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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해 12월 두 번째 토요일(10일) 오후였습니다. 작은 며느리는 항상 바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아버님께서 당신이 직접 농사지은 김장 배추 40여 포기를 손수 소금에 절이고, 또 헹궈 놓았다가 제 차에 실어 주셨습니다. 그날 제가 시댁 소 마구간 앞마당에서 자동차 시동을 걸고 있을 때였습니다.

"며느리 네 차도 오토냐?"하고 아버님께서는 평소와는 다르게 자동차에 대해서 유난히 관심 있게 물어보십니다.

"네, 아버님 오토예요. 그런데 아버님께서 오토도 아세요? 우리 아버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런 저의 말에 아버님께서는 쑥스럽다는 듯 웃으셨습니다.

사실 얼마 전 아버님 생신 때도 아버님께서 돋보기를 쓰고 운전면허 문제집을 풀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평생 농사를 지으셨기에 경운기 운전이 능수능란하신 아버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오토바이를 당신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계셨습니다.

그런 아버님께서 운전면허 취득에 도전하신 것은 2003년 가을부터였습니다.

2003년 초, 음력설을 지내자마자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생활을 시작하신 어머님은 그해 5월 마지막날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동안 아버님께서는 어머님 병간호를 하시느라 당신 평생 처음으로 농사를 짓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님께서 돌아가시자 소 키우는 일과 농사짓는 일에서 손을 놓으신 아버님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셔서 제일 먼저 어머님 산소를 찾아가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어머님 산소를 찾아가시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런 아버님께 운전면허증을 따 보시라고 권유한 사람은 부산에 살고 있는 큰시누였습니다.

그해 가을, 아버님께서는 운전면허 문제집을 들여다보시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동차학원에도 열심히 다니셨습니다. 하지만 72세이신 아버님께 필기시험은 무척 오르기 힘든 산이었나 봅니다. 실기시험이야 그동안 오토바이와 경운기를 타고 다닌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합격하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주어진 시간 내에 60점을 받아야 하는 필기시험이 아버님께 가장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그 후 아버님께서 필기시험에 서너 차례 실패를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는 굳이 아는 체 하지 않았습니다.

▲ 지난해 5월, 아버님은 오른쪽 엄지 발가락 절단 수술을 하셨습니다.
ⓒ 한명라
그러던 중 아버님께서는 지난해(2005년) 5월, 논에서 모를 심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시다가 다치셔서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경운기를 이용하여 로타리작업을 하시던 중 노끈이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감아버려 그만 뼈가 골절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1개월 가까이 병원생활을 하시던 아버님은 운전면허 문제집을 손에서 떼어 놓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을걷이를 다 끝내고 나서, 아버님은 초저녁에 이른 잠을 주무신 후, 자정 12시쯤 일어나셔서 1시간에서 1시간 30여분 동안 문제집을 풀었더니 그 내용이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오더랍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12월에 아버님께서는 68점이라는 엄청난 점수로 필기시험을 당당하게 합격을 하셨고, 비록 한 번의 실패를 했었지만 실기시험도 높은 점수로 합격을 하셨습니다.

이제 아버님께서는 이번 주 9일부터 시작되는 도로주행 시험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그깟 도로주행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도로주행만 통과하면 당장 중고자동차 한대를 구입하실 거라고 꿈에 부풀어 있는 아버님의 모습을 지켜보던 시아주버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언제인가 퇴근길에 저희 사무실에 들르신 시아주버니는 동생인 남편에게 간곡하게 이런 부탁을 하더랍니다.

"혹시 아버지가 너한테도 차를 사야겠다고 말씀하시거든, 그냥 택시타고 다니시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씀 좀 드려라."

아버님의 올해 연세는 결코 적지 않는 75세입니다. 그 연세에 불안해 보이기 이를 데 없는, 초보운전을 시작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자식 된 입장에서 어찌 걱정이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아버님의 입장에서 결코 짧지 않은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여 취득한 운전면허증을 노력한 보람도 없이 장롱면허증으로만 보관하기를 바라는 것도 왠지 불효일 것도 같습니다.

새해 첫날인 1월 1일, 저희 가족은 시댁으로 아버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때 저녁식사 도중에 아버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도로주행 시험이 끝나고 23일쯤 너희 사무실을 들릴 테니 그때 애비는 시간 좀 내거라."
"왜요? 창원에 무슨 볼 일이 있습니까?"하고 묻는 남편의 말에 아버님께서는 "도로주행시험이야 금방 통과할 것이고, 애비 네가 자동차에 대해서 잘 아니까 나하고 중고 자동차 한대 사러 가자."

아버님의 그 말씀에 남편과 저는 자신도 모르게 무작정 반가워만 할 수 없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때 저는 "아버님, 운전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에요. 어느 순간 당황하게 되면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하는 것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서 사고가 나기도 해요. 종종 그런 사고가 났다고 뉴스에서도 그러잖아요? 저도 운전을 처음 시작한 지 4개월만인가요? 마산 어시장에 김장김치 재료 사러 가서 주차장에 주차하다가 옆에 차를 들이받아서 수리비가 25만원이나 들었어요. 마음은 브레이크를 밟아야지 하는데 발은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버렸거든요. 그때 엄청 비싼 김장김치를 먹었어요."

옆에 있던 남편도 저의 이야기를 거들었습니다.

"도로주행 시험에 통과했다고 해서 바로 운전면허증이 나오는 것은 아니거든요. 일단 운전면허증이 발급되면 그때 또 도로연수를 10시간 정도 받아야 합니다. 도로주행은 시험을 보기 위한 것이고, 도로연수는 아버지께서 자주 다니시는 길을 중심으로 운전연습을 하거든요. 젊은 사람들은 하루에 2시간씩 보통 5일간 연달아서 도로연수를 받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고 하루에 2시간 도로연수를 받으시면 2, 3일 시간을 두었다가 또 2시간 도로연수를 받는 방법으로 해 보세요."

아버님께서는 저희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표정이십니다.

"자동차야 돈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살 수 있는 것이고, 먼저 도로주행에 합격하셔서 운전면허증부터 받으셔야 합니다.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도로연수도 안됩니다."
"알았다, 너희들 말을 들으니까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면 자동차 사는 일은 조금 뒤로 미뤄야겠다."

이렇게 해서 시아주버니께서 걱정하셨던, 지금 당장이라도 이뤄질 것 같던 아버님의 자동차 구입은 잠시 뒤로 미루어졌지만, 아버님의 운전면허 취득이 무조건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시면, 동네 사람들 단체로 아버님께서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멀리 진동 바닷가 횟집에 놀러 가기로 약속을 하셨다는데, 그런 아버님을 지켜보는 자식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걱정만 가득입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주와 할아버지는 헤어지기 전에 아쉬운 포옹을 했습니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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