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초대감독 최태용 목사.
"우리에게도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중략)…일본의 강압적인 마수는 1942년에 이르러 초대감독 최태용 목사에게 무거운 죄책의 짐을 지게 하고 말았습니다…(중략)…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더 민족을 사랑하지 못한 죄를 날마다 회개할 따름입니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회장 나명환 목사)가 지난 20일 발표한 '초대감독 최태용 목사 친일행적에 대한 죄책고백문'의 일부이다. 일제시기 각 종교의 친일행적은 많이 드러났지만 교단 차원에서 반성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기독교대한복음교회의 이번 고백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교회의 친일부역은 심각한 배교행위"

교계 지도자의 친일행적을 교단 자체에서 공식적으로 고백한 것은 천도교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천도교는 지난해 8월 29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명단'을 발표한 기자회견장에서 최린·이종린 등 교단의 핵심 지도자 및 교단 차원에서 이뤄진 친일행적을 참회하는 글을 발표했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고백문'에서 "일제강점기 한국교회에서 이뤄진 친일부역은 심대한 배교행위"라고 규정한 뒤 "우리에게도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며 최태용 목사의 행적을 고백했다.

최 목사의 대표적인 친일행적 증거로 제시되는 것은 1942년 잡지 <동양지광>(10월호)에 기고한 '조선기독교회의 재출발'이라는 글. <동양지광>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였으나 이후 친일파로 전향한 박희도가 '내선일체와 황도선양'을 내세우며 1939년 창간한 친일잡지다. 박희도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참사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친일 언론인이다.

최 목사는 이 글에서 "조선을 일본에 넘긴 것은 신"이라며 "우리는 신을 섬기듯이 일본 국가를 섬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일본국에 바치도록 신에게서 명령받고 있다"며 징병제 참여를 그 예로 제시했다.

이는 당시 일본의 적국이던 미국과 영국 기독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기독교의 일본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신을 섬기듯 일본 섬기자'고 했던 부끄러운 과거... 가슴 아프지만 고백"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지난 16~17일 열린 제 46차 총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 안건으로 공식 상정했고 토론 끝에 '친일과거사 죄책고백 특별위원회'를 구성, 최 목사의 친일행적을 고백하는 글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본래 교단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젊은 교인들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왔으며 이번에 받아들여져 총회에서 공식 결정된 것이다.

특별위원회원인 전진택 목사는 23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최 목사님의 경우 다른 교단 지도자들처럼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총회에서 나왔고 논란이 있었다"며 "그렇지만 그런 글을 남긴 것은 분명한 사실인 만큼 교단 차원에서 고백하고 털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목사는 "그렇지만 우리는 교단 차원에서 신사 참배를 결의하거나 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최 목사의 조카인 최홍정 장로도 같은 날 통화에서 "<동양지광>에 쓴 글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며 최 목사님은 해방 후 일본인들이 두고 간 교회도 접수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도 "교단 차원에서 과거를 정리하고 가야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져, 개인적으로는 가슴 아프지만 (고백문 발표를) 받아들였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김승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은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장로교나 감리교 등에 비해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일제의 우선적인 정책 대상은 아니었다"고 전제한 뒤 "그렇지만 창립자의 친일행적을 교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자 의미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은 고 최태용 목사가 서양 선교사 중심의 기성 교단 체계를 비판하며 1935년 '복음적이고 생명적인 신앙, 학문적인 신학, 한국인 자신에 의한 교회'를 표방하고 창립한 교단이다.

다음은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발표한 고백문 전문.


교단 창립 70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과 민족과 역사 앞에 엎드려 회개합니다.

지금 우리는 묵은 시대를 엎고 새로운 시대로 갈이 하는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지나간 시대의 진실을 털어놓고, 정의에 기반한 용서와 화해를 이룬다면 창창한 미래가 우리에게 있을 것을 믿습니다.

일제 강점에 의한 친일 부역과 해방 전후의 극심한 혼돈, 반세기도 넘는 분단과 이념의 갈등 속에서 빚어진 비극의 일단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마냥 덮어두고 잊혀지기만을 기다릴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한국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친일 부역은 단순히 식민지 백성의 비굴한 조아림을 넘어 일왕과 신사를 숭배하고, 대동아공영의 가치를 두둔하며 침략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습니다. 이것은 심대한 배교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1935년 암울한 식민지하에서 <조선인 자신의 교회>를 높이 외치며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교단적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모진 시절을 꿋꿋이 견디면서 민족교회로서의 사명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강압적인 마수는 1942년에 이르러 초대감독 최태용 목사에게 무거운 죄책의 짐을 지게하고 말았습니다.

1) 최태용 목사는 福元唯信이라는 이름으로 창씨를 개명하였습니다. 2) 친일잡지 <동양지광(東洋之光)>1942년 10월호에 일문으로 <조선기독교회의 재출발>이라는 친일논설을 기고하였습니다 3) 젊은 교인들을 강제징용이라는 총알받이에서 구제하기 위해 국민학교 교재용으로 쓰인 모형항공기 제작 공장을 차리게 했고, 총독부는 이를 군수품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내용도 숨길 것이 없습니다. 있다면, 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더 민족을 사랑하지 못한 죄를 날마다 회개할 따름입니다. 개인의 경건과 내적 만족에 치중하지 않고 하나님의 위엄하신 역사 안에 거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선도하는 교회의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다시금 각오합니다. 오늘 죄책고백을 드리는 우리의 뜨거운 눈물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심으로 받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민족과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교단으로 회복하여, 낮은 곳에서 낮은 자들과 더불어 맑은 생명신앙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 되겠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있는 진실한 죄책고백 뒤에는 진정어린 용서와 화해, 희망 있는 전진을 기대합니다.

2006년 1월 20일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 친일과거사 죄책고백 특별위원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