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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용철 열사와 홍덕표 열사의 영정
ⓒ 이창기
경찰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고 전용철씨의 친형 전용식(50)씨는 성탄절에도 영안실의 영정을 지키고 있었다. 영안실에는 청년 전용철씨와 노인 홍덕표씨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잃어야 했던 전용철씨에 대한 형 전용식씨의 애정은 남달랐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도 함께 자취하며 형제간에 남다른 정을 쌓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남겨 주신 땅을 지키겠다고 귀향을 하려는 동생을 그는 극구 말렸다고 한다. 형제들도 다 서울에서 살고 있었고 전용철씨는 선반을 잘 다루는 등 재간이 많아 서울에서도 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전용철 열사의 친형, 전용식씨
ⓒ 이창기
전용식씨는 동생 용철씨가 희생되기 3개월 전에도 보령으로 내려가서 빚만 쌓이는 버섯 농장 포기하고 서울로 가자고 동생을 설득했다고 하다.

"그때 데리고 왔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동생이 워낙 고집이 강했죠."

전용철씨는 바로 그런 재능과 고집이 있었기에 버섯 재배를 시작하자마자 처음부터 성공을 거두었다. 1, 2년 동안은 수익도 남겼다.

"형님, 한 3년만 하면 시설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럭무럭 자라나는 양송이 버섯을 보며 그렇게 환한 웃음을 짓던 동생의 모습이 지금도 전용식씨는 눈앞에 아른거린다.

"동생이 버섯재배를 성공하자, 마을 사람들 너도나도 농토를 담보로 농협에서 빚을 내 버섯재배를 시작했죠. 동생은 동네 사람들에게 못하게 할 수도 없고, 기술도 가르쳐 주고 했는데 그만 생산 과잉으로 값이 폭락하는 거예요. 버섯은 3일도 보관을 못해요. 못 팔면 다 썩어 버립니다. 폭락하는 거죠."

지금도 보령 죽포에 가면 버섯비닐하우스가 텅 빈 것들이 많다고 한다. 정부에서 쌀개방에 대비한답시고 아무에게나 돈을 빌려 주어 특용작물 재배로 전환 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버섯 재배용 비닐하우스 한 동에 2000~3000만 원씩 들어가는 특용작물 재배 안했으면 이렇게까지 큰 빚을 지지는 않아요. 땅은 잃지 않았을 겁니다. 이건 빚을 내준 농협에서 담보로 잡은 농민들 땅을 다 빼앗아가는 결과만 초래했어요."

쌀 수입개방에 대비한 특용작물 재배 대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또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전용철씨는 농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지회장을 맡는 등 농민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싸늘한 몸으로 냉동실에 누워있다.

"결혼도 하지 못한 채 한 많은 생을 마감한 동생이 희생된 지 30일이나 지났는데 정부에서는 아무 대책도 없어요. 경찰 폭력이 너무나 심각합니다. 용철이 문제만이 아니에요. 심각한 부상자만 140명이나 됩니다. 동생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마무리를 제가 하겠습니다. 진상을 반드시 밝혀낼 겁니다."

전용식씨의 입장은 단호했다.

'정부는 사과하라. 경찰청장은 사퇴하라. 기동단 책임자와 살인경관을 색출하여 구속하라. 재발을 막을 수 있도록 경찰의 곤봉과 방패 사용을 금지하라.'

영안실에는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보낸 화환이 하나도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 라디오 뉴스에서는 정치인들이 농민들의 아픔과 함께 하기 위해 폭설 피해 지역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는 보도가 연달아 나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자주민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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