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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괄의 잔당들이 궁에 들어온 계화를 고이 놔두지 않았나 봅니다. 장초관께서는 남한산성에서 똥통에 밀어 넣은 내관을 기억하시오? 성상께서 황공하옵게도 곤룡포를 내리셨으나 그가 거두어간 적도 있지 않소?"

장판수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아니 어찌 그런 것 까지 아는 것이네?"

"허!그야 남한산성에도 보는 눈이 많았는데 그런 소문이 안 날 리 없지 않겠소이까. 다만 어떤 포수에게 곤룡포를 내렸다느니 집에다가 모셔 뒀다느니 하며 소문이 잘못 전해져서 그렇지 말이외다. 하여간 그 내관놈이 왕명을 빙자해 여러모로 장난을 친 모양이외다. 곤룡포는 다른 일에 쓸모가 있는 물건이기도 하니까 말이오. 하여간 그 자도 두청과 한 패고 계화와도 얘기가 있었던 모양이오."

"기럴 리가 있어? 계화는 이진걸에게 잡힌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는 의도된 것입니다. 두청이 남한산성에서 찾아낸 두루마리를 어떻게 이용하였는지 아시오? 내관과 연계해 그 두루마리에 대신들이 자신이 이름을 적게 했다오. 그러니까, 두루마리에 적힌 글은 계화가 해독해 주었고 대신들이 두루마리에 이름을 적어 내면 홍타이지에게 목숨을 구걸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고 구슬렸다 이거요."

"조정대신들이 다 거기 이름을 적은 것이오? 어허!"

육태경이 분에 겨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관이 그럴만한 자를 골라 따라다녀 이름을 받은 것이오. 강직한 자에게 그걸 보였다가는 도리어 치도곤을 당할 것이지! 두 개의 두루마리에 이름을 다 받아 놓았는데 하나는 계화를 통해 홍타이지의 손에 들어갔고 하나는 두청이 가지고 있을 것이오. 후에 그 두루마리가 세상에 나온다면 이름을 적어낸 자들은 어떻게 되겠소?"

장판수는 그런 음모보다는 계화가 자신과 차예량을 농락했다는 사실에 분이 치밀어 올랐다. 평구로가 두청과 그의 일당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오래전 사기그릇 하나를 깨어 피로 맹세한 후 그 조각을 나누어 가졌다. 지금의 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이괄의 난 후 그들은 조정 대신들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거나 땡중이나 무뢰배 행세를 하며 세를 불려 나갔지. 허나 그들을 무조건 욕할 수만은 없다."

"그런데 말이오. 대체 그 두루마리에 이름을 적은 역적놈들이 누구요?"

아직도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육태경의 질문에 짱대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건 두루마리를 보아야 알 수 있소. 두청 일당이 가지고 있다는 건 틀림없는데......"

"기렇다면 그걸 빼앗아야 하지 않겠네? 그거라면 이괄의 잔당놈들이나 조정의 역적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다우."

장판수의 말에 사람들은 무거운 침묵에 잠겨 버렸다. 평구로는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걱정했고, 최효일과 짱대는 그 일이 청에 당한 치욕을 씻기 위한 준비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고 여겼다. 육태경처럼 포로로 잡혔던 이들은 고향으로 내려가 살아갈 일이 막막할 따름이었다.

"허! 왜들 이러나? 기럼 됐다우! 혼자 가겠어! 내래 두청과는 담판 지을 일이 많으니 말이야."

"힘으로나 지혜로나 장초관이 함부로 맞설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내가 돕겠다."

평구로가 먼저 장판수를 돕겠다고 나서자 육태경이 벌떡 일어났다.

"나처럼 포로로 잡혔다가 죽을 뻔했던 사람들은 모두 장초관에게 빚을 진 것이 아니오! 난 돕겠소!"

육태경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나서자 남은 이는 최효일과 짱대뿐이었다.

"훗! 장형의 말에 동의하오. 밖의 적을 치기 전에 안의 적을 정리하는 게 옳은 것 같소."

최효일마저 장판수를 돕겠다고 나서자 짱대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에라 모르겠다! 한양에서 불한당 노릇도 해보고 쓸개 빠진 놈 마냥 남의 뒤꽁무니만 따라 다녀도 보았는데 이 까짓 일쯤이야 뭐 부윤께서도 이해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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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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