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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열렸던 이란과 한국팀의 축구평가전 장면.
ⓒ 권우성
독일 월드컵 개막을 불과 넉달 앞둔 지금 각국의 감독과 축구협회는 자국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독일에 도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현재 6주간 해외에서 총 9차례의 연습경기를 하고 있고, 일본은 지난 주 월드컵에 대비해 9번의 자체 연습경기를 할 계획을 발표했는가 하면, 사우디 아라비아도 어떤 팀이든 가리지 않고 훈련경기를 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본선에 진출한 아시아 4개국 중 이란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이란은 선수들의 기량을 테스트하기 위해 연습경기를 할 상대를 아직 찾지 못했다. 이란축구협회가 원래 유럽과 아시아에서 효율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국제정치다.

최근 이란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입만 열었다 하면 국제사회를 뒤흔들어 놓는 발언을 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핵위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를 제외하면 "이스라엘이 지도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유대인 대학살은 없었다" "모든 유대인은 유럽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등 이란 대통령의 발언이 필요 이상으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그런 발언은 특히 올 여름 월드컵이 열리는 유럽을 비롯해 국제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가져왔고 이란의 축구선수들에게 그 불똥이 튀고 있다.

국제사회 뒤흔든 이란 대통령의 발언, 불똥은 축구로

▲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자료사진).
ⓒ AP 연합뉴스
스포츠와 정치의 선이 불분명해진 것은 지난 11월이다. 이란은 한국의 LG가 후원하고 4개국이 출전하는 LG컵 대회를 주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참가 팀인 루마니아는 외교부의 압력을 받고 출전을 취소했다. 이란 정부도 마침 한국이 핵문제에 대해 표명한 입장에 반발해 이번 경기에 LG가 후원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역시 본선 진출팀인 우크라이나가 3월 1일 테헤란에서 열리는 경기에 출전하기로 했다가 최근 그 계획을 취소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우크라이나 축구협회 부회장은 이란 축구팀이 강팀이며 테헤란이 너무 멀다고 둘러댔지만 이같은 상황은 친선경기가 결정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란은 스페인과 스위스에도 연습경기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겨뤄볼 팀이 없다는 우려는 그 뒤에 각국에서 보인 반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유대인 대학살에 관한 이란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이스라엘 리쿠드당 길라드 에단 의원은 월드컵을 주최하는 독일의 수상인 앙겔라 메르켈 수상에게 편지를 보내 "이란 축구팀이 독일에 입국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최근 취임한 독일수상은 독일의 유력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란 축구팀이 이란 대통령의 발언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나는 이란 축구팀을 벌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란 축구팀은 가는 곳마다 차가운 반응에 접해야 했고 유대인 대학살을 부인하는 것이 법에 저촉되는 독일에서는 한층 더 부정적인 눈초리를 받았다.

1974년 월드컵을 승리로 이끌고 독일 축구계에서 추앙받는 볼프강 오베라트는 "이란이 2006년 월드컵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독일 녹색당도 오베라트와 같은 입장이다.

영국의 보수당 간부도 전직 독일 미드필더인 오베라트 의견에 동조하며 "이란은 월드컵에서 제외되어 봐야 국제사회가 이란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이란축구팀은 독일에서 뛸 권리가 있다

▲ 이란 축구국가대표팀
ⓒ Teammelli.com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을 주최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은 아직까지는 정치적인 압력에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FIFA의 대변인 안드레스 허렌은 "정치와 스포츠는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 이란의 정치인이 한 발언은 국제사회가 대처할 문제"라며 "이란은 본선에 진출했고 이란축구협회가 잘못한 것은 없다. FIFA는 이런 논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열렬한 축구팬인 영국의 잭 스트로 외무장관은 FIFA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이란 축구팀을 배제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결국 아무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면서 독재자의 죄에 대해 일반인을 처벌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제재는 미국의 공식정책과도 배치된다.

영국 외무장관의 지적이 옳다. 월드컵에 이란의 출전을 금지시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 제재 조치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은 전례는 극히 찾기 힘들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한 미국 선수나 이에 대한 보복으로 4년 뒤 LA올림픽에 불참한 러시아 선수들을 누가 기억해 주는가? 고된 훈련을 이겨내 목에 메달을 걸 자격이 있음에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운동선수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한 나라의 정부가 서양 국가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 국가의 축구팀을 출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가 있고, 스트로 장관의 말처럼 상황을 바꾸지는 못하면서 축구에 열광하는 국가의 평범한 시민을 처벌하는 의미 밖에 없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둘 사이의 연관성을 굳이 찾는다면, 스포츠는 정치를 초월할 뿐 아니라 인도와 파키스탄이 크리켓 필드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러 국가를 화합의 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스포츠에 정치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재능도 있고 훌륭한 경기를 펼치는 이란 축구팀은 독일에서 뛸 권리가 있고 열정적이고 우호적인 수백만의 이란 축구팬들은 멀리서 응원할 권리가 있다.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번역: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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