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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아이의 학교에서 꿈동이 큰잔치가 열렸습니다.
ⓒ 박미경
"우리 애는 학교를 옮겨야 할까봐."
"뭐? 왜? 무슨 일 있어?"

"글쎄 작년에 학예발표회 때 공연을 못했거든, 작년에 못해서 올해는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올해도 못했단다. 애가 작년에도 많이 실망했는데 올해도 발표회에 참가 못 하니까 전학 보내 달라고 성화를 부리는데 어떡하니? 날이면 날마다 하는 것도 아니고 1년에 딱 한 번 하는 발표회에 다른 아이들 작품을 준비하고 발표하는 것 보면서 속상해 했을 아이를 생각하면 왜 자꾸 화가 나니?"

"에이, 언니가 참아라. 그럴 수도 있지 뭐. 내년에 주인공 하면 되지. 우리 딸도 올해는 공연 못했는데. 그래도 괜찮은 거 같던데…."

지난 6일 아이의 학교에서 학예발표회가 열렸습니다. 학예회가 열리는 학교강당은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러온 학부모들과, 한껏 멋을 내고 의상을 갖춰 입은 아이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아이들의 공연을 지켜보는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발표회를 지켜보면 학창시절 학예발표회를 했을 때가 생각도 나고 발표회를 지켜보다보면 아이들이 지난해보다 훌쩍 컸다는 게 느껴져 뿌듯하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에 입학해 1학년 때 처음으로 각시탈을 쓰고 꼭두각시 공연을 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친구들은 예쁜 탈을 썼는데 제 탈만 밉다고 엉엉 울고, 집에 있는 한복은 입지 않겠다며 엄마에게 새 의상을 사달라고 떼를 써 결국 새 의상을 사 입고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학예발표회에 반에서 몇몇 아이들만 참가했기에 어린 마음에도 "친구들은 못하는데 나는 한다"는 자신감내지 우월감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 2학년 때는 저학년이라서 그런지 반 아이들 전체가 공연에 참가하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세상이 달라져서 전체 아이들이 다 발표회에 참가하는구나!' 혼자 생각했습니다. 발표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요.

▲ 아이가 속한 학년의 아이들은 소고춤과 영어노래 합창을 했답니다.
ⓒ 박미경
그런데 발표회가 열리기 이틀 전, 아이가 느닷없이 "엄마, 나는 발표 안하는데 그래도 학교 가야 돼?"하고 말하는 겁니다.

"왜?"라고 묻는 말에 아이는 "응, 선생님이 나는 사물놀이 한다고 아무것도 안 시켜줬는데 사물놀이 선생님이 언니들만 발표한다고 해서 나는 아무것도 못해"라고 대답했습니다.

"어, 그랬구나. 어쩔 수 없지 뭐. 내년에 다른 거 하면 되지. 너무 실망하지 말고, 내년에 더 잘 하면 돼. 괜찮지?"하며 달랬지만 아이의 말에 마음이 그다지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발표회 날 학교에 가서 아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니 말은 그렇게 해도 우리 아이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겠구나 싶어 복잡한 생각이 들면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아들 한 명을 보내고 있는 다른 학부모는 "아이가 발표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아이에게 물었더니 아이의 반에서만 1/4 정도 되는 아이들이 발표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며 "한 반에 고작 30여 명 되는 학급에서 다른 아이들이 연습한답시고 들떠 있을 때 풀이 죽어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서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일부러 학교에 왔다"고 말합니다.

풀이 죽어 있는 아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라나요. 겸사겸사 선생님 얼굴도 뵐 겸 해서요.

학예발표회를 지켜보다가 아이의 교실을 찾았습니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니 "아이가 사물놀이 발표에 참가하는 줄 알고 아무것도 안 시켰는데 공연하는 아이들 이름에 아이가 들어 있지 않아 깜짝 놀랐다"며 오히려 미안해 하십니다. 반에서 아무것도 안하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냐고 물으니 예닐곱 명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 아이랑 그 예닐곱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발표할 동안 '나도 하고 싶은데…'라고 생각하며 서운해 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아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아무것도 안하는 아이들이라며 가르치는 몇몇 아이들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습니다.

다행히 교장선생님께서 "올해는 무대도 좁고 오전 중에 발표회를 마쳐야 하는 시간관계상 전체 학생들이 다 참가시키지 못했다"며 "내년도에는 올해 무대에 오르지 못한 아이들을 중심으로 작품발표가 이뤄지도록 하는 등 모든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고쳐나가겠다"고 말씀하셔서 위로가 됐습니다.

▲ '우리들의 파란세상'이라는 주제로 1학년 친구들이 펼친 무용입니다. 내년에는 모든 아이들이 발표회에 참여해서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박미경
하지만 친구들이 작품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라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여하지 못한 아이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요? 학예발표회는 끝났지만 발표회에서 소외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느낀 소외감 등은 한동안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출산 등으로 자녀를 적게 낳으면서 부모들은 예전보다 자녀들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마음까지도 골고루 챙기는 학교측의 배려가 아쉬웠습니다.

올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선 1300여 명의 학생 중 300여명이 발표회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이웃 초등학교에선 같은 날 같은 시간 동안 전교생 1400여명 전원을 참가시켜 학예발표회를 했기에 더 아쉬움이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내 아이가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부모들의 발걸음을 학교로 향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단순히 기우이길 바라면서 내년에는 모든 아이들이 부모들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재롱을 부리길 기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의 소식을 알리는 디지탈 화순뉴스(http://www.hwasunnews.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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