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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광주종합고용안정센터에서 '꿈과 미래 장애인 일터찾기' 일환으로 장애인 취업을 위한 구인구직자 만남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의 취업의지를 반영한 듯, 눈이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2시부터 시작되는 행사에 한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계신 분들도 보입니다. 미처 서류준비를 하지 못한 구직자들은 이력서 쓰기에 손놀림이 분주합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자꾸만 아픈 기억이 고개를 내밉니다.

▲ 면접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장애우들의 모습입니다.
ⓒ 이명숙
생과 사,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 기쁨과 고통, 장애와 비장애는 동전의 양면처럼 제 안에 있었습니다. 날숨과 들숨을 반복할 때마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그림자가 되어 동행을 했던 것이었는데, 너무 가까이 있어, 그걸 몰랐습니다. 살아갈수록 행복, 불행, 기쁨, 고통, 죽음을 더 많이 체험하게 된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던 육신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 다섯 개, 손, 발 중 일부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일은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도 제 가까이서 일어나리라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왼쪽 무릎이 온전하지 못한 장애 4급입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로 인해 여전히 힘들어도, 행여나 가족들이 아파할까봐 항상 웃는 얼굴인 그를 바라보는 제 마음에 때때로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가 원래 장애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초대할 생각이 없었던 사고는 어느 날 불쑥 남편과 제 삶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찬란한 봄 햇살이 마음을 간질이고, 몸을 노곤하게 하던 8년 전 4월 25일이었습니다.

▲ 사원 모집광고를 보고 있습니다.
ⓒ 이명숙
응급실침대시트를 움켜쥔 채, 하얗게 변해버린 남편을 보며 이것은 현실이 아니야. 연극일 뿐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어. 그럴 리 없어. 속으로 백 번을 더 부르짖었습니다. 몸속에 들어 있던 피가 한꺼번에 빠져버린 백지장 같은 육신을 바라보면서, 허망함이,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백 년, 천 년을 살 것처럼, 아등바등 거렸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생명이 위독하다는 말에 "나는 과부될 팔자가 아니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수술 들어가자"며 시작된 투병생활.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말에 "자를 때 자르더라도 살리는 데까지는 해야 되지 않겠냐"며 이를 악물고 버티던 수술만 해도 십 여 차례, 그렇게 일년 동안을 병원에서 살았지만 남편의 발가락 다섯 개는 끝내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36년 동안 한쪽 발을 지탱해왔던 발바닥과 발가락들이 남은 발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어준 채 먼저 떠난 것입니다.

▲ 이력서를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 이명숙
비장애인으로 태어나 장애인이 된 남편이 제일 먼저 맞닥뜨린 것은 세상의 편견이었습니다. 단지 불편할 뿐인데, 일마저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기회는 좀처럼 찾아와 주질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취업을 포기하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을 찾아오는 장애인들은 사업조차도 할 기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은 사람들인데, 왜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일을 못할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장애인 취업을 담당하는 분들의 한결같은 말들입니다. 장애를 가진 분들 중 일부가 사건을 일으켰다는 보도가 나면, '거봐라, 장애인들이 저러니 어떻게 채용을 할 수 있겠어'라며 모든 장애인들에게 확대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들 중 장애인에 의해 저지른 범죄하고 비장애인이 저지른 범죄비율이 어떻게 되나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라고 항변을 해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다수의 인사담당자들은 꿈쩍도 하질 않습니다.

“적어도 경험이 중요하니까 처음에는 미숙하고 힘들더라도 1년 정도는 일을 시켜보고 그 이후 결정을 하면 되지 않겠어요”라고 해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장애인들이 스스로 관두는 경우도 있고,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주 입장에서는 일이 손에 익을 때까지 기다리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을 고용해본 사업체들 중 일부에서는 비장애인보다 장애인들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취업이 된 사람 중에, 지원고용담당자도 포기한 정신지체 1급 장애인도 있습니다. 기숙사에서 혼자 생활을 하면서 양계장 관리를 하고 있는 그를 채용한 사업주는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일을 너무 잘해 지금은 놓치기 싫어한다고 합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 같이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장애인 의무 고용제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합니다.

그들을 위해 작은 만남의 장을 열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큰 행사가 아니라 작지만 실속 있게 실질적인 구인구직 연결이 되도록 광주종합고용안정센터, 근로복지공단 광주지역본부, 덕산장애인종합사회복지관이 공동으로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입니다. 구인업체에 면접을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뽑는다고만 하지 말고 진짜로 뽑았으면 좋겠어요.”
“일이 너무 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더디고 서툴러도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좋겠어요.”
“월급이 적어도 좋아요. 일하게만 해주세요.”
“장애만 보고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생각은 다 같거든요. 그런데요.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해요. 단지 들리지 않을 뿐인데, 일조차 할 수 없을 거라 여기는 게 속이 상해요.”

휠체어를 타고 온 장애인도, 청각장애인도, 정신지체 장애인도,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장애인도, 후천적인 사고로 장애를 입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 같이 일할 권리가 있는 이 땅의 구직자들입니다. 그들은 단지 불편할 뿐이지,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들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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