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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민철
학창시절 의사소통 수단으로 편지는 절대적이었다. 팬시점에서 사온 편지지를 친구들과 한 장씩 바꿔가며 모아 놓는 것은 기본이고, 연습장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직접 만들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편지를 쓰는 횟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특별한 용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기에 끊임없이 쓰고 또 썼다.

이렇다 할 내용도 없는 그 편지를 주기 위해 그의 교실 앞에서 서성이기도 하고 매점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저도 모르게 주려던 편지를 들고는 도망치듯 뛰어왔던 기억도 생생하다. 쓰기부터 전달하기까지 매우 설레는 것, 편지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어찌 이를 낭만이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갈수록 편리해지고 삐삐, 핸드폰이 출현하면서부터는 편지의 존재가 희미해져갔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는 것이 또 하나의 의사소통 수단이 된 것이다. 그러다 다시 편지로 마음을 전한 건 그가 군대에 입대한 이후이다.

전화를 자주 할 수 없었던 그는 편지로 소식을 알려왔다. 그가 제대하기까지 에디터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세수도 하기 전에 편지함을 보고 왔다. ‘새로운 편지가 왔을까’라는 기대심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혹시나 어제 쓴 편지가 늦게 가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편지 한 장 가득 적힌 ‘사랑해’라는 글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편지는 그렇게도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츠지히토나리도 이러한 연유에서 <편지>를 쓴 것은 아닐까.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소설가이다. 하지만 그는 우연한 기회에 편지를 못 쓰는 사람들(때론 글 솜씨가 없어, 때론 글씨에 자신이 없어)을 대신하여 편지를 써주게 되고 그 일이 본의 아니게 성황을 이루는 바람에 아예 전업까지도 고심하게 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편지는 단순히 안부나 의견 전달의 도구로서가 아닌, 타인과 타인의 소통을 가능토록 하는 마음의 다리 역할을 한다. 그리고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말 걸기로서의 역할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제나 오늘보다 더 희망차고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작가는 소설가이자 대필가인 주인공의 시선을 빌려 각기 다른 10명의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과 찬란했던 추억, 삶의 상처 등의 에피소드를 세밀한 감정과 섬세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편지란 그런 것 같다. 대상을 향해 쓰는 글이지만 결국 그건 자기 자신에게 말 걸기가 아닐까. 끊임없이 상대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나의 존재를 되묻고 싶어 하는 확인 작업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잡지 Ennoble에 게재되었습니다.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소담출판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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