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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도엽
12월 19일 저녁 석방된 농민들이 우카샤 캠프에 모였다. 석방의 기쁨보다는 한국영사관에서 신원보증을 거부해 보석으로 석방되지 못한 11명의 구속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영사관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농민이 언제 대한민국 정식국민이었냐? 기타국민이지."
"그래 맞아. 기타 국민이야."

농민들의 입에서 홍콩에 와서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대접을 받지 못한 자조 섞인 말을 한다. 개발시대엔 도시의 공장을 위해 설움을 받아야 했고, 이젠 세계화 시대에 또다시 희생양이 되어 농민의 생계를 빼앗겨야 한다.

홍콩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경남 함안 이형진 농민
홍콩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경남 함안 이형진 농민 ⓒ 오도엽
석방되어 숙소에 들어서자 들은 소식은 '농민은 기타 국민'
석방되어 숙소에 들어서자 들은 소식은 '농민은 기타 국민' ⓒ 오도엽
9박 10일 홍콩에서 농민들과 함께 한 나는 농민이 아니다. 시인이다. 우리 농민은 문학에서도 소외된 지 오래다. 생명과 농촌, 자연을 주제로 한 시가 쏟아진다. 하지만 철저히 자연만 있고 농민들의 삶은 없다. 문학하는 사람의 최소한의 양심으로, 철저히 '기타국민'으로 소외된 농민들과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하고 싶어 농민들과 비행기를 같이 탔다.

홍콩 기록을 연재하는 동안 일부의 사람은 공정하지 못하고 농민들의 좋은 점만을 쓴다고 이야기했다. 맞다. 현장에 있지도 않으면서 보도 자료를 보며 쓰거나, 또는 순간의 충격적인 장면만을 찾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24시간, 9박 10일간 농민들이 간 곳을 끊임없이 쫓아다니며 썼기 때문이다. 내 기록이 다른 기사보다 공정(?)하지 못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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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돈이 많아 농민들이 홍콩까지 가서 투쟁을 했냐는 비난이 있다. 홍콩에 있는 동안 전북지역엔 눈이 많이 왔다. 전북 농민은 하우스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가슴이 무너지는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연행이 되어 예약된 비행기를 타지 못한 농민은 수십만 원의 돈을 더 내고 비행기표를 끊어, 무너진 하우스로 달려가야 했다.

마지막 남은 퇴직금을 털어 홍콩에 간 나도 추가 비행기 삯은 빚으로 남아 함께 비행기를 탄 농민들과 함께 여행사에서 아직 빚 독촉을 받는다. 농민들은 대부분 홍콩에 갈 사람을 뽑아, 지역마다 몇 만원씩 모아 비행기 삯을 만들어 주었단다. 수매되지 않은 쌀이 아직 도청에 쌓여있는데, 호주머니 돈을 털어 보낸 거다. 한번쯤 '무슨 돈이 있어'가 아닌 '왜 홍콩까지 가야 했나'를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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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투쟁에 대한 전농 집행부에 대한 농민들의 비판도 현지에서 있었다. 하지만 홍콩에 간 농민들의 머리에서 지울 수 없는 성과가 있다. 지금 겪고 있는 농민의 어려움이 농민만의 것도, 우리나라만의 문제만도 아니라는 거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전 세계 민중이 함께 겪고 있는 고통임을 깨우친 거다.

그리고 홍콩시민들이 보인 처음의 무관심이 동조에서 지지, 참여로 바뀐 것을 확인하였다. 한국농민은 '국가 위신을 실추' 시킨 게 아니라, 홍콩 시민의 말처럼 '우리는 친구'를 확인시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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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떠나는 날, 숙소엔 홍콩 시민이 보낸 바나나가 수십 박스 쌓여 있다. 홍콩 시민들이 직접 카드를 만들어 한국농민을 사랑한다고 보내왔다. 홍콩 투쟁에서 한국농민이 사용했던 조끼와 옷, 구명조끼, 모자를 선물로 받아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 내 호주머니엔 홍콩 학생이 마지막 날 준 열쇠고리가 있다.

21일 새벽 4시 30분, 인천공항의 바람은 차갑다 못해 매섭다.

바닷물에 뛰어들 때 썼던 구명조끼에 사인을 받으러 온 홍콩 학생
바닷물에 뛰어들 때 썼던 구명조끼에 사인을 받으러 온 홍콩 학생 ⓒ 오도엽
12월 30일, 한국영사관이 아닌 홍콩 천주교 대주교와 교민의 보증으로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는 11명의 '기타국민'의 재판이 있는 날이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정식국민'이 되어, 우리나라에서 함께 연말을 보냈으면 하는 소원으로 홍콩 9박 10일의 기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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