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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중에 큰 기운이 솟음을 역력히 느낄 수 있는 신비의 검룡소
고요한 중에 큰 기운이 솟음을 역력히 느낄 수 있는 신비의 검룡소 ⓒ 곽교신
조선의 큰 지리서마다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로 기록되었던 것이 검룡소로 바뀌게 된 것은 1918년이다. 그 해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실측한 결과를 근거로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라는 주장이 처음 제기된 이래, 1987년 국립지리원에서 정밀하게 재실측한 결과 한강의 발원지가 검룡소로 공식 인정되었다.

즉 오대산 우통수(于筒水) 발원의 물줄기와 검룡소 발원의 물줄기가 만나는 정선 아우라지 합수점에서부터 정밀히 실측해 보니, 검룡소까지의 물줄기가 우통수까지보다 32.5km가 더 긴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검룡소 물줄기가 본류가 되고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로 공식 인정되게 된 것이다.

분명 샘은 있으나 강의 발원지로 보기에는 여러가지 면에서 충족 요건이 미흡한 고목나무샘.
분명 샘은 있으나 강의 발원지로 보기에는 여러가지 면에서 충족 요건이 미흡한 고목나무샘. ⓒ 태백시
지금도 한강의 진정한 발원샘을 검룡소보다 해발고도가 400여m 더 높은 '고목나무샘'이나 '제당궁샘'으로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 샘물들의 흔적이 지하로 다시 스몄다가 검룡소에서 용출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연간 1회 이상 물이 흐른 흔적이 이어져야 강(하천)으로 치는 하천법 상의 규정이나 사회 통념상의 '물이 흐르는 계곡'이란 이름을 얻기 위한 최소 개념에도 흡족하진 못하는 것으로 볼 때, 검룡소를 한강의 발원샘으로 삼는 국립지리원의 결정은 타당해 보인다.

조선 시대 이래 오랫동안 우통수를 한강의 시원(始原)으로 삼았기에 지금도 강원도 평창군에서는 "한강의 발원지 우통수"라는 말을 군 공식 행사에서도 쓰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측량 결과에 따라 검룡소가 발원지로 판명이 났으니 평창군의 이런 주장은 타당성도 없고 자치단체 공식 행사의 용어로는 모양새도 좋지 않다.

다른 샘물과 비교가 안 되는 매우 탁월한 물로 기록된 우통수 샘물에 대한 고문헌상의 수많은 찬사만으로도 우통수에 대한 평창군의 자긍심은 족할 것으로 보이니 한강의 발원지를 우통수라 주장하는 미련은 거두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렇게 각 지자체에서 발원지를 자기 군에 두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할 정도로 강물 발원 샘물의 정신문화적 상징성은 크다. 대하 소설, 대하 드라마 등의 용어에서 보듯이 거대한 강물의 출발점이라는 그것만으로도 발원지 샘물의 신비감은 극에 달한다.

또 선입견이 있기도 하겠지만 일부러 애써 신비스럽게 보려 하지 않아도 각 강물의 발원샘을 찾아가 보면 분명히 생동하는 기운과 신비스러운 정기가 느껴지고 그에 따라 어떤 기운이 몸으로 들어옴을 부인하지 못한다.

특히 검룡소는 그 힘찬 물솟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지의 왕성한 생산력이 느껴지고 기가 느껴진다. 아무리 감각이 둔한 사람이라도 검룡소 못 주위에서는 어떤 기운을 느낄 것이다. 이 기운은 꼭 한강 물줄기만의 기가 아니라 이 땅 지맥을 따라 흐르는 땅 기운의 일부일 것이리라.

바람은 기를 흩어놓지만 물은 기를 모은다. 검룡소로부터 한강을 따라 흐르고 뻗는 이 기운은 곧 우리 민족의 기운이요 정신이다.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난 대한민국의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름은 꼭 한강만을 지칭함이 아니다. 한강으로 상징되는 한반도 전체에 넘치는 운기를 서양식으로 부른 것이다.

염려되는 검룡소의 오염

최근 검룡소 입구에 새로 조성된 주차장. 빈 주차장을 보면서도 차와 인파가 눈에 선하다.
최근 검룡소 입구에 새로 조성된 주차장. 빈 주차장을 보면서도 차와 인파가 눈에 선하다. ⓒ 곽교신
최근 35번 국도에서 검룡소까지의 6km 진입로 포장을 대대적으로 마쳐 검룡소로 접근하기가 한층 쉬워졌다. 설계 용량이 80대라고 하나 실 수용능력이 150대는 될 주차장도 마련되었는데, 이미 사철 관광지화 되어 요즈음에도 주당 1000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고 있는 판에 내년 여름 동해안과 태백을 거쳐가는 피서 인파에 짓눌릴 검룡소의 아픈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보인다.

태백시는 입구에서 자전거로만 진입하도록 할 일종의 통행제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지만 실현 가능성은 떨어져 보인다. 대형 주차장이 검룡소 입구에서 3km쯤 뒤로 물러나 거기서부터 자전거로 가라면 모르겠으나 모든 관광객에게 6km 완경사 오르막을 자전거로 주행하라는 것은 무리다. 또 이미 완공된 대형 주차장을 옮길 수도 없다.

자칫 검룡소가 인파 공해에 찌들어 한강이 시작점부터 오염되어 흐르는 일이 염려된다. 신도들과 함께 자주 온다는 대구 지산동 제일교회의 황용도 목사는 "길이 좋아져 편해졌다는 생각보다는 들이닥칠 인파 걱정이 먼저 되더라"며 역시 검룡소의 오염을 걱정했다. 인간 군락의 공룡같은 파괴력은 검룡소의 기운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태백시는 겨레의 강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를 관내에 가졌다는 영광과 함께 발원지의 상징적 처녀성을 본 모습대로 지켜야 할 의무도 함께 가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릇 강의 발원샘은 문명의 자궁이다.

두물머리의 장관

태백 발원의 남한강이 금강산 발원의 북한강과 합쳐지는 경기도 양수리(兩水里 두물머리)는 규모로나 수량으로나 풍광으로나 한강 합수점의 절정을 이룬다.

두물머리 근처가 고향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먼 훗날 향리 일대에 물이 들어차 호수가 될 것을 예견하는 말을 남겼다는데, 팔당댐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인공호수는 다산 선생의 향리를 섬처럼 보이게 만든다. 수량만으로도 장관을 이루는 두물머리는 금강과 태백의 정기가 모여 그야말로 겨레의 장강 한강으로서 위용을 더한다.

남양주군 양수리의 남 북한강 합수점. 갈색 단풍 위로 보이는 희미한 물줄기가 검룡소 발원의 남한강, 다리 아래 물이 금강산 발원의 북한강, 오른 쪽이 하류 팔당댐 방향. 이 두물머리의 정기는 위대한 실학자 정약용을 길러냈다.
남양주군 양수리의 남 북한강 합수점. 갈색 단풍 위로 보이는 희미한 물줄기가 검룡소 발원의 남한강, 다리 아래 물이 금강산 발원의 북한강, 오른 쪽이 하류 팔당댐 방향. 이 두물머리의 정기는 위대한 실학자 정약용을 길러냈다. ⓒ 곽교신
백제 이래 지정학적 요지였던 한강 하류라는 한반도의 중심에 태백과 금강에서 실어 온 정기를 아낌없이 쏟아 놓은 한강은, 인천광역시 김포군 월곶면 보구곶리에서 강으로서의 일생을 마치고 서해 바다로 잠긴다.

역대 정권마다 실현 가능성은 둘째치고 경인운하가 지속적으로 검토되었고, 하류 강 폭 한 가운데로 휴전선이 지나가는 인문지리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강의 하운(河運) 재개도 검토되었다. 이렇게 한강은 그저 강물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우리 역사 진행형의 일부다.

한강은 그 물 흐름의 줄기는 중부를 관통하되 온 겨레의 마음을 관통하는 겨레의 혈맥이다. 백제 이래 이 땅에 국가를 세웠던 권력이면 한 번씩은 품고 살았던 강이다. 지금 이 사회가 잠시 힘들다고 흐름이 곧 선대로부터의 유장한 역사였던 역사의 강 한강에 우리 대에 부끄러운 역사를 흘려서는 안 된다. 한강에서 받은 넘치는 운기만으로도 우리 민족은 한반도를 넘어 큰 시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야 한다. 눈에 보이는 지금만이 우리의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한반도의 복판에 씩씩하고 장대한 겨레의 강 한강이 흐른다. 그리고 우리의 장대한 오천년 역사도 유유히 흐른다.

덧붙이는 글 | 2차에 걸친 검룡소와 그 주변 취재에 적극 협조해 주신 태백시청 문화관광과 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낙동강으로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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