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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폭풍이 몰아치던 날, 부유한 사람들만 모여 살던 고층아파트에서 4인 가족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름하야 '아라카와 일가족 4인 살인사건'. 부잣집 동네에서 벌어진 사건은 여러모로 관심을 끌기에 이 사건도 비슷한 사건들처럼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그 관심도 금세 사라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한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그 장면이란 무엇일까? 살해당한 4인 가족이 실상은 그곳에 살던 4인이 아니라고 밝혀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버티기꾼'이다. 법원 경매를 통해 집을 구입한 사람이 들어올 수 없도록 그곳에서 꼼짝도 안하던 사람들로 밝혀지면서 <이유>는 단순 범죄가 아닌 현대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추는 다큐멘터리 같은 추리소설의 막을 열게 된다.

▲ <이유> 겉그림
ⓒ 청어람미디어
4인 가족 살인사건을 다룬 <이유>의 첫인상은 상당히 독특하다. 먼저 외모. 추리소설치고 한권으로 66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첫인상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추리소설 특유의 가볍고도 자극적인,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즐거움을 원했던 이들을 긴장시킨다. 또한 추측케 한다. 이 정도의 분량을 지닌 추리소설치고 사건만 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유>처럼 두툼한 추리소설은 깊은 곳을 포착하는 경우가 많다. 입시문제나 가족문제를 폭로하기 위해, 혹은 자본주의에 소외된 인간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유>도 그런 작품일까? 안쪽을 보자. 안쪽 또한 외모만큼이나 독특한 첫인상을 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이 없다는 것.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며 범인의 뒤를 쫓는 주인공이 없다는 건 확실히 눈길을 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초반에 범인이 쉽게 정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반전의 즐거움을 주기 위한 복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순히 자신을 드러낸다. 게다가 그 범인은 '이제는 지쳤다'며 '잡아 달라'고 말한다.

추리소설에서 주인공은 '선'이며 범인은 '악'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유>는 원천적으로 주인공이 없다. 또한 존재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범인도 부재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선과 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배경이 되는 현대사회에서 선과 악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 없음을 말없이 보여주려는 계산일까? 일단 첫인상은 이쯤 두고 본격적인 만남을 시작해보자.

<이유>는 르포르타주 형식을 띄고 있다. '기록'이자 '보고'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시점은 사건이 완료된 뒤에 사건의 처음으로 돌아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주인공이 없는 탓에 <이유>는 작가와 같은 존재가 이끌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사건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 기사를 쓰는 기자처럼, 보도 자료를 돌리는 연구원 같은 정도의 위치를 취할 뿐이다.

때문에 독자를 속이는 심리전은 없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이쯤 되면 완전한 정면승부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추리가 존재는 하지만 범인을 밝히는 과정만큼이나 비중이 작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으로 승부하려는 것인가. 미야베 미유키는 심상치 않은 시도를 한다. 작가는 먼저 살인사건이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목격자만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모든 이가 연결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런 탓인지 <이유>는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들뿐만 아니라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의견까지 쫓는다. 그렇다. '의견'이다. 의견을 좇아 다양한 시선에서 사건을 해석한다. 또한 서로 다른 의견들을 교차시켜 모순적인 장면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초반부,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추리소설의 흥미로운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내, 심상치 않은 정체가 드러나는 걸 목격하게 된다. 무엇을 목격할 수 있을까? <이유>의 시도는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담아내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실제로 그것을 성공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가. 빛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문제는 그림자다.

그림자를 만드는 건 무엇인가. 돈에 미친 사람, 가족을 배반하는 사람, 성공에 목을 맨 사람, 타인의 죽음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그림자를 만든다. 정상적인 것 같지만, 연쇄살인극보다 더 잔악한 현대인들의 일상이다. 난도질당한 사체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구역질을 일으키는, 고개를 돌리게 만들고 싶은 생활이 그려져 있다. 게다가 가족끼리도 서로를 오해하는 현대인, 가족끼리도 서로를 미워하는 현대인의 모습까지 덧붙여지니 그 적나라함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두툼한 분량이 준 독특한 첫인상, 그것이 쉽게 이해가 된다. 단순 범죄가 아닌, 미묘한 현대인의 어두운 영역을 밀도 있게 그려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또한 선과 악이 없는 첫인상 또한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다. 현대사회를 어찌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겠는가. 누군가의 선의가 누군가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막힌 사회이니 어찌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앞모습은 선하다 할지라도 뒤돌아서며 악의적인 웃음을 짓는데 어찌 쉽게 믿음을 줄 수 있을까?

바벨탑을 떠올린다. 바벨탑을 오르려했던 그 옛날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떠올린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고층아파트는 바벨탑을 상징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고층아파트에서 벌어진 사건은 옛날 바벨탑을 오르던 인간의 그것과 같아 목덜미를 서늘케 한다. 이것들을 담아낸, 추리소설의 편견을 깨버린 <이유>, 추리소설의 한 위치를 차지할 만하다.

이유

미야베 미유키 지음, 청어람미디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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