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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왜 절에 가면 바나나 나무가 있죠?"
"저게 바나나 나무가? 파초 아이가?"
"파초였어요?"

▲ 파초를 바나나 나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 전향화
아휴 창피해. 가끔씩 절에 가면 보는 파초를 바나나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몇 해 전 여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김천 직지사를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김천 토박이가 직지사를 안내해줬었는데 단풍나무가 유난히 많아 가을에 꼭 오리라 다짐했었습니다.

그리고 3년만에 다시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도 김천 지킴이에게 안내를 받았는데, 창피를 당한 것이죠. 파초를 바나나로 알고 산 세월이 창피했습니다. 하마터면 아이에게 자랑스럽게 바나나 나무라고, 우리가 먹는 바나나가 달린다고 가르쳐 줄 뻔 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상식 중에 이렇게 엉뚱한 것이 얼마나 더 있을지.

▲ 가을속의 그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얼마나 행복한 때인지 알고 계신가?
ⓒ 전향화
청단풍은 아이 손바닥 같기도 하고 하늘의 별 같기도 해서 제가 매우 좋아하는 것입니다. 올 가을에도 노랑, 주황, 빨강으로 이어지는 온갖 화려한 색을 내며 가을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단풍나무를 볼 때마다 정원이 큰 집을 마련해서 단풍나무를 실컷 심고 즐기고 싶지만, 아마도 정원이 100평은 돼야 이렇게 산책할 수 있는 단풍나무 길을 만들 수 있겠지요? 그 이야기를 했더니 정원 100평 관리하려면 보통 일이 아닐 거라고 주변 사람들이 말립니다.

소유를 해야 꼭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욕심을 날려 버립니다. 우리 조상들의 정원 개념은 '내 울타리 안에 가꾼 화단'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내 시야가 닿은 곳이 다 내 정원이었습니다. 꼭 소유하지 않아도 경치가 좋은 정자에 올라 내 시야가 닿는 땅끝부터 하늘 끝까지, 그리고 바람까지 다 자신의 정원이었습니다. 얼마나 넉넉하고 여유있던 사람들이었습니까? 권위와 부를 자랑하는 서양의 정원과는 차원이 다르죠. 단풍나무가 욕심이 나면 직지사를 가끔씩 들러야겠습니다.

▲ 어쩜! 물에 떨어져도 예술이네...
ⓒ 전향화
▲ 누가 서 있어도 한폭의 그림이 되는 곳입니다.
ⓒ 전향화
▲ 나무를 베지 않기 위해 돌려친 담장입니다. 이렇게 배려받은 나무는 참 행복할 것입니다.
ⓒ 전향화
▲ 담을 치기위해 흙을 돋우면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건천입니다.
ⓒ 전향화
직지사를 오르는 길에 이런 담을 발견했습니다. 나무를 베지 않기 위해 담을 돌려서 친 모양입니다. 공사비가 더 많이 나왔을텐데 나무를 아끼는 배려에 제가 다 감사해집니다. 그 옆에는 건천이라는 것이 보였습니다. 담을 치면서 흙을 돋우게 되어 나무를 위해 마른 우물을 만든 것입니다. 나무가 흙으로 너무 많이 덮이면 숨 쉬기가 어려워 질까봐 이렇게 해 준다고 합니다. 제가 출근하는 길 상가 앞 가로수에는 대못이 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대걸레가 걸려있습니다. 나무도 이렇게 다른 대우를 받고 사나 봅니다.

▲ 잎을 하나도 달고 있지 않아도 화려한 수피로 한몫하는 배롱나무
ⓒ 전향화
곳곳이 아름답게 치장한 나무들 사이에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목백일홍입니다. 워낙 수피가 맨질맨질해서 화려한 나무들 사이에서도 빠지질 않습니다. 피부가 너무 좋아 화장을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느낌입니다.

▲ 해마다 똑같은 가을을 보지만, 가을은 봄보다 더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 전향화
나무의 봄은 유년 시절일 것이고, 여름은 청년시절, 가을은 중년, 겨울은 노년일 것입니다. 저도 중년에 이런 나무들처럼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여졌으면 좋겠습니다. 중년이 되면 세상을 조금 더 많이 알아서 더 많이 배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직지사내에 있는 박물관 앞에 전시된 시루
ⓒ 전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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