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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나쁜벌레는 없다> 겉그림
ⓒ 민들레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고? 얼른 떠오르는 나쁜 벌레(해충) 이름들 몇 개. 바퀴벌레, 모기, 파리, 벼룩, 불개미, 사마귀…. 370여 쪽에 달하는 다소 두꺼운 책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를 집어 들며 나는 중얼거렸다.

"세상에 나쁜 벌레가 없다는 당신 얘기, 정말 그런지, 어디 한 번 들어나 봅시다."

엘리자베스 록은 "곤충에 대한 불신과 공포에는 다 까닭이 있다"면서 그 불신과 공포의 대부분이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자아의 경계선을 확고하게 설정해놓고, 그 선 너머를 공포스러운 세상(인간을 제외한 생물세계)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 마디로, 곤충에 대한 불신과 공포는 '조작된 사실'이라는 얘기.

그러면, 왜 그런 걸 조작했을까? 엘리자베스 록은 주장한다. '자아/타자'를 구분하여 '나/적(enemy)'으로 확실하게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우리한테 '타자'노릇, '적'노릇을 해줄 대상이 필요했는데, 그러한 역할에 어울리는 자로 곤충집단이 캐스팅되었다고….

그렇다면 벌레들은 처음부터 '나쁜 편'이거나 애초부터 '나쁜 벌레'들이 아니며, 엘리자베스 록에 따르면 그들도 우리처럼 삶을 살아가는 '지구생물 공동체'의 한 구성원일 뿐이다. 떼지어 몰려다녀 놀라게 하고, 가렵게 하고, 피를 빨아먹고, 심지어 말라리아를 전염시켜 인간을 죽게 하기도 하는 벌레들, 그들은 우리와 동등한 존재들이다.

이해는 되지만 수긍하기가 얼핏 어려울 것이다. 어떻든 벌레들이 인간에게 주는 피해라는 게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록은 벌레들이 인간에게 주는 피해를 다른 시각에서 보기를 권한다. 해충이 갑자기 늘어나서 농작물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면 우리는 너도나도 해충박멸에 뛰어든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록은 벌레들의 창궐에서 생태계 위험신호를 간파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한편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큼 벌레들이 오염되어있지 않음도 과학적 사례를 들어가며 알려준다. 또한, 벌레들이 병균을 옮기는 '주요' 매개체도 아니라고 강조하며 벌레를 죽이느라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살충제의 해악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덮어놓고 '좋다/나쁘다'를 섣불리 결정하는 것에 대해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든다. 아울러, 인간들이 벌레에게 주는 피해(파리채로 파리 때려잡기, 손가락으로 개미 눌러 죽이기, 살충제 뿌려서 바퀴벌레 몰살하기 등)에 대해서도 공정히 생각해보게 만든다. 물론 완전히 공정해지기가 어렵지만….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TV로 영화를 보는 중에 파리 한 마리가 내 눈앞에서 웽웽거리며 방해를 했다. 나는 그 파리를 잡아으려고 궁리를 하는 대신 시험 삼아 "꼭 여기에서 날아다녀야 되겠어? 저쪽에 가서 좀 날아다니시지?"하고 '진심으로' 제안했다. 그 순간부터 그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파리는, 내 곁에 한 번도 다시 오지 않았다. 신비로웠다. 그보다 더 큰 신비로움은, 파리도 나도 서로를 해치지 않았고 내 마음이 평정을 잃지도 않았다는 것이리라.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 작은 것들 속에 깃든 신의 목소리

조안 엘리자베스 록 지음, 조응주 옮김, 민들레(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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