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나 뒹굴고 있는 돌. 화가 나면 확 차버리기도 하고 물수제비를 만들기 위해 강으로 던지기도 하고 예쁜 것은 주워 다 집에 두기도 한다. 하지만 수천 어쩌면 수억만 년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돌.
그 돌에 생명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저 돌이거늘, 그러나 거기엔 하늘의 미소가 있다. 사람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산 전체가 노천박물관이라 할 만큼 유적들이 산재해있는 경주 남산, 연꽃이 아름다운 서출지 옆에 7년째 둥지를 틀고 있는 화가 야선(野仙) 박정희(41)씨는 인간의 미미한 세월의 존재보다 깊은, 돌에 담겨진 심상들을 하나 하나 끄집어냈다.
그 안에는 자비의 원천인 부처님이 있고 인류를 사랑으로 구원한 예수님도 있다. 늘 웃고 있는 옆집 할머니에서부터 천진난만한 아이도 있고 우리의 역사를 이어온 이순신, 안중근, 유관순 등 영웅들의 모습도 있다.
지난 여름부터 인연이 닿는 돌을 모으고 다시 인연이 맞는 돌들을 함께 붙이고 거기에 맞는 얼굴을 그려낸 그녀의 작품들. 그래서 지금 야선의 집에는 수천의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
"어떤 이는 부처의 얼굴로 어떤 이는 관음의 얼굴, 어떤 이는 미륵의 얼굴, 어떤 이는 예수의 얼굴, 어떤 이는 이순신을, 어떤 이는 유관순을,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주름 자글한 할멈의 얼굴을, 어떤 이는 천진한 동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야선은 긴 세월 속에서 그들의 얼굴을 기억해냈고 발품을 팔아 그들의 몸을 찾아내 눈 속에, 귓속에,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인연의 풀로 다시는 떨어지지 않도록 붙여주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을 닮았다. 푸르고 넓고 깊고 높은, 天의 미소"- '天의 미소' 팸플릿 글 중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평온한 표정을 하고 해탈을 한 구도자의 모습으로 그녀가 정해준 제 자리에 앉아있거나 서있다.
'天의 미소' 하늘의 미소를 가진 그들은 오는 11월 5일(토)부터 11월 13일(일)까지 그녀의 집 야선갤러리에서 대중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묵언의 모습으로 세상의 진리를 설파할지도 모른다. 야선은 이번 작품전시회가 쓸데없는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 세상이 변해도 끊임없이 배출되는 위정자들, 그들의 그늘에서 고통 받고 소외받는 우리네 평범한 삶들에게 돌 속의 환한 미소를 통해 긍정적인 생각을 전해주었으면 한다.
고통은 밤과 낮, 낮과 밤 같아서 반드시 지나고 나면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 온다는 것을, 그런 희망을 안겨주고 싶어서….
이번 전시회는 '세상에는 어떤 것도 영원한 내 것이 없다'는 평소 그녀의 지론이 하늘의 미소를 닮은 돌을 통해 예술로 승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는 11월 5일 오후 2시 야선갤러리 앞에서는 명상음악가 홍순지씨의 '세속에서의 명상' 공연과 포항 소호갤러리 김해숙씨의 춤, 포항풍물단 오름골의 풍물, 선후배와 함께 야선퍼포먼스 등이 펼쳐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