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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하늘원장례식장에 최광식 경찰청 차장 수행비서였던 강희도 경위의 빈소가 차려졌다. 창문 너머로 강 경위의 영정사진과 관계자가 보인다.
21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하늘원장례식장에 최광식 경찰청 차장 수행비서였던 강희도 경위의 빈소가 차려졌다. 창문 너머로 강 경위의 영정사진과 관계자가 보인다. ⓒ 연합뉴스 이상학
21일 발생한 최광식 경찰청 차장 수행비서 고 강희도(40) 경위의 자살 사건이 숱한 의혹을 낳고 있다. 강 경위는 자신의 사무실에 "검새(검사)들 앞에 가기 싫다"는 유서를 남겼지만, 왜 굳이 죽음을 택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경찰과 검찰은 강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었다는 데서 뭔가 석연찮은 느낌을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왜 자살까지 택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20일 오전 소환조사 요구를 받은 강 경위는 사건의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 신분이었다. 더구나 단 한 차례 검찰 조사도 받지 않은 채 자살을 택한 강 경위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불법도청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이수일 전 국정원 차장 등 피의자가 자살한 사례는 몇 차례 있었지만, 이번 사건처럼 조사도 받기 전에 목숨을 끊은 일은 드문 경우다. 강 경위가 최측근으로 보좌하던 최 차장도 사건을 접한 뒤 "검찰에서 조사 받는 것이 죄도 아닌데 왜 자살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강 경위의 자살 이유를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피의자도 아닌 참고인 신분 자살... 왜?

강 경위가 남긴 유서를 통해서만 본다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자살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강 경위는 A4용지 5장에 휘갈겨 쓴 유서에서 "순진하게만 산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썼다. 이 외에도 유서 곳곳에서는 결백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문장이 나와 있다. 유서 내용대로라면 강 경위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하지만 유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제기되는 의혹이 너무 많다. 앞서 밝혔듯 강 경위가 검찰 조사 자체를 거부하며 죽음을 택한 것부터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다음으로는 검찰이 혐의를 두고 있는 '돈 심부름' 문제다.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강 경위는 지난 2005년 3월 최 차장의 친구인 박아무개 사장에게 2000만원을 송금했다. 박 사장은 같은 해 7월 최 차장의 부탁을 받고 동일한 액수의 돈을 법조 브로커 윤씨에게 전달했다. 2005년 3월과 7월 강 경위로부터 박 사장에게, 박 사장으로부터 윤씨에게 전달된 금액이 우연찮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검찰이 의심을 품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검찰은 평소 박 사장이 최 차장과 윤씨 사이에서 창구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최 차장의 측근인 강 경위도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강 경위는 유서를 통해 검찰의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유서에는 "돈 좀 잘 벌어서 살겠다고 박 사장님께 이야기 듣고 송금시킨 것이 무슨 죄가 된다고 더러운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냐"고 나와 있다. 자기가 모은 돈을 박 사장을 통해 투자해 수익을 얻으려 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박 사장에게 준 2000만원의 조성 경위에 대해서도 "그 동안 차장님께 용돈 받아 모은 것으로 한 것"이라며 "차명계좌는 우리 각시(아내) 몰래 장인어른 계좌를 사용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강 경위는 "윤상림은 잘 모른다"고 검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최광식 차장도 이를 적극 뒷받침하는 해명을 하고 있다. 최 차장은 21일 기자들에게 "강 경위의 돈 2000만원 중 1000만원은 내가 준 용돈과 활동비, 나머지는 자신의 용돈 등을 모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최 차장은 이런 얘기를 강 경위가 자살하기 전인 19일에 만나서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최 차장은 또 지난해 7월 박 사장을 통해 윤씨에게 2000만원을 전달한 경위에 대해 "윤씨가 급전이 필요하다고 요청해 친구인 박 사장을 통해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브로커 윤씨 급전 요청 2000만원 송금? 얼마나 가까웠길래...

최광식 경찰청 차장.(자료사진)
최광식 경찰청 차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처럼 강 경위의 유서 내용과 최 차장의 해명이 딱 맞아떨어지지만, 모든 의혹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윤씨가 급전을 요청했다"는 최 차장의 해명에서부터 검찰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할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뒤집어보면 최 차장과 윤씨가 급전을 요청할 만큼 서로 가까웠다는 얘기다.

3월과 7월에 거래된 돈의 액수가 묘하게 일치하는 점도 석연찮다. 최 차장과 강 경위의 해명이 맞더라도, 최 차장은 자신의 '30년 지기' 친구인 박 사장에게 강 경위가 2000만원을 투자한 사실을 왜 지난 19일이 돼서야 알았느냐는 점도 의심해 볼 수 있는 문제다.

최 차장이 2000만원 중 1000만원의 출처에 대해 "자신이 준 용돈과 강 경위의 활동비"라고 밝힌 부분도 마찬가지다. 최 차장은 이에 대해 "강 경위가 1년 이상 모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개 경위가 용돈과 활동비를 모아 2000만원이라는 목돈을 만들었다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경찰청 내부관계자는 "보통 상급자가 부하에게 명절이나 휴가를 맞아 용돈을 주는 경우가 있지만, 도대체 얼마를 용돈으로 줬기에 1000만원씩이나 돈을 모을 수 있었겠느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강 경위 자살의 배경에 '뭔가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잇는 셈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현재 드러난 2000만원 외에 다른 금전 거래에도 강 경위가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일 오전 소환조사를 통보한 것도 이런 의혹을 캐기 위해서였다. 만약 검찰 수사 결과 최 차장과 윤씨 사이의 금전 거래 의혹, 이 과정에서 강 경위의 역할이 드러난다면 경찰 조직으로서는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

강 경위 자살 사건으로 인해 검찰과 경찰은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악습처럼 되풀이 돼 온 '피의자 자살 사건'의 악몽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찰 역시 '건국이래 최대 브로커'에 조직 최고 지휘관이 걸려 있어 사건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한편 경찰 내부에서는 수사권조정을 앞둔 검찰의 목적 수사라는 비난도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자칫 양 조직의 전면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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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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