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책 겉그림
ⓒ 푸른숲
누구나 한 번쯤은 일을 하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심장이이 콩닥콩닥 뛰면서도 도무지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일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만큼 정열이 담겨 있는 까닭에 땀을 흘리면서도 힘든 것조차 몰랐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저 돈벌이하려고 일한 게 아니라 남을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던 그 때의 일이 그것이다.

그런 봉사를 한 번으로 그친 게 아니라 월드비전에서 수년간 경험한 사람이 있다. 이름하여 '한비야'가 그요, 그가 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2005·푸른숲)에는 그가 얼굴도 말도 다른 이방인들을 위해 왜 봉사하려고 했는지, 또 세계 곳곳을 누비며 봉사한 그 일들이 무엇인지 담겨 있다.

"어쩌면 이런 약자의 경험들이 여행길에서도 내 마음을 자꾸 다른 약자들에게 끌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지만, 세상에는 내가 겪었던 상처 입은 자존심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통을 일상적으로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구호 단체에 들어가고 싶었다."(12쪽)

그녀는 사실 월드비전의 긴급구호 팀장이 되기 전까지는 국내를 비롯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돌고 돌아다녔던 '바람의 딸'이었다.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부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그녀는 마음과 발길이 이끄는 대로 세계 곳곳의 오지들을 돌며 7년 간 탐험하기도 했다.

그 여정 중에 볼 것도 많이 보았고, 또 보지 못할 것도 숱하게 보았다. 미국과 유럽 사회를 돌며 본 그 아름다움과 신비스런 화려함은 가히 그녀의 넋을 빼앗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아프카니스탄 등지에서 보게 된 슬픔과 애통의 그늘 속에 갇힌 사람들과 아이들은 결코 두 눈을 뜨고서는 보지 못할 슬픈 참상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그때 그녀는 여행이 끝나는 지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뜻있고 보람 있게 보내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그만큼 세계 곳곳을 누비며 보았던 사람들의 가난과 기근과 질병들, 그로 인해 하루에도 숱하게 죽어 가는 그 사람들과 그 아이들이 그의 눈에 선명하게 밟혔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그들을 위해 일할 기회를 얻도록 뜻을 세웠고, 그 굳은 뜻을 계기로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팀장 역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 봐. 이렇게 하길 잘했잖아. 현장 규칙을 어긴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 벌, 달게 받겠다."(74쪽)

이는 긴급구호 팀장으로서 남아프리카에 갔을 때의 일이다. '카니오 폴라'라는 마을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십대 젊은 부부가 도무지 먹을 게 없어서 한 아이는 벌써 밭에 묻었고, 다른 아이도 물로 배를 채우며 달래고 있지만 그마저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한비야는, 아무리 굶어 죽어가는 그 현장을 목격한다 할지라도 결코 사사로운 돈을 줄 수 없다는 그 현장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에게 있는 30달러를 그 부부의 손에 쥐어 주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 개개인에게 사사로운 도움의 손길을 베풀 경우, 그 일이 주위 동료들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당장 징계를 받거나 구호 현장에 직접 나갈 수 없는 제재를 받는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그런 벌이나 징계보다도 더욱 두려워했던 것은 그녀 앞에 닥친 그들의 아이가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닥칠 화나 징계보다도 훨씬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밖에도 이 책에는 그녀가 세계 곳곳에서 펼친 구호활동들을 상세하게 밝혀주고 있다.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낀 채로 깊은 산 속에서 도움을 베풀었던 네팔 지역에서의 구호활동이라든지, 전쟁 속에서도 곳곳에 식수 시설을 놓았던 이라크 지역에서의 구호활동, 그리고 남아시아 해일로 대 참사를 겪었던 그 현장 속에서 긴급구호 물자를 나눠줬던 스리랑카 동부 해안 지역에서의 구호활동들도 담고 있다.

그러나 참된 봉사를 행하는 그 길에는 언제나 불필요한 잡음이 있기 마련이듯이, 그녀가 누비는 현장 속에는 거대한 마차의 앞을 가로막고 선 사마귀처럼 항상 가시 돋친 비판이 뒤따라 다녔다. 월드비전이라는 단체가 혼자서 그렇게 애쓴다고 해도 결코 세상은 호락호락 변해주지는 않을 것이란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초 하나에 붙은 불을 옆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모두가 따뜻해 질 수 있다며, 결코 희망 섞인 말을 빼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내 주변부터 밝고 따뜻하게 하고 싶다. 모든 일을 해결할 순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눈빛 푸른 젊은이여, 만약에 당신이 내 옆에 서 있다면 내 촛불을 기꺼이 받아주시겠는가."(159쪽)

그 한 가닥 희망 때문에 오늘도 그녀는 세계 곳곳의 재난 현장을 누비고 있으며 앞으로도 또 누빌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제 목숨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늘 뜻에 맡기며 온 마음으로 봉사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구제의 손길을 펴는 그 일만이 그녀의 온 심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때문이요, 그 일만이 오늘 당장 재난의 현장 속에서 죽는다 해도 정말로 값진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이유 때문이리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푸른숲(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