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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온한가> 책표지
<나는 왜 불온한가> 책표지 ⓒ 돌베개
'진보'라는 불편한 주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념 논쟁은 대중을 질리게 만드는 면이 없지 않다. 진보, 보수가 뭐냐.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정치권에서 펼쳐지는 이념논쟁은 진지하지 못할뿐더러 경박스럽기까지 하고, 지식인 사회에서 이념논쟁은 그들만의 '지적인' 언어로 소비되어 일반 대중은 '이념'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이념이 실제로 우리 삶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진보의 거처를 묻는다는 김규항의 책 <나는 왜 불온한가>는 진보의 거처를 우리 일상에서 발견한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남들에겐 그저 평범한 경험일 텐데 그는 그만의 섬세한 더듬이로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낸다. 그 의미는 물론 그가 '위협'하는 자본주의와 각종 권위의 기만적인 얼굴이다.

물론 그런 '의미'는 일찍이 다른 유수의 학자들이 제기해왔던 것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우리가 겪는 삶에서 무엇이 나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글은 많지 않다. 그는 에둘러 말하지도, 뜬구름 잡는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오늘 하루 무얼 했나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가 제기한 '진보'라는 물음에 고민할 수 있다.

글쟁이 김규항

나는 김규항이 조금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그의 표현대로 조금만 '유연해지면' 얼마든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글쓰기 스타일 때문이다. 필요한 말만 골라서 쉽게, 직설적으로 풀어놓는 그의 문체는 대중들이 편안하게 읽기에 충분하다.

다만 그의 글에 담긴 내용의 불편함 때문에, 제도권의 눈 밖에 날 만한 삐딱함 때문에 그는 오직 '마니아 시장'에서 많은 이들의 추종을 받는다. 그렇다고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못 돼서 아쉽다는 뜻은 아니다. 그만큼 그의 글솜씨가 뛰어나다는 뜻이다.

특히 짧은 문장에 의미를 압축해 전달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어려운 얘기, 불편한 얘기는 물론이고 일상 속의 작은 감동을 '오버'하지 않으면서 독자들에게 무거운 울림을 전해주는 데에는 정말 훌륭하다. 그럼 책 속에 나온 그의 짧은 표현을 잠시 음미해보자.

ⓒ 이경미

시사와 역사

역사에 밝고 시사에 어두운 사람은 허화하다.
시사에 밝고 역사에 어두운 사람은 경박하다.

ⓒ 이경미

어쩔 수 없잖아요 별

어쩔 수 없잖아요 별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는 별의 진짜 이름이다.

ⓒ 이경미

갑옷

한국인들이 입기만 하면 상스러워지는 세 가지 갑옷.
자동차, 예비군복, 인터넷


아버지 김규항

뭐니 뭐니 해도 지금껏 내가 발견한 김규항의 매력 중 압권은 '아버지'로서의 김규항이다. 그는 그의 전작 < B급 좌파>와 최근작 <나는 왜 불온한가>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적어놓았는데, 나는 정말이지 그 두 권의 책에서 아이들에 관한 부분만 따로 모아 '김규항의 육아일기'라도 따로 만들어 예비부모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정도로 그는 유난히 자식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고 또 훌륭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는 가장 권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로서 '권위' 대신 '존엄'을 얻는다. 그가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그의 두 아이들이 참 부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는 유난히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것 같다. 그가 생각하는 '딸'이란 어떤 존재인지 한 번 들어보자.

ⓒ 이경미

딸은 단지 딸아들 하는 자식 중의 하나가 아니다.
딸은 한 남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장
정교하게 알아낼 수 있는 '삶의 시험지'다.
한 남자가 '딸에게서 존경받는 인간'이 되려고
애쓴다면 그의 삶은 좀더 근사해질 것이다.


김규항과 예수

그는 요즘 '예수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제법 많은 부분을 예수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는데 그가 생각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물이 바로 예수라고 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지독히도 왜곡되어 있는 예수와 기독교의 이미지를 바로잡고 예수를 진짜 우리 삶으로 불러들이는 일에 도전한다. 나는 그라면 그런 작업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따뜻한 시선과 차가운 논리, 다정한 문체로 풀어내는 그의 '예수전'이 어떨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돌베개 펴냄/ 2005년 9월/ 1만2000원


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돌베개(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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