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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국악정에서 가진 경로위안공연 때 배호 노래를 모창하는 배오씨
ⓒ 배기모
배호 노래를 모창하는 가수 중에 배오(50)씨가 있다. 매월 30일 배호 모창 대회를 하는 5호선 전철 거여역 앞 배호 라이브 카페에서 사회를 보던 게 엊그제인데 10월 말로 접어드는 무렵에 그에게서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배호 라이브 카페 사회자 일을 그만두었고,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검사 중인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KBS 2TV '쇼 파워 비디오'에서 배호 노래 모창을 하는 장면이 나올 거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 '배호 라이브 카페'에서 사회를 보는 배오씨
ⓒ 김선영
며칠 뒤에 또다시 배오씨 전화를 받았다. 암에 된통 걸렸다는 것이다. 췌장암, 담낭암이 번져서 위와 간에까지 침식하였기 때문에 손을 쓰기가 너무 늦은 모양이었다. 말기 암에 걸린 사람이 그동안 배호부활운동과 어려운 이웃돕기 위문공연에 그토록 열심이었던 것을 생각하니 하늘도 무심하지 싶었다.

서울 종묘공원에서 위문공연을 할 때도 음악장비를 차에 싣고 와 노래는 물론 연주까지 해주었고, 주문진 위문공연 때는 다른 모창가수들을 태우고 손수운전을 하며 새벽에 돌아왔다. 그동안 암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돈벌이와는 상관없이 열심히 배호 노래를 부르고 반주를 했던 것이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그에게 말기암 선고가 떨어지다니…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고 가혹하지 싶었다.

어떤 가수는 가수 앞에 '모창'이 붙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하지만 배오씨는 다르다. 아예 중절모에 검은테 안경을 쓴 자신의 사진이 들어가 있는 명함에 '배호 모창가수 배오'라고 인쇄를 해놓았을 정도다.

"배호 모창가수라는 것을 저는 떳떳이 얘기합니다. 그만큼 배호 선생님이 크다는 얘기 아닙니까. 배호 선생님의 노래를 제대로 부르기 위해 연구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밤무대에서 배호 노래 모창을 하는 사람은 나훈아, 남진, 조용필 노래 모창을 하는 사람보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배호가 살아 돌아와 직접 부르면 상황이 다를 테지만, 모창의 경우에는 배호가 너무도 한 맺힌 노래만 남겨 놓았으므로 그 한 맺힌 노래를 흉내내는 것이 배호의 능력에 못 미치기 때문일까. 그래도 배오씨는 "비음(鼻音), 두음(頭音)"이라는 기법까지 연구해 가며 배호의 노래를 제대로 부르려고 애를 쓴다.

▲ 권란 배기모 회원에게서 책을 선물받는 배오씨
ⓒ 김선영
배오씨는 신상옥 이사장-최은희 교장 시절에 안양예고에서 연기를 배웠다. 음악도 그곳에서 배웠다. 그러나 교회를 운영하는 부친의 반대 때문에 유행가 쪽으로 진출할 수는 없었다.

내시경이 들어갔던 어깨의 실밥을 뽑고 퇴원하여 핀 네 개를 차례로 뽑아낼 날을 기다리며 하루 이틀 보내고 있을 즈음, 배기모(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에서 배오씨 위문을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은 마침 오전에 핀 하나를 뽑으러 가는 날이었다. 못처럼 생긴 핀을 하나 뽑고 나는 서울로 향했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왔느냐?"고 걱정들 하지만, 나는 "바람 좀 쐬러 야외로 가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 책을 선물받은 답례로 이탈리아 가곡을 열창하는 배오씨
ⓒ 김선영
11월 2일, 자동차 두 대에 나눠 타고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 있는 에덴 요양병원을 향했다. 단풍이 수북이 들어 있는 굽이굽이 고갯길을 지나 에덴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삼림 무성한 산 속에 차분히 가라앉아 있어 요양하기에 아주 어울리는 병원이었다.

▲ 피리로 배호 노래를 반주하는 배오씨
ⓒ 김선영
병실에 들어가니, 살이 좀 빠져 있어 그렇지 배오씨의 표정은 아주 명랑해 보였다. '배기모' 여성회원 권란씨가 책 선물을 하자 "두고 보세요. 저는 죽지 않습니다" 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이탈리아 가곡을 병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부르는 것이었다. '배호부활운동의 감초 배오씨, 3~6개월까지 시한부 사망 선고'-이것은 모두 거짓말이지 싶었다.

병원 집사 할머니의 말씀인즉,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뽀뽀뽀 친구들' 노래를 하는데 배오씨가 하도 잘해서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내 일자리 빼앗기겠다"며 흐뭇해했다고 한다. 마침 그 집사 할머니가 '배기모'에 위문공연을 요청하였고, '배기모' 운영진은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을 했다. 한 시간 동안 에덴 요양병원 대강당에서 벌어질 '말기암 환우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위문공연', 그 일시는 11월 30일(수) 저녁 7~8시까지다.

▲ 배오씨 "말기암이라지만, 저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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