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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구로가 장판수에게 감흥을 받은 것과는 달리 장판수는 그가 자신을 호위하든 뭘 하든 아무런 관여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장판수는 오히려 그 저의가 의심되었고 적절한 기회를 보아 그를 떼어놓을 생각도 하고 있었다. 평구로를 믿을 수 없어 장판수는 날이 새기를 뜬눈으로 기다렸다가 움직였다. 그런 장판수를 평구로는 천천히 뒤따랐다.

“그 길은 아니 된다. 이미 사람을 보내어 막아서고 있을 것이다.”

양 갈래로 나뉜 곳에서 장판수가 오른쪽 길을 택하자 평구로는 왼쪽 길을 권하였다. 장판수는 평구로가 너무나 속이 빤히 보이는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여겨 버럭 화를 내었다.

“얄팍한 신세타령 들려주고 날 어찌 해보겠다는 것인데 어림없습네다. 내키지 않으면 차라리 뒤에서 날 찌르든지 할 것이지 그런 수작 부리지 마시라우요.”

장판수는 당당히 오른쪽 길로 들어섰고 평구로는 잔잔히 웃으며 장판수와 약간 떨어져 그의 뒤를 따랐다. 장판수는 평구로가 부담스러웠지만 더 이상은 모진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 그를 멀리 떨어트린 채 갈 길을 재촉하기만 했다. 한참을 가던 장판수는 나무사이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듣고 몸을 낮추어 접근했다.

“아따 이 친구 또 먹네! 속임수 쓰는 거 아니야? 뭔가 이상하구먼!”

“에이 여보슈! 뻔한 윷놀이에 무슨 속임수가 있수? 윷도 제대로 던지지 않소이까?”

“거 이상하네...... 다시 해봅시다!”

장판수가 숨어서 보니 4명의 사내가 윷을 놀고 있는데 두 명의 낯이 상당히 익어 있었다. 한 명은 풍산에서 마주쳐 싸웠던 창잡이 사냥꾼들 중 하나였고, 한명은 다름 아닌 짱대였다.

‘저 놈이 저기서 뭘 하는 기야?’

장판수는 그들의 노는 꼴을 보며 틈을 보아 몰래 빠져나가려 했다. 그 때 뒤쳐져 있던 평구로가 당당히 걸어와 장판수를 바라보며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해보이고서는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서 뭣들 하는 겐가?”

깜짝 놀란 사내들은 서둘러 윷판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잡이가 앞으로 나서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르신, 간밤에는 어디로 가셨던 겁니까? 무슨 변고라도 당한 줄 알았습니다.”
“장판수라는 자를 쫓아 다녔다. 자네들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나?”
“새벽부터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늦었다. 그 자는 밤에 이 길로 나갔다.”

창잡이는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이곳 지리에 익숙한 자도 밤에는 길을 찾기 어렵소이다.”
“혹시 서쪽 길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다른 이의 말에 창잡이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서쪽 길로 돌아간다면 당장은 지키는 이를 만나지 않겠지. 허나 이 길을 놓아두고 초행자가 그 길 같지 않은 길로 가다가는 산속에서 오도가도 못 하게 될 터네.”
“어찌되었건 자네들은 이 길로 내려가라. 난 이 길로 쫓아가 보겠다.”

창잡이는 고개를 숙이며 순순히 평구로의 말을 따랐다.

“어이! 자네도 그만 나오게!”

숲 속에서 활을 쥔 자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장판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윷놀이를 하며 노닥거리는 자들만 있는 줄 알고 슬쩍 비켜 가려 했다가는 꼼짝없이 들켜 화살을 맞았을 터였다.

“그럼 수고 하시오. 어르신.”

창잡이는 사람들을 이끌고 내려갈 준비를 했고 장판수는 행여 콧바람에 풀잎이라도 흔들릴세라 숨을 죽였다.

“참, 요기나 하려고 먹을 것을 싸 짊어지고 왔는데 좀 드릴깝슈?”

짱대가 인심 좋은 양 중얼거렸고 평구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창잡이의 눈매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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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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