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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균씨의 호밀밭. 호밀은 흙의 힘을 살려준다.
ⓒ 오도엽
11월 11일은 무슨 날일까? 열이면 아홉은 '빼빼로 데이'라고 말을 할 거다. '농업인의 날'로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산업화에 천대받아야 했던 농민은 이제 구멍가게 과자에게마저 밀려난 거다.

'농업인의 날'을 맞아 '오대산 친환경 무농약 채소 작목반'(대표 최영만)을 찾았다. 매달 첫째 주 월요일이 작목반 정기모임이다. 지난 7일 오전 10시, 작목반 김종균씨 집에 모였다. 김씨의 집들이도 겸한 날이다. 땅심을 살리기 위해 뿌려 둔 호밀이 파랗게 싹이 돋은 밭 위에 새로 지은 김종균씨의 집에 둘러앉은 회원들은 할 말이 많다.

▲ 작목반 회의 모습.
ⓒ 오도엽
이제 농업이 작물을 길러 파는데 머물지 않고, 밥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만들어진 '오대산 친환경 무농약 채소 작목반(이하 작목반)'의 1년. 어려움은 제초제를 치지 않아 하루 종일 뙤약볕에 앉아 풀을 매는 일도, 산벼랑을 기어 다니며, 부엽토나 낙엽을 모아 자연퇴비를 만드는 일도 아니다. 이런 고통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작목반의 고민은 저온창고에 쌓여 있는 양파며, 밭에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감자다. 무농약 농사의 어려움은 시장에 나가면, 크기와 모양, 가격의 경쟁에 부딪히고 만다. 농약을 쓰는 대신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노력은 온데간데 없고, 가격의 비교만이 있다.

▲ 박만철씨 하우스에 쌓인 감자들
ⓒ 오도엽
"우리는 친환경한다고 비싸게 받을 생각을 없어요. 어떻게 좋은 먹을거리를 소비자에게 값싸게 만나게 할 건가 고민해요. 이제 (친환경 농업) 시작이라 부족한 게 많지요. 그런데 이렇게 팔리지 않으니 참 답답하네요. 지금 제 감자가 20kg에 1만 5000원이에요. 택배비 제하고, 박스 값 제하면 1kg에 500원 꼴이에요."

첫 해 무농약으로 2400평 감자농사를 지은 박만철씨는 아직도 쌓여 있는 12톤의 감자만 보면 가슴이 콱 막힌다고 한다.

▲ 회원들 창고마다 무농약 감자와 양파가 가득하다
ⓒ 오도엽
"김치 파동도 있고 하잖아요. 좋은 농산물 생산하려고 애쓰는 농민도 있다는 것 알아줘야죠. 소비자가 좋은 농산물을 찾아야 더욱 힘이 나 친환경 농사를 짓지 않겠어요. 농민만이 아니라 소비자도 함께 노력해야 건강한 밥상을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이날 모인 열네 명의 작목반은 입을 모아, "농민이 앞장서서 안전한 농산물을 만드는데 앞장 설 테니, 소비자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많이 사랑해 달라"고 부탁한다. 농약이 기준치를 넘었다고 신문에서 떠들면, 우리 농산물을 믿지 못하겠다고 호들갑을 떨게 아니라, 힘든 친환경 농업을 위해 묵묵히 발걸음을 내딛는 농민에게 힘을 보태는 게 우리 농산물을 살리는 길이다.

"소비자가 안전한 먹을거리만 찾으면 농민들 제 몸 죽이며 농약 안 쳐요. 너도나도 친환경 할 거예요. 당근 값이 좀 올랐다 하면 수입해 가격 떨구고, 양파 값이 좋다 싶으면 또 수입해 가격 떨구고. 무슨 농사를 지어야 할지 답답합니다."

박만철씨의 한숨은 늘 산업화에 밀렸던 농촌, 이젠 세계화에 마지막 숨통마저 조여지는 오늘의 농촌이 깃들어 있다. 다음은 자신의 농사보다 작목반원들의 농사를 먼저 챙기고 판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 최영만 대표와의 인터뷰다.

▲ 오대산 월정사 석탑 위로 뜬 달, 보름달이 뜰 무렵에는 감자가 다 소비자에게 갔으면.
ⓒ 오도엽
- 작목반이 언제 만들어졌나요?
"작년 11월 29일에 열네 명이 모여 만들어요. 무농약 인증 받은 밭이 7만평 정도 되지요."

- 친환경 작목반을 만드신 이유가 있습니까?
"농사는 사람이 먹는 거를 만드는 일이잖아요. 제가 농사를 지으며 농약을 치면 부작용을 많이 타요. 그런데 내가 먹고 살자고 약을 쳐서 농사를 짓는 게 죄처럼 여겨졌어요. 혼자 하기엔 힘이 들어요. 작물에 병이 오면 약을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어요. 함께 하면 서로 방법도 연구하고, 격려할 수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 농사를 짓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팔아야 하잖아요. 친환경 유통의 문이 넓지 않아요. 그래서 함께 힘을 모아 판로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지요. 작목반의 힘으로 경쟁력을 갖출 겁니다."

▲ 작목반 최영만 대표
ⓒ 오도엽
- 평창군에서 지원은 어떻습니까?
"다른 곳에 비해 많은 관심을 가져줍니다. 기술 교육비는 전액 지원해 주고요. 평창이 맑고 깨끗한 고장이 아닙니까. 평창의 이미지와 친환경 농업이 딱 맞아 떨어지지요. 저희 작목반이 앞장서서 평창군 농업을 친환경 농업, 생명 농업의 디딤돌로 삼게 할 겁니다."

- 작목반 안에서 친환경 농업 교육은 어떻게 진행합니까?
"우리 규약에 아예 못을 박아놨어요. 회원들은 의무적으로 일 년에 한 번 이상 친환경 농업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첫해라 아직 시작은 못했는데, 앞으론 '사랑방 좌담'을 열 겁니다. 친환경 기술을 혼자만 간직할 게 아니라 서로 경험에 바탕한 기술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토론을 할 거예요."

- 첫 해 가장 큰 애로점은 무엇입니까?
"계획적으로 작물을 심지 못해 출하에 어려움을 받은 거지요. 지금 감자, 당근, 양파 재고량이 많아요. 인터넷, 체험 농장, 도농교류와 같은 판로의 다양화도 시도해야지요. 내년은 시장 조사를 통해 작물을 심어 올해의 난관을 극복해야지요. 그런데 아직 팔리지 않은 감자가 너무 많아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 작목반의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친환경 농업 몇 년차다,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더 좋은 기술을 연구하는데 작목반이 노력해 생산비용을 낮춰 더욱 싼 가격의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여 경쟁력을 높이고, 더욱 안전하고 좋은 농산물을 가지고 더 많은 소비자가 쉽게 (친환경 농산물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이게 농촌을 살리고, 우리 국민을 건강하게 하는 길이니까요."

정녕 이 감자를 버리게 놔둘 것인가? 이제 소비자의 몫이다. 소비자가 찾고 아껴줄 때, 자연히 농민들은 안전한 농산물을 재배하는데 앞장 설 것이다. 날마다 창고와 밭에 쌓인 감자를 바라보는 '오대산 친환경 무농약 채소작목반'의 타는 가슴과 눈물 고인 눈을 농업인의 날을 맞이하여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작목반에 격려의 말씀을 전합시다. 작목반 대표 최영만, 011-367-6629.
이 기사는 자연뉴스(www.naturei.net)와, 참말로(www.chamalo.net)에 함께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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