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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으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이 되었건만 그는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전히 가슴이 따뜻한 의사로, 의사보다 환자의 입장이 되어주는 참의사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는 더욱 반갑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새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 속에 빠져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난다고 했던가? 그가 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겪는,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운명을 기다려야하는 사람들의 웃고 우는 모습은 마냥 아름답게 볼 수만은 없다. 더욱이 때로는 자신을 자책하는 박경철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는 살아간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을 진지하면서도 애달프게 성찰하게끔 만든다.

인턴 시절, 그에게 생명의 불꽃이 다한 할머니가 응급실로 실려 온다. 뇌졸중이었다. 그렇기에 병원에서는 할머니가 집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처치하는데 그때 박경철이 그 자리에 동행하게 된다. 할머니의 집에서 인공호흡기를 떼려는데 주변 사람들이 한사코 그를 말린다.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고된 인턴생활에 가뜩이나 지친 그로서는 언제 올지 모르는 아들을 기다리는 게 반가운 일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사연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그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불운하게 인민군의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아이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다. 어머니조차 그랬다. 그래서 방치하다시피 하며 키웠다. 그런 아들이 어느 날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들은 며칠이나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다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병원에 가게 됐는데 사인이 급성 녹내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들은 시력을 잃게 된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서럽고 억울했시마 밤이면 밤마다 석 달 열흘을 안 우나. 한번은 밤에 마실을 나가는데 그 어린것이 지네집 담벼락에 기대가 하늘을 쳐다보고 눈물을 철철 흘리는 기라. 나는 봉사는 눈물도 안 흘리는 줄 알았데이. 그런데 보통사람들보다 더 흘리대. 밖의 보름달은 훤한데 담벼락에 기대앉아가 컥컥 소리를 내며 우는데, 아이고, 세상에 진짜 두 번 볼 일 아이데이. 얼마나 억울했을꼬. 아직도 그거 생각하마 맴이 아파." - 본문중에서/FONT>

아들을 기다리는 박경철은 이미 의사라는 것을 잃는다. 피곤한 것도 고된 것을 잃고 맹인 안마사가 됐다던 슬픈 사연을 지닌 아들만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보게 됐을 때, 타인이기에 외면했던 장애인들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고백은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대화를 건넨다. 사람들 또한 그런 것이 아니었느냐고.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를 가득 메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생면부지의 타인들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박경철의 친구들 이야기 또한 있다. 그렇기에 쉽게 고백할 수 없는 것들일 테다. 허나 그는 위로하는 심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우 선생의 이야기가 특히 그런 경우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아들을 공부시켜 집안의 모든 것을 만회해보려는 가정이 많았다. 우 선생도 그런 경우였는데 우 선생 공부를 위해 어머니는 헌신하듯이 일을 했고 그것으로 부족해 빚까지 얻어야만 했다.

그러나 우 선생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또한 그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의사 중에서 가장 배고프다던 외과였다. 우 선생의 것들은 주변의 것들과 달랐다. 그렇기에 당연히도 우 선생은 갈등하게 되고 결국 우 선생은 집안의 뜻대로 살아가기로 한다.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고 집안의 빚을 갚아줄 수 있는 아가씨와 결혼한 것이다. 아버지에게 매 맞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를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한 인간이 스스로 생명을 앗아가게 만들게 된다.

"그는 울부짖으며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칼을 빼앗고 있는 힘을 다해 아버지를 밀어냈다. 아버지가 뒤로 넘어지면서 남아 있던 한쪽 유리문과 함께 뒤엉켜 마당으로 쓰러졌다.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아버지를 덮쳤다. 깨어진 유리파편이 아버지의 머리와 얼굴, 어깨와 등을 향해 쏟아졌고, (...)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일하게 허락된 공간인 자기 방으로 갔다. 그곳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했다. 그 방에서는 아버지의 위압적인 모습으로부터도 어머니의 불쌍한 얼굴로부터도 도망칠 수 있었다. 그는 천장의 들보에 끈을 매고 의자에 올라서서 스스로 만든 올가미에 자신의 목을 걸었다. 삶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만든 올가미에 목을 걸었던 것이다." - 본문중에서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는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개인적인 감정이 진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렇기에 전편보다 더욱 감정을 격하게 토해내는 장면들이 많고, 홀로의 이야기에 갇혀버리는 경우도 많다. 박경철도 그것을 알기에 그것을 걱정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괜한 걱정이다. 직업적인 이야기나 그것에서 겪었던 개인적인 일들이면 모를까. 박경철이 말하려던 것들은 모두의 삶과 생명, 그리고 사랑과 이별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 훈훈하고도 따스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다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는 격정적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따뜻하기보다는 뜨겁고, 애달프기보다는 심장의 한쪽을 떼어낸 듯 고통스럽다. 전작을 미소 지으며 때로는 살짝 눈물을 닦으며 볼 수 있었다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는 그럴 수가 없다. 더 크게 웃거나, 더 크게 울게 만드니 그러하다.

사람들은 빈곤하며 더 진하고 깊이 있는 것들을 원한다. 멋진 로맨스와 잊혀 지지 않을 극적인 감동들을 찾아 세상을 배회한다. 하지만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를 보면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게 된다. 언제나 옆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 무한정 사랑해줄 것만 같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 같이 웃고 우는 것이 어떤 수식어로도 말할 수 없는 격정적인 것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의사의 이야기보다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는 '소중한 것'들을 알려준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말이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는 고맙게도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은 없다 할지라도 책장 하나하나에 이름이 실린 사람들 모두 옳게 살아가는 걸 알려주니 말이다. 그래서 이 동행은 반갑다. 언젠까지나 함께하고픈 동행이라는 말이 괜한 과장은 아닐 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세트 - 전2권 - 개정판

박경철 지음, 리더스북(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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