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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어린이 주일 전교인 소풍예배에서.
2005년 5월 어린이 주일 전교인 소풍예배에서. ⓒ 박철
큰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느 여자 권사님이었다. 사회 석에 서 계신 목사님을 향하여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똑똑히 내가 들은 소리는 이랬다.

"야, 당신! 당신이 그러고도 목사야! 목사질 하려면 똑바로 좀 해!"

시간이 지나자 예배당 안은 소란스러워졌다. 고성과 욕설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회의가 끝난 것 같지는 않은데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소리를 지르고 욕을 퍼부은 분들 중에는 교회학교 교사들도 있었다. 충격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집안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나는 아버지께 "왜 어른들은 예배당 안에서 욕하고 싸우느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그 후로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고 그와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었다. 어느 때인가는 예배도중에도 소란스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목사님은 자주 바뀌셨다. 나는 목사님네 이삿짐을 싸는 일을 여러 차례 거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이삿짐을 꾸리는 목사님은 아무 말씀이 없었고, 사모님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내가 경험한 교회 모습의 한 단면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말과 행실이 같지 않고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대표기도를 할 때는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다. 말끝마다 냉랭한 교회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사랑 사랑을 외치면서…. "예배당은 하느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이니 뛰어다니면 안 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곤, '어떻게 예배당 안에서 싸울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신앙과 생활이 일치를 이루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생활이 뒤 따르지 않는데 기도와 고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의 이런 의문은 점점 커져갔다.

좋은나무교회 현재 모습.
좋은나무교회 현재 모습. ⓒ 박철
나는 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목사가 되었다. 평탄한 길을 걷지 못했다. 신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마련해야 했다. 이름하여 교육전도사였다. 그것이 1980년부터이다. 그러니 거의 26년 동안 교회에서 선생 노릇을 한 셈이다. 교회에 정식으로 파송을 받아 담임만 20년을 했다. 교육전도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설교를 했다.

그동안 내가 강단에서 설교한 숫자를 계산해볼까 하다가 머리가 복잡해서 그만 두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삶의 현실에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주제에 대한 설교를 시도했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수십 권의 노트와 파일이 남아있다.

그것이 목사의 치적이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까? 수천 아니 수만 페이지의 설교 중 단 몇 페이지가 제대로 실천 되었을까? 그것이 나의 의문점이다. 나는 한동안 교인들은 왜 변하지 않는가? 일주일에도 주일 낮, 저녁, 수요일, 속회, 새벽기도, 철야기도 등 열 번 이상을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으면서 왜 교인들의 인격이 성숙해져 가지 않는가 하는 문제로 갈등했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선 전매특허라도 낸 것처럼 독점하면서, 왜 실천이 없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했었다.

"자녀 여러분, 우리는 말로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요한1서 3,18)

꼭 12년전 이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포천에 있는 은성수도원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은성수도원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부터 많은 눈이 내렸다. 나는 조립식으로 만든 간이 기도실에서 곰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문틈으로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 투명한 빛에 내 온몸이 포로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작은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내 온 몸이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이 떨렸다.

그 때 까까머리 중학교 때부터 갖고 있었던 나의 의문점이 풀리기 시작했다. 꽁꽁 닫혔던 내 영혼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에, 내 삶에, 내 영혼에 그리스도가 부재(不在)했기 때문이었다.

왜 교인들이 사랑을 말하면서 싸우는가? 왜 신앙과 생활이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인가? 왜 교인들이 수없이 설교를 들으면서도 성숙한 인격을 갖지 못하는 것인가? 단 한마디로 예수를 모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오래 된 수수께끼는 이렇게 해서 풀리게 되었다. 내 의문이 풀리자 나는 방문을 활짝 열었다. 가슴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도저히 방 안에 있을 수가 없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산으로 허위단심 뛰어올라가 눈사람처럼 굴렀다. 그리고 미친 듯이 울었다 웃었다를 반복했다.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만들어 주었다. 교회의 새로운 이상향(理想鄕)이 있는가? 나는 그 모든 핵심이 '예수'라고 본다. 오늘의 교회가 예수를 설교하면서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가? 교회의 각종 프로그램에 예수가 계신가? 심지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온갖 행사를 하는데 그 속에는 예수가 없는 듯하다.

왜 예수가 없는가? 예수를 바로 모시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모시지 못하고 모신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없는 기도, 예수가 없는 예배, 예수가 없는 행사, 예수가 없는 신앙…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어찌 보면 알버트 노울런(Albert Nolan)의 '그리스도 이전의 예수'에서의 표현대로 예수가 가장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하는 듯하다.

교회의 새로운 모델은 예수 바로 모시기 운동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신앙의 지름길을 택해 왔다. 진리나 신앙의 길에는 지름길이란 없다.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길로 가라"는 예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넓은 길로 가는 방법만 시도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이 교회를 양적인 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하는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 그 말은 예수에게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초대교회에서 있었던 현상만 쫒아서는 안 된다.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 진수로 돌아가야 한다. 성령을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방편이나 도구로 이용해서 안 된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예수께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감독이니, 총회장이니 하는 감투싸움은 없어질 것이다.

"네가 초대를 받거든, 가서 맨 끝자리에 앉아라. 그러면 너를 청한 사람이 와서, 너더러 '여보게, 윗자리로 올라앉게"하고 말할 것이다. 그 때에 너는 너와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누가 4,10)

오히려 가장 가난하게 사는 목사가 존경받는 목사가 될 것이고, 감독이나 총회장은 시골구석에서 수십 년 동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교회를 섬기며 살아온 목사가 추대될 것이다. 지금처럼 돈으로 표를 사고파는 그런 사기행각은 없어질 것이다.

2006년 새해를 맞으며 교우들과 함께. 구봉산 정상에서.
2006년 새해를 맞으며 교우들과 함께. 구봉산 정상에서. ⓒ 박철
교회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교인 빼앗기 쟁탈전도 사라질 것이다. 교회는 나눔과 섬김의 모습으로 예수가 제자들을 위해 바치신 기도의 내용과 같이 모든 교회가 '하나'라는 연대의식과 형제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교회의 자랑은 교인 숫자나 헌금액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섬기며 사회구원과 공익을 위한 선교와 봉사의 체제로 전환하는데 있으며, 그것도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조용하게 실천되어야 한다.

목사의 설교도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할 것이다. 예수를 이미 모시고 살게 되면 많은 설교가 필요 없지 않은가. 설교가 잔소리가 되면 안 된다. 목사의 준비되지 않은 엉터리 설교가 예수를 상실한 교회와 교인을 만드는데 한몫 했으므로…. 목사의 설교는 성직자의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가장 겸손한 도구로 낮아져야 한다.

농촌교회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도시교회는 농촌교회에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 도시교회는 교인들에게 1년에 한 번은 농촌 모 교회로 십일조를 보내도록 한다. 그리고 봄이나 가을철에 시골 모 교회를 방문하여 주일예배에 참석하게 한다. 상상해보라. 이때는 시골교회 예배당이 교인들로 가득 찰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나와 일손을 돕는다. 이런 모습은 이벤트나 일회성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골교회와 도시교회가 형제교회로서의 일체감을 갖게 하는 공동체의식의 발현(發顯)이다.

지금도 내 서재의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와 방안 전체를 환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한국교회가 예수를 바로 모시기만 하면 교회의 모든 병폐와 모순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런 상상이 내 마음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교회에 대한 상상'이라는 주제로 각계 계층의 인사들의 원고를 묶어 단행본으로 만들기로 하고- 모 신문사로부터 원고요청을 받아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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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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