눈을 피해 도박이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

평소 상하이 사람들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던 중, 중국인들이 귀뚜라미 사고파는 시장이 있고 거기서 귀뚜라미 싸움도 벌어진다는 말을 듣고 싸움 광경을 직접 보기 위해 상하이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귀뚜라미 시장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고려 때 궁중에서 귀뚜라미 키워

귀뚜라미는 메뚜기목 귀뚜라미과 'Grylloidea'에 속하는 곤충의 총칭이다. 세계적으로 약 3000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극동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작은 곤충이다.

개혁개방 정책 이후 중국에는 '중국귀뚜라미협회'가 이미 조직되어 있고 귀뚜라미도 색깔, 크기, 힘, 싸움 능력 등에 따라 몇 개 등급으로 나누어 판매하고 있다 한다. 귀뚜라미 집도 재료나 장식성, 제작 연대에 따라 여러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 귀뚜라미를 키우는 원통형 집이다. 집안에는 물통과 먹이통이 있다. 대나무로 귀뚜라미를 건드리며 '용맹성'을 테스트 하고 있다.
ⓒ 유창하
지난 10월에는 상하이 귀뚜라미 시합이 상하이세무전시관에서 열릴 정도로 귀뚜라미 키우기가 중국 경제성장과 더불어 최근 활성화되고 있고, 귀뚜라미를 키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과거의 문헌을 찾아보니 '중국에선 당나라 때, 일본에선 11세기에 애완용 귀뚜라미를 채집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송나라 때에 귀뚜라미 싸움을 즐겼다 하고 명나라와 청나라 때 제일 번창하여 황제까지 좋아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는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 따르면 고려 궁중에서도 귀뚜라미를 금롱에 넣어두고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 싸움에 지친 귀뚜라미가 도망을 가고 있고 다른 귀뚜라미는 계속 공격하기 위해 다가가고 있다.
ⓒ 유창하
중국의 귀뚜라미싸움은 명대와 청대를 거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개화기인 중화민국 시대 부유한 귀뚜라미 소유주는 전담 코치를 둘 정도였다 한다. 그러다 마오쩌둥 통치 시기에 귀뚜라미 싸움이 자취를 감추었다가 개혁 개방 이후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귀뚜라미 시장이 다시 활성화되고 '귀뚜라미 싸움'도 시장경제의 한 부분으로 커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문헌에 의하면 중국 청나라 때 포송령(蒲松齡,1640~1715)이 쓴 '요재지이(聊齋志異)'라는 소설 이야기가 있다. 황실에서 귀뚜라미 싸움이 유행하자 전국의 우수한 귀뚜라미를 잡아 올리는 일이 지방관리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될 정도였다 한다.

챔피언, 장군 귀뚜라미는 천만원에 거래

▲ 상하이의 귀뚜라미 시장 모습이다.
ⓒ 유창하
상하이에서 제일 큰 귀뚜라미 시장은 시내 중심가인 시장난루[西藏南路] 405호에 자리 잡고 있는 상하이 완상화뇨우위총[萬商花鳥魚蟲] 시장이다. 귀뚜라미 시장 맞은편에는 상하이를 찾는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동타이루[東苔路]의 골동품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10월 말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귀뚜라미 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귀뚜라미를 판매하는 이 시장에는 귀뚜라미 외에 새, 물고기, 햄스터, 고양이, 곤충, 애벌레 등을 사러 오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난다.

▲ 새끼 귀뚜라미 한마리 700원이다. 구매 고객이 돋보기로 살펴보고 있다.
ⓒ 유창하
귀뚜라미 판매 점포가 밀집해 있는 곳으로 다가가니 곤충 특유의 매캐한 누린내가 후각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곳 시장 안에 놀랍게도 귀뚜라미와 귀뚜라미 기르는 용구들을 판매하는 귀뚜라미 점포가 무려 50여개나 될 정도로 귀뚜라미 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있었다.

먼저 수많은 귀뚜라미 원통집이 눈에 확 들어온다. 점포마다 귀뚜라미집이 높이 쌓여 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한쪽에서는 나무로 만든 귀뚜라미 원통 안에 성충 귀뚜라미가 암놈 수놈 한 쌍씩 들어 있는 게 보이고 조그만 비닐 통 안에는 새끼 귀뚜라미가 들어 있다. 귀뚜라미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통 속에는 물통과 먹이통 자그마한 것이 들어 있다.

나무원통에 든 성충 귀뚜라미는 10위엔(우리 돈 1300원)에서 200위엔(우리 돈 2만6천원) 정도에 팔리고 있고, 비닐 통에 든 새끼 귀뚜라미는 2위엔(우리 돈 260원)에서 5위엔(650원) 가량에 팔리고 있었다.

▲ 귀뚜라미 싸움을 다루는 각종 DVD와 서적들
ⓒ 유창하
이 외에도 귀뚜라미 사육을 안내하는 각종 서적과 싸움대회를 담은 DVD도 진열대에 보이고 귀뚜라미 키우는 데 필요한, 용도를 알기 힘든 각종 귀뚜라미 공구들도 판매되고 있다.

이 시장에서 귀뚜라미 가격은 통상 가격으로 거래되지만 중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귀뚜라미 싸움대회에서 우승을 한 귀뚜라미는 '장군 귀뚜라미'라 부르며 우리 돈으로 몇 백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까지 거래되고 있다고 귀뚜라미 판매상은 알려 준다.

사람피를 빨아먹은 모기와 영사를 먹이로

▲ 전투에 임하기 전에 귀뚜라미 주인들이 대나무 가지로 귀뚜라미 입을 건드리며 전의를 돋우고 있다.
ⓒ 유창하
귀뚜라미 인기를 반영하듯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귀뚜라미를 고르고 있다. 어떤 고객은 돋보기로 작은 귀뚜라미를 들여다보며 좋은 귀뚜라미 고르기에 여념이 없다.

어떤 노련한 고객은 많이 해 보았는지 귀뚜라미 약을 올리는 용도인 대나무가지로 직접 귀뚜라미를 건드려 보기도 하고 귀뚜라미 품평을 하며 날개 움직임과 동작을 자세히 살피다가 결국 마음에 들었는지 같이 온 친구들과 함께 구매한다.

다른 쪽으로 더 들어가니 여기저기서 귀뚜라미 싸움이 한창이고 구경꾼도 많이 모여 있다. 귀뚜라미 시장을 찾은 외국인들은 신기한 듯 틈새에 끼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귀뚜라미는 가을이 된 후에 흙·돌·벽돌·기와 밑에서 울기를 좋아하며 고기를 쌀알만큼씩 썰어서 영사(靈砂-수은과 유황을 섞어 잘게 만든 한약)와 섞어주면서 기르면 잘 싸운다'고 한다.

실제로 중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귀뚜라미 싸움대회에 임할 때 귀뚜라미 주인은 사람 피를 빨아먹은 모기를 갈아서 잘게 쓸어 영사와 섞어 만든 먹이를 주면서 시합에 임하게 한다는 말도 있다.

귀뚜라미는 수컷이 다른 수컷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에는 이따금 정열적인 싸움을 벌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싸움을 할 때에는 두 투사가 서로 상대를 향해 호전적인 소리를 내고, 싸움을 마치고 나면 승자는 개선의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 곳 귀뚜라미 싸움의 현장에서도 귀뚜라미 주인들이 귀뚜라미 입을 간질거리며 약을 올려 호전성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도록 하고 있다.

싸움 귀뚜라미들은 강력한 턱과 이빨로 공격에 나선다. 어떨 때는 뒷다리로 버티며 팽팽한 힘겨루기에 들어간다. 그러다 힘에 부치는 놈이 물러나며 싸움은 끝이 난다.

싸움을 구경하는 관객들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고, 귀뚜라미 주인들은 귀뚜라미의 공격과 후퇴에 따라 환희와 실망의 표정을 번갈아 짓기도 한다. 구경꾼들은 환호를 하고 때론 훈수를 두기도 한다.

이번에 특이한 상하이의 귀뚜라미 시장을 다녀오고 한편으로는 관련 자료도 찾아보면서 귀뚜라미라는 미물에 불과한 곤충이 특이한 형태로 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중국인 개개인의 소득증대에 따른 여가생활이 특유의 전통문화와 접목돼 서구와는 또 다른 다양한 형태의 문화 소비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유창하 기자는 다음카페 "중국 상하이 한인 모임" http://cafe.daum.net/shanghaivillage 운영자이다. 중국 상하이 한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역사 문화 경제 등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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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 기간 오마이뉴스에서 쉬었네요. 힘겨운 혼돈 세상,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일상을 새로운 기사로 독자들께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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