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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눈은 세상을 하얗게 덮는다. 숲의 나무도 모두 하얀 옷으로 차림새를 바꾼다.

ⓒ 김동원
나지막한 산 속으로 길의 윤곽 하나가 이어져 있었다. 다닌 흔적은 있었으나 그 흔적도 어느 정도 지워져 있었다. 나는 철도 건널목을 건너 그 길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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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세상을 덮는다기보다 나뭇가지 위에서 하얗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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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으로 난 길을 넘어가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났다. 길은 나무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곳에 마을이 있었다. 세 집 정도가 있었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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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양철 지붕 위의 하얀눈. 설마 눈의 무게로 양철 지붕의 한가운데가 내려앉은 것은 아니리라. 그보다는 누군가의 무게로 힘들었던 기억을 오늘 그나마 눈이 덮어 달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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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의 봉당에선 눈을 쓸던 빗자루 하나가 눈을 맞고 있었다. 마당은 이미 모두 흰빛에 묻혔고 빗자루도 하얗게 덮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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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렇게 일색으로 덮기는 어렵다. 초록이 지천일 때도 세상의 색을 초록이 독차지하진 못한다. 그러나 눈이 오면 세상은 하얗게 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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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나와 산을 내려오고, 들어오던 길로 다시 나섰을 때 눈발은 완연히 굵어져 있었고, 멀리 내가 들어온 철도 건널목에서 빨갛게 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더욱 하얗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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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기세는 더욱 거세진다. 마치 세상을 흰색으로 집어삼킬 태세이다. 시인 오규원은 눈이 왔을 때의 세상을 단색의 독재가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했다. 어찌보면 맞는 말이다. 세상이 모두 흰색으로 일색이 되어 버리니.

그러나 그 말은 눈에 대한 오독이다. 그는 눈이 왔을 때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즐거워하고 행복해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건 사람들이 자학적 성향이 있어 독재의 세상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다. 눈이 오는 날 세상은 단색이 지배하는 독재의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제 색을 내놓고 흰색으로 하나 된다.

우리에겐 그렇게 이중의 욕망이 있다. 우리는 모두 제 색깔을 갖고 살고 싶어하면서도 또 나를 버리고 모두가 하나되고 싶어한다. 세상의 것은 모두가 제 색깔을 갖고 있다. 나무는 나무의 색을, 논은 논의 색을, 길은 길의 색을. 나는 나의 색을, 너는 너의 색을, 그녀는 그녀의 색을. 색이 선명할수록 그 경계는 더욱 날이 선다.

그러나 눈은 그 모든 색을 덮어 세상을 일색으로 만들어버린다.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그러나 그 일색으로 덮인 세상에서 나는 나의 색을 잠시 덮어두었을 뿐 나의 색이 뿌리를 뽑힌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나는 왜 눈을 찾아 소갈증 환자처럼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간 것이었을까. 나는 나의 색으로 살고 싶은 한편으로 세상과 일색으로 하나되고 싶은 이중의 욕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나의 색으로 살고 싶은 한편으로 나의 색을 지우고 너와 하나의 색으로 덮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눈에 지워지는 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는 하얗게 지워지고 싶었다.

ⓒ 김동원
기차가 온다. 아마도 장항을 거쳐 군산으로 가는 기차일 것이다. 오늘 이곳을 지나는 모든 기차는 눈꽃 열차이다. 기차 속의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리고 싶을 것이다. 하얗게 지워지고 있는 세상을 차창으로 보며 그들도 그 속으로 뛰어내려 하얗게 지워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제 갈 길을 가야하면서, 제 색의 삶을 살아가야 하면서,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고 싶다. 그렇게 눈이 온 세상처럼 하얗게 지워지고 싶은 게 우리들이다. 기차가 간다. 그 하얀 눈꽃 세상의 한가운데로. 하얗게 지워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싣고.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 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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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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