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리점에 쌓여있는 발효유 제품 박스. 대리점들은 본사 지점에서 제품을 주문량 이상으로 가져올 경우 냉장보관소에 자리가 없어 이렇게 상온에 보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리점에 쌓여있는 발효유 제품 박스. 대리점들은 본사 지점에서 제품을 주문량 이상으로 가져올 경우 냉장보관소에 자리가 없어 이렇게 상온에 보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훈
11월 초였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접수된 여러 제보들 가운데 남양유업과 관련된 것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남양유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것이었는데 요지는 '살인적인 제품 떠넘기기 때문에 대리점 못해먹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제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여름에도 이번 제보자와 지역은 다르지만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분이 하소연을 해왔습니다. 본사 지점에서 유제품을 너무 많이 떠넘기고 가는 바람에 이것들을 냉장보관소에 다 넣지 못하고 썩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품을 팔지 못하고 상하게 되면 그 손실을 고스란히 대리점이 떠안게 된다며 울상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오마이뉴스>는 취재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 땐 끝내 기사화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는 제보자가 아무래도 기사가 나가게 되면 본사의 압력으로 대리점을 그만두게 될 것 같다며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해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불공정 거래 관행으로 대리점 운영이, 노동한 만큼의 정당한 보수가 돌아오지 않는 생계 수단이 돼 버렸지만 한 가정의 밥줄을 끊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는 분들로부터 같은 내용의 제보가 들어온 것입니다. 취재에 나서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강자와 약자사이의 불공정 거래 관행은 해묵은 문제이고 다른 유업계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이런 관행들이 있을텐데 왜 유독 제보의 대상은 남양유업만일까.

왜 제보 대상이 남양유업만일까

제보자의 대리점을 찾았습니다. 7평 남짓한 그 곳에서는 내일 거래처에 공급할 제품들을 포장하는 손길이 분주했습니다. 본사에서 떠넘긴 제품들을 처분하기 위해 '2개 사면 1개 공짜로 주는' 식의 행사용 상품을 만들기 위해 각 제품들을 테이프로 묶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날도 역시 사무실 한켠에는 강제로 떠맡긴 제품 박스가 쌓여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대리점을 운영하다 제품 떠넘기기를 견디지 못하고 대리점을 그만두신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들 한 목소리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남양유업 정말 해도 너무한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텨왔는데 더는 못하겠더라. 주위에 유제품 대리점 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말릴 거다."

'왜 남양유업만일까'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제품 떠넘기기는 유업계 관행 중 하나인데 평소 알고 지내는 경쟁사 대리점 사장들과 이야기 해보면 남양유업이 가장 심하다"며 "심지어 신제품이 나올 경우 제품 홍보를 위해 '무료' 시음용으로 쓸 것마저 대리점에 '유료'로 공급할 정도"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남양유업 측은 자사 대리점이 경쟁사 대리점보다 형편이 나은 편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대리점을 운영하는 분들을 만나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됐습니다. 게다가 지난 번 기사에는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떡값'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강제로 떠미는 양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본사 지점 직원들에게 명절 때 등 주기적으로 떡값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괜히 떡값 10만~20만원 아끼려다 그보다 더 많은 물량을 강제로 떠넘기면 낭패를 보는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취재를 마치면서 현재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에게 마음 속에 있던 걱정 한가지를 꺼내놓았습니다. 이 건이 보도가 됐을 때 본사로부터 불이익이 가해질 수도 있는데 괜찮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분들은 철저하게 익명으로 해달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해도 본사에서는 아마 어떻게든 제보자를 밝혀내 대리점 계약을 해지하려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대리점 차원의 대책을 고민해보겠다며 꼭 기사화 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일부 대리점 소장들이 다음날 본사로부터 대리점을 그만두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사를 쓰면서 제보자들의 신분을 철저히 가린다고는 했지만 한계가 있었나 봅니다. 제품 밀어내기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구체적인 거래 내역을 사진으로 싣고 글로도 인용을 했는데 이게 빌미가 된 것이었습니다. 주문서 날짜와 이름 등을 철저히 가렸고 거래내역 사진도 A4 한 장 분량 중 극히 일부만 찍은 것인데도 이 주문서의 주인이 제보자로 낙인찍힌 것이었습니다.(실은 이분이 제보자는 아닙니다)

취재를 마치면서 가졌던 우려가 현실로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의 10월28일자 거래장부. 각 제품들 25박스를 주문했지만 211박스가 지점으로부터 내려왔다.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의 10월28일자 거래장부. 각 제품들 25박스를 주문했지만 211박스가 지점으로부터 내려왔다. ⓒ 오마이뉴스 이승훈
아마 본사 지점 직원들은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해 대리점과의 거래 장부를 이잡듯 뒤진 모양입니다. 이러한 노력 반만이라도 대리점과의 상생의 길을 고민하는 데 들였으면 기사를 쓴 저도 조금이나마 보람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에 씁쓸해 지더군요.

남양유업 내부 직원의 증언에 의하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회사의 기본 원칙은 계약을 해지하고 내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본사의 영업방침에 따르지 않겠다면 굳이 대리점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사는 대리점을 맡을 다른 사람을 구해 같은 방식으로 영업을 하면 되니까 전혀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 편리한 발상입니다.

이번 건도 이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그런데 변수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보도를 접한 전국의 대리점 사장들이 같은 처지를 호소하며 기사 댓글을 통해 불공정 거래 관행을 깨기 위해 힘을 모으자며 의기투합에 나선 것입니다.

아직 활동이 활발하진 않지만 '안티남양'이라는 온라인카페(cafe.daum.net/antinam
yang)도 생겨났습니다. 특히 남양유업에 국한되지 않고 유업계의 이러한 관행을 깨기위해 전체 대리점이 대책 마련에 나서야한다는 논의도 시작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참여정부는 양극화 해결에 힘을 쏟겠다고 했습니다. 본사는 대리점들을 쥐어짜 매출 신장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거두는 반면 영세한 대리점들은 자기 돈 들여서 본사에서 강매한 제품들을 처분하느라 허리가 휘고 있습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양극화의 모습 아닌가요.

우리 사회의 불공정 거래를 근절할 책임이 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을 거라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