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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선 동복향토문화보존회장이 쉼터가 들어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최연종
동복의 문화와 역사를 한 자리에서 살펴 볼 수 있는 뜻 깊은 공간이 마련됐다.

동복향토문화보존회(회장 문제선)가 <옛 이야기가 있는 쉼터>를 조성, 이곳에 동복의 문화와 인물 등의 유래비 등을 세워 우리 문화와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복면 독상리 동복우회도로 교차로 주변에 단장된 쉼터는 400여 평의 아담한 공간. 도로개설공사를 하면서 생긴 국유지를 향토문화보존회에서 문화와 역사 공원으로 가꾸기 위해 마련했다.

지난해에는 남덕원비(南德院碑)를 이곳으로 옮기고 <옛 이야기가 있는 쉼터> 안내 표석을 세웠다. 주변은 잔디광장으로 가꿔 누구나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쉼터로 단장했다. 이곳에 10개의 비석과 정자가 들어설 예정인데 예산은 동복면민과 출향민들의 성금으로 마련된다.

24일, 그 첫 사업으로 동복면 연혁비를 비롯해 고려인삼(복삼) 유래비, 동복 한천농악 유래비, 항일독립운동가 정태봉 선생 기적비 등 4개의 비석을 세웠다. 고려인삼(복삼 福蔘) 유래비는 고려 인삼이 동복면 유천리 모후산 자락에서 최초로 재배됐다는 내용을 비에 새겼다.

▲ 동복향토문화보존회가 동복면 독상리에 조성한 「옛 이야기가 있는 쉼터」
ⓒ 최연종
고려 때 동복면 유천리에 사는 최씨가 중병에 걸려 죽음만을 기다리던 중 아내가 꿈에서 본 약초를 발견해 뿌리를 캐와 달여서 남편에게 먹이자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다. 이후 여인은 종자를 파종해 재배하면서 큰 부자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개성 상인들이 재배 방법을 보고 돌아가 개성에서 재배해 개성 인삼이 됐다는 것.

고려 헌종(1094∼1095)과 숙종(1096~1105) 때는 모후산에서 인삼을 인공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전하며 효능이 뛰어나 궁중에서 인삼을 달이면 향기가 궁궐 안에 가득해, 동복에서 생산된 인삼을 복삼(福蔘)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동복의 진상품인 복청(福淸), 복천어(福川魚)와 함께 동복이 삼복(三福)의 고장이라 불리고 있다. 동복삼의 특징은 색깔이 하얗고 장뇌가 양의 뿔 같이 두 갈래로 갈라져 양각(羊角) 삼 또는 백제(百濟) 삼으로 불렀다.

동복 유천리와 북면 노항리에서 소규모로 재배해오다가 1910년부터 한약재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동복 모후산 자락에 삼포를 마련해 대량 생산함으로써 홍삼(紅蔘)으로 재배해 개성인삼의 몇 배를 더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화순군이 올해 고려인삼 시배지 복원을 위해 산양삼 재배농가를 지원하고 있는 데다 우수한방지원시설을 화순에 유치, 백신단지 안에 들어서는 등 화순이 한방유통의 허브로 육성돼 고려인삼의 발상지로서 유래비 건립의 의미는 크다 할 것이다.

▲ 동복면 유천리 모후산 자락에서 고려인삼이 유래됐다는 내용의 고려인삼 유래비.
ⓒ 최연종
동복의 문화에서 한천농악을 빼놓을 수 없다. 전라남도 지방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될 정도로 농악의 가락과 진법이 잘 보존돼 있다. 이는 상쇠 등 전수자가 스승으로부터 잘 물려받아 기록하는 등 원형대로 보존해 오는 노력의 결실이다.

한천농악은 걸립굿(액막이)과 두레굿(농사굿), 군악굿(진굿) 등이 잘 조화를 이룬 좌동농악이다. 조선초 검부역이 설치되면서 관의 지원을 받았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황진 현감이 한천농악을 의병과 함께 진주성 싸움에 출전시켜 신호와 사기앙양에 활용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오랜 옛날부터 군악과 민속놀이로 전해온 것으로 보인다.

동복한천 농악은 12체 36가락을 바탕으로 9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동복은 예로부터 각 마을에서 세시에 마을 입구 당산이나 공동우물 등에서 굿을 하고 가가호호를 돌며 지신밟기를 하는 풍습이 오랜 동안 이어져 왔는데 이 과정에서 뛰어난 기량을 가진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됐다.

1964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아래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1979년 한천농악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6호 지정된데 이어 1987년 상쇠 노판순씨가 한천농악 기능보유자로 지정돼 매년 각종 행사에서 시연(示演)을 해왔다. 1996년 동복면 한천리에 한천농악 전수관이 건립돼 우리가락 보존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남덕원비. 역원에 대한 유일한 비(碑)로서 동복현 역사와 관련,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 최연종
남덕원(南德院)은 동복면 독상리 입구 구 한전 인근에 있던 원(院)으로 추정된다. 고려와 조선시대 때 관리들의 출장이나 우편물 등을 수송하는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던 곳이다. 남덕원비(南德院碑)는 독상리 논 가운데 세워져 있었는데 1982년 경지정리사업 때 없어질 뻔 했으나 문제선 회장이 전남도에 의뢰, 도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아 인근 구거로 옮겼다가 지난해 이곳에 역사 문화 공원이 조성되면서 다시 옮긴 것이다.

남덕원비는 3m 20cm 높이로 거친 사암질 자연석이다. 1666년 심우지헌(沈于之憲)이 동복현감에 부임한 이래 3년간 백가지 폐단을 바로잡아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덕원비는 역원에 대한 유일한 비(碑)로서 동복현 역사와 관련, 문화재적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17세기에 새겨진 행서(行書)체라는 점과 거친 자연석에 행서가 남아 있는 것은 극히 드물어 더욱 값진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1999년 2월, 전라남도 지정 지방유형문화재 제209로 지정됐다. 하지만 3백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마모가 계속돼 갈수록 원문을 알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보호각은 물론 비(碑)의 원문과 내력을 풀이한 부비(副碑)를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복향토문화보존회는 앞으로 화순 적벽을 최초로 명명한 신제 최산두 선생, 광주학생독립운동가 홍귀주 선생, 대금산조의 명인 한주환 선생, 인간문화재 55호 소목장 송추만 선생, 서양화단의 거목 오지호 선생 등의 행적을 비석에 새겨 쉼터에 세우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옛날 인근에 있었던 원풍정(願豊亭)도 복원할 계획이다. 문화와 역사 쉼터는 인근에 둔동 숲정이와 김삿갓 종명가, 한천농악 전수관, 오지호 기념관 등이 있어 이곳과 연계한 문화답사 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선 동복향토문화보존회장은 "선열(先烈)들의 얼을 비에 세우고 잔디동산을 만들어 누구나 이곳에 오면 우리 문화와 역사를 살펴보고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쉼터를 조성했다"며 "쉼터를 마련하기까지 도움을 주신 동복면민들과 출향 향우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도뉴스(http://www.namdonew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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